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자 어느 일간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개발에서 복지로’였다. 지방선거의 쟁점이 뉴타운개발 등 개발과 성장중심에서 무상급식, 교육 등 복지의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회양극화로 인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일자리, 주거, 의료, 교육, 노후 등 5대불안이라고 일컬어지는 ‘불안의 시대’에 정치권이 반응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15일에는 야 5당, 시민사회,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에 선진화 담론에 맞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제안하는 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16일에는 2000여개 이상의 단체가 결합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하여 6.2지방선거에서 후보들에게 무상급식 공약을 요구하고 무상급식을 법제화하기 위한 운동에 돌입했다. 이른바 3월 8일 ‘5+4기구’에서는 일자리, 교육, 복지, 주거 주택, 보건의료, 중소기업 소상공인, 4대강사업 분야에 걸쳐 야5당 정책합의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굳이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말의 성찬’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일시적인 움직임일 뿐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민들의 삶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어촌 가구를 제외하고 2인이상 전국가구 중 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미만인 빈곤층은 2003년 11.6%에서 2009년 13.1%로 늘었다. 빈곤가구의 60%가 1인가구인 점을 감안한다면 빈곤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인구의 절반정도는 빈곤층이다.
반면 중위소득의 50-150%인 중산층은 2003년 70.1%에서 2009년 66.7%로 줄어들었다. 지니계수는 2003년 0.277에서 2009년 0.293으로 올라갔고, 하위 20% 대비 상위 20% 계층의 소득 비율인 5분위 배율도 2003년 4.44배에서 2009년 4.92배로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빈곤층이 늘어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원인인 노동시장유연화와 구조조정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996-97년 IMF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쌍용자동차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던 정리해고는 금호타이어에서 이어지려 하고 있으며, 이미 자동차, 조선 등의 제조업사업장에서 사내하청노동자 등의 비정규직의 실직이 줄을 잇고 있다. 앞으로의 구조조정 여파에 따라 정규직에까지 대량정리해고 사태도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에 소득재분배를 강화해야할 사회정책은 매우 취약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한 채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유연화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거꾸로 된 처방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재벌과 소수의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은 철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빈곤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기초생활보장예산은 오히려 삭감되었으며, ‘친서민정책’이라고 내놓은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낳아 오히려 수많은 대학생을 졸업 후 빚을 갚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를 감내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기업 등의 매출은 사상최대이고, 이익도 사상최대로 늘어 쌓아놓고 있는 돈이 200조 가까이 된다고 하지만 지난 1월 OECD 22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실업률이 사상최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현실에서 유권자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정치권이 ‘복지’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할 것이다. 오히려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것이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무상급식이란 단일 의제이긴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가 의제로 떠올라, 복지의 철학과 담론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고, 빈곤과 실업, 불평등, 삶의 불안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어흐름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또한 선거 시기만 되면 ‘개발과 성장’의 미명하에서 ‘누구나 잘 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행태가 기승을 부렸던 데에 비해, 생활과 삶을 둘러싼 사회적 모색의 장으로서 전환이 되는 것은 개발과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현재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성장연합프레임’에서 ‘생태복지연합’의 프레임으로 바뀐다면 현재 보수정당중심의 정치구도가 바뀔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에게 놓인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할 것이다.
진보진영과 여러 사회운동진영의 주체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복지’가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빈곤과 불평등심화라는 사회적 상황과 이명박 정부에 의해 야기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삶과 국토의 파괴, 재벌과 소수 부자를 위한 정책의 강행 이라는 객관적 조건이 강제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듯이 보수세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민주당의 우경화 경향을 제어해내고 좌로 한 클릭 이동시킨 것도 지난 10년 동안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켜왔던 세력의 진정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진보진영의 힘에 의한 강제라고 보기 힘들다.
한미FTA나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지역개발의 사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미래’가 ‘한나라당의 현재’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5+4기구’라는 틀 속에서의 연합도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라기보다, 각 당 후보간 ‘자리나누기’에 더욱 방점이 찍힌 모습이다. 그만큼 현실에서의 ‘복지연합’은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광역단체후보의 선정방식을 둘러싼 쟁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진보신당이 합의에 불참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복지연합’이 이후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무상급식운동이 걸어왔던 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철학에 기반해 보편성을 원칙으로 하여 직영급식, 친환경급식, 무상급식이라는 방향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학부모단체, 복지단체, 지역시민단체, 진보정당, 노동조합, 그리고 먹거리의 직접적 생산자인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연대가 활성화되어 왔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운동이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여러 지역에서 이를 현실화한 성과가 축적되어 온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이것이 경기도에서의 무상급식시행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정치적 의제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향후 복지연합도 진보정치의 재구성, 노동정치의 혁신, 사회운동의 활성화, 생산자와 권리수급자와의 연대 등 ‘제도정치’영역과 더불어 보다 중요하게는 ‘운동정치’의 활성화가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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