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택에서-그 여름 대추분교

[이수호의 잠행詩간](43)

그 여름 미루나무는
따뜻한 그늘로 거기 서 있었다
우린 그 그늘에 나란히 앉아
마주보기가 아직도 어색해
흔들리는 미루나무 꼭대기 작은 잎들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가슴에 작은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달이 없는 깊은 밤이나
먹장구름 뒤에서
몰래 반짝이곤 했다
어느 날
운동장 가 그 미루나무는 쓰러졌다
반짝이던 잎들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한 번 마음껏 부등켜 안고
뺨 한 번 부벼보지도 못하고
전기 톱날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따뜻한 눈물조차 준비하지 못한 채
풀풀 마른 가루 날리며
그렇게 베어졌다
미루나무가 베어져 넘어간 날 밤
작은 별은 보이지 않았다
팽성 들 논바닥도 말라가고
다른 별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별들을 보듬어 안을
따뜻한 계곡은
너무 멀리 있었다

* 다시 평택에서 그 여름 대추리를 생각한다. 대추분교 운동장의 그 잘 생긴 미루나무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몇 년 뒤 평택에 쌍용이라는 이름도 없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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