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심위)에 기습공격을 당했다. 20일 근심위가 노동조합 활동 실태조사 연구결과 중 오차범위 20% 이내 322개 표본 분석결과만 전격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노동계의 유급전임자 수 확보를 위한 싸움 전반전은 패배한 셈이다. 실태조사단엔 다른 분석 결과도 있었지만 노동계에 가장 불리한 자료만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노동조합활동실태조사단이 분석에 사용한 조사표본은 4가지 였다. 그중 노사 양쪽이 제출한 실태조사표에서 필수 일치 항목의 오차범위가 20% 이내인 조사표본(322개 사업장)만 공개해 논란이 됐다. 이외에도 조사단은 오차 범위 20%와 무관하게 노사양쪽이 실태조사표를 낸 481개 사업장 조사표본과 노조가 낸 490개 사업장 조사표본, 사용자 쪽이 낸 632개 조사표본의 데이터 분석도 다 마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20일 근심위 10차 전원회의에선 4가지 데이터 표본 중 노동계에 가장 불리한 오차범위 20%내 표본만 담긴 데이터가 전격 공개됐다. 조사단은 나머지 3가지 분석결과에 대해 기자 공개는 어렵고 빠른 시일 안에 근심위 전체회의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오차 20%범위 내 표본의 공개과정도 석연치 않다. 노동계는 전체 데이터를 함께 공개하지 않는다면 여론 왜곡 가능성이 크다며 20% 표본 데이터 단독 공개를 거부했지만 회의 도중 헤럴드경제 인터넷 판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이로 인해 노동계에 가장 불리한 자료가 이날 저녁 6시에 언론에 전면 공개됐다.
노동계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인 사용자 쪽이나 사용자 편인 공익위원들이 자료를 유출 시켰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22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노조를 작살내기 위해 뒤통수치는 짓거리를 했다”고 할 정도로 격앙 돼 있었다.
경영계에 유리한 자료는 바로 다음날 여론의 부메랑이 되어 노동계를 압박했다. 20% 표본데이터 결과만 확인 한 대부분 언론은 유급노동조합 활동시간은 조사 결과 평균 4,324시간으로 나타났고 이중 노조 전임자 활동시간은 평균 1,418시간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결과가 가장 신뢰성 있는 결과인 것처럼 왜곡되어 전달된 것이다.
조사단장, “왜 위원회가 실태조사 자료를 공개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경제지들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강하게 노조 전임자 축소를 요구했다. 매일경제나 한국경제 모두 현 노동조합 전임자 거품이 드러났다면서 5000인 이상 노조 전임자의 2/3가량을 줄여도 노조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결과라고 일반화했다.
근심위 노동조합활동 실태조사단은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실태조사 분석결과와 양대노총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내진 못했다. 무엇보다 4가지 데이터가 있는데도 왜 20%만 표본만 공개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왜 이걸 먼저 위원회가 언론에 공개했는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20%이내 표본자료는 가장 신뢰할 만한 데이터고 근심위 간사회의에서 합의한 것이라 근심위에 먼저 공개한 것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20%만으로 전임자 시간 유추가 적절한지나 다른 데이터 표본을 어떻게 적용할지는 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이지 조사단이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로데이터(raw data, 미가공 데이터) 공개는 통계법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조준모 조사단장(성대 경영학과)은 “이번 발표는 객관성과 중립성에 뒀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20% 표본을 뽑아 조사만 했을 뿐”이라며 전임자 수 산정과 바로 연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조사단에 참가한 이성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실태조사에 뭘 넣을지도 조사단 노사양측위원과 검토 했고 근면위 간사회의에서도 검토 했다. 노조 요구에 따라 근무형태도 조사항목에 넣었다. 조사항목을 임의로 넣고 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체 노조 간부의 유급활동이 어느 업무에 쓰는지만 조사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모든 책임은 근심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도 조직력 동원 계획 논의 예정
애초 근심위의 한계는 민주노총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부분이다. 실태조사 자료 채택을 놓고 치열한 공방도 예상됐다. 사용자 쪽이 제출하는 조사 자료는 노동조합 활동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는데서 한계가 이미 예상 됐던 부분이다. 또 노동계가 낸 자료를 얼마나 사용자 쪽에서 인정해 줄지도 불투명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조사단이 통계의 신뢰성을 주장하며 노조에게 불리한 자료만 먼저 공개하면서 양노총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데 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상황을 놓고 “타임오프 총량을 최대한 낮추고,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된 통계조작행위”라며 “엉터리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밀어붙인다면, 근심위를 ‘통계조작기구’, ‘노조말살기구’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항의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노사 간 입장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비교검토하면서 쟁점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노사 응답의 평균값을 발표한 것은 기계적 절충방식으로 노조활동을 고의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애초 근심위 참여 목적이 근심위의 노조말살전략을 폭로하기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목적이면 민주노총은 소기의 목적을 이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근심위가 노동계에 불리한 결과를 언론에 기정사실로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노조 전임자가 많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이미 노동계에 가장 불리한 샘플이 먼저 공개된 후라 여론을 돌리기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심위 공익위원들도 사용자 편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오는데다 여론을 등에 업은 재계가 노동계에 유리한 데이터를 인정할 리도 없다. 근심위 회의에선 노동계가 요구하는 자료가 공개된다 해도 반영은 어려울 전망이다.
근심위 일정에 따르면 23일 재계와 노동계는 요구안을 공개한다. 양대노총은 22일 단일요구안을 제출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근심위는 요구안이 제출되면 27일까지 1차 합의도출을 시도한다. 여기서 합의가 안 되면 27일 이후엔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내고 2-3일 동안 중재안 중심의 합의도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노동계는 공익위원의 중재안도 불리할 것으로 보고있다. 국회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있지만 이 절차가 구체적이지 않아 노동계가 큰 기대를 하긴 어렵다.
이에 따라 양대노총은 대정부 압박의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일단 근심위 탈퇴는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호의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정도 논의 된 상황에서 근심위 탈퇴는 실익이 없고 민주노총이 탈퇴하면 바로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23일 요구안을 내고 최대한 끝까지 쟁점화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번 322개 표본의 조사결과가 워낙 턱없는 숫자라 현장에 위기감이 퍼져 가고 있다. 특히 실태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꼼꼼한 자료를 제출한 사무금융연맹이나 보건의료 노조는 23일 근심위 항의방문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는 21일부터 사흘간 소속 지부 및 지회별로 쟁의행위찬반투표를 일제히 실시한다. 금속노조 최대사업장인 현대차지부도 21일부터 이틀 동안 야간조와 주간조 조합원 모두 파업찬반투표에 참여케 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28일 부터 5-6월로 이어지는 총파업총력투쟁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애초부터 근심위를 통한 논의에 찬성했던 한국노총도 이번 실태조사 결과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30일 까지는 최대한 근심위 논의에 총력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23일 오전 대표자 회의를 통해 조직력을 동원을 포함한 투쟁계획을 논의한다. 한국노총은 21일 “별도의 근거와 요구로 현 실정이 잘 반영된 합리적인 근로시간면제한도를 확보하여 노동조합운동을 지켜내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짧은 기간이라 작년 15만명 같은 대규모의 동원이 쉽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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