기업들 비정규직 사용사유 자의적

李 노동-기업 간담회...2년 전부터 기간제 고민, 전환도 많아

"2년 전부터 기간제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 유예의견이 나와 여기에 맞춰 대응을 고민해왔다. 막상 법이 시행되다보니 이달만 해도 계약만료가 15명이 되더라. 그러나 비록 어렵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평가 시스템을 통해 정말 채용이 어려운 직원 아니면 무기계약으로 전환 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빨리 유예든 법 시행이든 정해줘야 혼란을 벗어날 것 같다" -A 생명 인사담당자.(기간제 190명)-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지 못하는 비정규법 이지만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다. 3일 이영희 노동부 장관과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이 많은 14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서울지방노동청 9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영희 장관을 만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법의 취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날 이영희 장관은 기업들에 해고를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위해 인사담당자들을 불렀지만 상당수 기업은 이미 별정직이나 새로운 직군을 고민하고 있었다. 몇몇 인사 담당자들은 적극적인 정규직 전환 의사도 있었다. 몇몇 담당자들은 기업의 현실을 호소하기도 했다. 반면 참석한 기업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는 자의적이었다.

B 기업은 2년 전 비정규법이 시행되자 별정직군을 신설 했다. 07년, 08년, 09년 까지 2,199명의 비정규직을 별정직으로 전환했다. 비정규직법이 보낸 정규직 전환신호가 어느 정도는 통한 사례다.

C 통신 회사도 비정규법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법 시행에 따라 법 테두리 내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남용을 어느 정도는 막은 것이다.

D 카드사는 기간제 2년이 끝나면 계약해지를 하지 않고 숙련도와 자질을 평가해 정규직으로 발탁해 왔다. 이 회사는 정규직 전용에 따르는 절차를 거쳤다. 지금도 정규직 전용제도를 계속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기간제 노동자가 600여명으로 대부분 고객을 대하는 콜센터, 전화 판촉에 비정규직을 활용했다. 이 회사 담당자는 "2007년 법이 시행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 임금의 격차를 줄여 차별대우는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이 기간때문에 열심히 하는 분들 떠나야 하는 상황은 아쉽지만 기업 자체 인사전략"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정규직 전환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E 학습지 회사는 법 시행을 하자마자 이 문제를 풀어 왔다. K 회사 담당자는 "2년 전 법 시행 후 복리 후생과 임금조정을 했다. 풀타임 기간제와 파트타임 기간제를 구분해 운용하는데 풀타임 기간제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법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경우다.

F 보험회사의 기간제는 대부분 콜센터 상담직종이다. 이 회사는 작년부터 정부가 유예 신호를 보내자 다양한 검토를 했지만 결국 법이 시행되자 평가결과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원 전환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G 병원도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 할 예정이다. 2년 전이라도 괜찮으면 정규직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참석한 14개 기업 중 두 곳은 파견업체였다. H 파견업체는 "최근 들어 고객사들이 법을 피해갈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해 기업들이 편법이나 불법으로 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H 사 관계자는 "일부업무의 파견노동자는 그들의 꿈인 정규직으로 점프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공부하고 스킬을 키우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열망을 전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기업 자의로 판단

이날 간담회 과정에선 많은 기업이 비정규직 사용 업무를 함부로 해석하고 있어 사용사유 제한의 필요성도 드러났다.

B 기업 인사담당자는 "시간직과 영업직 직원을 굳이 정규직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업무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사용사유 제한이 없어 정규직 전환업무 확대, 축소가 자의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K 신용정보 회사의 인사담당자도 업무별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용정보나 조사사업은 정규직이지만 위탁을 받아 하는 채권 추심은 고용계약이 업무 위탁과 함께 간다. 위탁 사업이 끝나면 계약해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역시 비정규직 사용 업무가 따로 있음을 드러냈다.

또 몇몇 기업은 전화상담 업무에 기간제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들 기업에는 통상적이고 꼭 필요한 업무였다. 이날 텔레마케터 기간제를 둔 인사 담당자들은 전화상담 업무 노동자들의 상당수를 정규직화 해 왔다고 밝혔다. 업무숙련도를 평가해 정규직화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기업의 통상적이고 영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의 사용을 금지하고 일시적·임시적 수요에 대하여만 기간제를 허용하는 사용사유 및 사용기간 제한이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장관, “가부장적 국가의식 때문에 정부 탓만”

이날 이영희 장관은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과 노동계의 비난을 두고 “제가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소 가부장적 국가 의식이 있어서 홍수가 나도 정부가 잘못했다, 임금이 잘못했다는 식의 탓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뭘 잘못했는지 뭐가 부족한지 정확히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장관은 “노동부가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비판하지만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할 수 있는 전환은 다했다”면서 “우리가 개정이 안 될 테니 1일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대책을 내 놔야 하는가. 노동부는 법 개정에 총력을 다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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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기간제 , 이영희 , 노동부 , 정규직 , 사용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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