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이 인간의 수염에 미치는 영향?
팔레스타인 얘기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것이 검문소에 관한 것인데 요즘은 검문소 다니기가 몇 달 전에 비해 수월해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내세운 것이 ‘경제적 평화’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검문소를 조금 더 열어서 사람이나 물건이 조금 더 다니게 하고, 경제 지표도 좀 올려 줄 테니 난민이니 예루살렘이니 하는 정치적 문제는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다니기 수월해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전히 차를 타고 가다 검문소가 나타나면 얼굴에 긴장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주섬주섬 신분증을 챙기고 그럽니다. 그제는 와엘이 운전을 해서 길을 가는데 검문소에서 군인이 차를 세우고는 어디서 왔느냐, 어디 가느냐를 물었습니다. 와엘이 어디서 왔고, 어디 간다고 대답을 하니깐 왜 가냐고 물었습니다.
▲ 별 까닭없이 차량의 흐름을 막고있는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 |
검문소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왜 길을 가냐고 물으니 더욱 열 받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팔레스타인인과 함께 있는데 열 받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았습니다.
문답이 끝나고 차가 슬슬 움직이고 이스라엘 군인도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뻑큐’ ‘크레이지(미쳤어)’라고 했고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 판 웃었습니다.
그렇게 얘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와엘이 그 다음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미니가 이스라엘 군인한테 ‘뻑큐’라고 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은 그 다음 사람에게 그 얘기를 전하구요. 그러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이 똥그래져서 ‘뭐? 뭐?’ ‘정말? 정말?’ 그러고, 저한테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지 말라고도 그럽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수갑을 차는 시늉을 하면서 만약 이스라엘 군인이 그 소리를 들었으면 깜빵에 갔을 거라고 합니다.
저를 걱정해서 그러는 줄 알지만 사람들이 그러니깐 또 열 받습니다. 군인 눈앞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서로 뒤돌아서서 그런 건데도,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저의 행동은 혹시나 무슨 일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걱정스러운 짓인 거죠. 일일이 묻지 않아도 그동안 그들이 검문소에서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저 소리 들려요?
어제는 자주 가는 칠면조 농장에서 테레비를 보며 놀고 있는데 마흐무드가 갑자기 ‘저 소리 들려요?’라고 했습니다. 뭔가 들리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 모르겠다고 하니깐 자세히 들어보면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창 밖으로 내밀고 들어보니 정말 희미하게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스라엘이 늘 띄워놓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하고 사진도 찍는 무인정찰기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활동가 암살이 많은데 무인정찰기가 표적의 움직임을 잡아서 정확하게 죽일 수 있게도 한답니다.
▲ 장벽과 이스라엘군 감시초소 |
이스라엘의 감시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의 스파이(정보원)도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이스라엘 군인이 갑자기 마을로 들어와서 특정한 사람을 붙잡아 가는데 도대체 그 사람이, 그 시간에, 어디에 있는지를 어떻게 정확하게 알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마을에서도 주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소속 활동가들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외부인의 이동도 적고, 저희 같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다음날 되면 온 마을에 퍼져 있을 만큼 소문도 빠른 마을인데 이스라엘 군인이 직접 들어와서 정보를 수집할 리는 없겠지요. 결국 마을 내부에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정보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인티파다와 같이 큰 일이 벌어지면 정보원은 이스라엘의 살인과 체포에 큰 기여(?)를 합니다. 사람을 잡아가서 두들겨 패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돈으로 매수도 해서 정보원으로 만들지요. 이스라엘에게는 필요한 정보도 얻고 팔레스타인 사회도 분열시킬 수 있으니 일타쌍피인 셈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곁에 있는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요즘 한창 있기 있는 드라마 ‘밥알하라’라를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시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당시가 배경입니다. 화면에 프랑스 군인이 아랍인의 옷을 벗겨 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이 나오길래 왜 저러냐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을 고문해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 팔레스타인인의 건물 위에 초소를 세워놓고 감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
시선에 억눌리지 않는
늘 자기 수염이 멋있다고 자랑하던 마흐무드가 하루는 면도를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냥 그런가 했습니다.
마흐무드의 얘기는 자기가 내일 나블루스로 갈 거고,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으면 이스라엘 군인이 차에서 내리라고 하고서는 ‘너 하마스냐?’라고 묻는다는 겁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슬람 경향이 강할수록 수염을 기른 남성이 많고, 하마스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도 수염을 기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마스가 싫다고 하는 마흐무드마저도 하마스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면도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검문소 입구에서 일단 차를 세우고 있다가, 수다도 떨고 전화 통화도 하던 이스라엘 군인이 귀찮다는 듯이 손짓을 하면 정말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갑니다. 점령군의 감시 눈초리에 불쾌해 하면서도 차 안을 훑어보는 군인을 향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저의 속은 부글부글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누구의 시선에도 억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