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중첩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진전하는 가운데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설적인 과정을 만들어냈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생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다시 그간 일정하게 진전되어온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의 형해화(形骸化)와 공동화를 초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절차적-정치적 민주주의의 더 많은 진전을 방해했다. 이는 다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대중적 회의감을 팽배시키고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화와 자유화의 동시적 추구’ 내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빈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추구한 자유주의개혁세력의 노선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통해 한국정치의 주도권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으로부터 보수세력으로 이전되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2월 25일이면 집권 3년째에 들어가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겪게 될 것인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사회의 변화는 한마디로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와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동시적 후퇴’ 내지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에 의해 특징져진다. 감세정책과 탈규제정책이 보여주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친부유층 정권의 성격을 한층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민중의 불만과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그 불만의 대중적 폭발을 막기 위한 강압적인 공안통치를 전면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일반서민들의 불만이 커진 것을 배경으로 이후 ‘중도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책의 기조를 바꿈이 없이 행해지고 있는 이런 정책은 허물만의 친서민정책에 불과하다. 또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언론에 대한 정권의 개입이 노골화되고 있고, 집회-시위의 자유 등이 심대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8·15 경축사를 통해 이미 빛바랜 공약이 되어버린 기존의 ‘747 성장’ 정책 대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그리고 정부는 ‘녹색성장’의 실천방안으로 그린홈 (green home) 1백만 가구 사업과 같은 친환경 주택건립, 그린카 개발 (green car) 등 세계 4대 녹색기술 개발 선도, 온실가스 2020년 대비 30% 감축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 역시 친기업적인 성장 전략이라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대운하 건설을 염두에 둔 4대강 정비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개발주의에의 집착은 녹색성장을 무늬만의 그것으로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개발주의로 무장한 우파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가 퇴조하고 있는 데도 이명박 정부는 개발주의와 결합한 더 많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생태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강화를 모든 것에 우선하는 대외정책으로 삼고 있다. 이런 정책은 그러나 미국 패권의 쇄락, 중국의 부상 및 일본의 아시아중시정책 강구 등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정책이다. 게다가 이런 정책은 새로운 동북아시아 내지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새로운 동북아시아 내지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은 역내 국가들이 얼마만큼 다방면의 협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와 더불어 이들 국가들이 얼마만큼 탈미(脫美)에 합의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렇지 않는 한, 아시아는 크게 보아 미국권과 중국권으로 양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를 북핵문제의 해결에 종속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될 수는 있어도,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될 수가 없다.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남북협력의 증진 및 이에 기초한 평화 통일의 달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고 있다시피, 북핵문제 해결 우선시 정책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관련하여 이미 성취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있고, 남한 정부의 정책을 미국의 대북정책에 더욱 종속시키고 있으며, 남한의 외교적 입지를 축소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남한은 오히려 중국과 더불어 북미관계를 조정하고 북핵 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모든 면에서 후퇴하고 있다. 진전이 있었다면, 한국이 더욱 더 ‘재벌공화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더욱 더 재벌들이 세계시장에서 얼마만큼 선전하는가에 전 국민이 목을 매달아야 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런 사회는 그러나 불안전 노동층과 빈민층 및 실업층으로 변한 다수 대중 위에 (보수정치세력 및 관료세력과 결합한) 재벌과 그 주위의 소수 부유층이 군림하는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사회이다. 이들 지배층은 내부적으로 갈수록 수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적 가치를 숭상하고 미국적 삶을 추구하는 데에 앞장서면서 한국사회를 더욱 더 미국에 통합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고비마다 밑으로부터의 저항이 눈부시게 터져 나온 사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기에 있었던 촛불시위는 비록 현재는 잠잠해 졌지만 어떤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런 저항이 언제든지 다시 터져 나올 수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공안통치에 골몰하는 것은 바로 언제 다시 저항의 횃불을 들고 나올지 모르는 '대중에 대한 공포' 때문일 것이다. 2010년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가장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해이다. 올 해 이명박 정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들을 강하게 밀어 붙일 것이다. 올해 밀어붙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 건너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중의 불만과 분노 역시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중의 저항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든 아니든, 분명한 점은 올 해가 새로운 전환의 물꼬가 터지는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대중이 다시 신자유주의에, 남북대결주의 등에 농락당하지 않고 그들의 바람과 저항이 역사의 진전에 올곧게 기여하도록 우리가 진보운동의 혁신과, 혁신된 진보운동과 대중의 결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가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은 무엇보다 대중의 현실적 삶과 직결되는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투쟁을 중심축으로 삼고,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보조축으로 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도를 함께 찾아 나가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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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평은 남북교육협력추진위원회의 논평(2010.1.5)을 수정 보완하였음(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