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석유가 고갈되기 시작할 때, 그것도 고갈기가 급격히 닥쳐올 때에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뿐 아니라 당연히 정치적으로도 일대 파장을 겪게 될 것이다.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할 정도로 석유를 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심화될 것이다. 현재 천연가스를 대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강구중이지만 자동차에서 비행기까지 석유를 사용하는 모든 운송수단과 공장, 발전소 그리고 산업용 원자재까지 모든 것을 천연가스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는 지금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금융과 군사력 중심의 산업구조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이것은 일면 자국 내 공해산업의 추방과 3D업종의 종사자 부족 등을 이유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장차 다가올 석유 부족기, 즉 현재 세계 제조업의 혈액인 석유의 고갈 시기를 내다본 정책변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석유를 사용하는 산업이 이제는 세계환경 협약과 같은 범 지구적 환경보호를 위한 압력에 직면하고, 석유가가 폭등하게 될 석유 고갈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를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의 책임으로 떠맡기고 자신들은 국제 금융과 군사력을 강화시켜 가면서 석유위기에 의해 국내 산업에 가해질 일대 타격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60년간 세계 에너지 산업은 점점 늘어만 가는 에너지 수요의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해 왔다. 석유의 경우 전 세계의 수요량은 지난 1955년 하루 1500만 배럴에서 2005년에는 8200만 배럴로 50년 사이에 450%나 늘어났다. 그동안 석유 공급량도 이 같은 수요 증가에 보조를 맞춰 왔다. 앞으로 석유 수요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다른 개발도상국이 성장함에 따라 지금까지의 증가 속도보다 빠르면 빨랐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석유 수요의 증가 속도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도 공급이 이 같은 수요 증가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예측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주요 에너지의 생산지역이 바뀐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때 세계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곳은 모두 북미, 유럽, 그리고 러시아 영토 중에서도 유럽 인근이었다. 우연은 아니었다. 메이저 에너지 기업들이 본사에서 가깝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원유 매장지를 국유화할 우려가 적은 '쾌적한 환경'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북반구의 자원이 거의 고갈됐고 이제는 전 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중동 등 남반구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남반구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식민 지배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외세에 대해서는 불신의 경향이 뚜렷하다. 소수민족 분리주의자, 반란군, 극단주의자 등의 세력들도 외국 석유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주요 석유 수입국이 아예 한 나라의 정권을 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의 보호 아래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이 장수하는 것이나 미국을 배후로 업고 일함 알리예프가 아제르바이잔의 총리가 된 것이 비근한 예다. 이미 우리는 에너지가 재래식 무기에 비견할 만한 위력을 갖는 시대를 살고 있고, 이미 세계의 어느 한 쪽에서는 과거 식민 통치 경험이 있는 강대국들 간의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에너지 소비국들의 에너지 정책을 군사화하고 에너지 생산국들이 억압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넓혀놓음으로써 '에너지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기반을 마련해 둔 것이다.
‘에너지 권력’의 마지막 얼굴은 원자력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억압과 감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줄어들수록 정부와 산업계 지도자들은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추가 에너지를 공급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높은 우려도 이 계획을 부추길 것 같다. 석유, 가스, 석탄 등을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05년 정부가 마련한 '2005 에너지 정책법'에서 새로이 원전을 짓는 전기 사업들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이는 원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원자력의 경우 발전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어 기후변화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자력 발전소의 에너지원인 우라늄을 채굴, 정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해체, 폐기물 처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 역시 만만치 않다.
원전사고의 상존이나 방사성 폐기물(특히, 사용후 핵연료) 처리의 문제점 등 기후변화와는 다른 차원의 생태적 파국을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여 대안으로 채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들어 원자력발전의 연료인 우라늄 가격이 급등하고 우라늄 또한 광물 자원으로 고갈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원자력에 대한 기대와 의존은 기후변화의 해법이 되기 힘들다.
특히 미국의 경우 원전 부지의 결정권이 연방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량 국가' 등에 대한 핵무기 이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원자력이 석유가 고갈된 자리를 메우면서 핵의 유통과 유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감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2005 에너지 정책법'은 지역 관료들로부터 '천연가스 재기화(再氣化) 플랜트' 설치를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아 연방정부의 권한으로 만드는 의미심장한 전례를 만들어 놓았다. 이 거대한 시설은 해외 공급자로부터 배로 수송된 액화천연가스를 미국 전역의 파이프를 통해 배달할 수 있도록 다시 가스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원자력 확산이 낳을 또 다른 위험은 원자력과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먼 관계더라도 정부의 조직적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라늄 농축시설, 원자로, 핵 폐기장 등 모든 핵 관련 시설과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테러리스트나 암시장 불법거래상인, 그리고 이란과 북한 같은 국가의 손에서는 핵 무기화 될 수 있는 소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물론 이 같은 시설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과 하청업자, 그리고 재하청업자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항시적으로 불법 가능성을 조사받을 수 있으며 24시간 엄격한 감시 하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원자로와 더 많은 핵 시설이 생길수록 일종의 감시 대상이 될 관여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이들을 감시하는 보안 관계자들 역시 정부 정보국 차원의 더 높은 단계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매우 광범위한 '빅 브라더'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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