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행했던 코미디 가운데 이주노동자 분장을 한 코미디언이 ‘사장님 나빠요~’를 호소하던 코너가 있었다. 흠잡을 데도 많았지만 이 나라 사장님네들이 나쁘다는 인식을 코미디 속에 담아냈던 프로그램으로 기억된다. 유행이 지난 코미디는 사라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라는게 문제다.
얼마 전 이주노조에서는 파주와 안양 두 곳에서 이틀 간격으로 연달아 집회를 열었다. 두 군데 모두 오랫동안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던 사업장이다. 파주의 한 인쇄업체는 노동부 진정절차를 거치고도 버티는 바람에 가압류 절차를 밟고 있고 안양의 코팅 공장은 2년이 다되도록 돈을 주지 않고 공장을 사위에게 넘기는 바람에 본압류까지 들어간 상태였다.
토요일 점심때 파주 공장 앞에서 집회를 하노라니 인근 업체 한국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집회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 중 몇 명은 다가와서는 슬쩍 귀뜸도 했다. 이 업체가 내국인 직원들한테도 체불이 심하다고. 집회 잘하고 있다고. “이주노동자 임금 떼어먹는 악덕 업주 규탄집회” 플랭카드 세워놓고 한 시간 남짓 집회를 했다. 둘이 합쳐 천만 원 정도의 체불인데 그 번드르르한 건물을 가진 사장은 왜 굳이 떼먹으려 할까. 그런 인간들은 상습적인 경우가 많다. 그 공장은 예전에도 체불 사건이 있었다. 그 때도 우여곡절 끝에 받아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약한 처지의 이주노동자가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상습범 같다.
그 다음 월요일 오후의 안양 집회. 이번에는 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직접 집회에 참가하여 하소연했다. 땡볕 아래 집회에 나와서 고맙다고. 한국에서 자기 말고도 이런 일이 너무 많은데 제발 없어지면 좋겠다고. 집회가 끝나고는 사장과 만나기도 했다. 실랑이 끝에 지불각서를 썼다. 돈이 없으니 5개월 동안 한 달에 백만 원 씩 갚기로. 못 갚으면 기계라도 가져 가랜다. 그럴거면 진작 주면 될 일 아닌가.
임금체불은 그 자체로 노동자 생존권을 파탄내는 강력한 폭력이다. 이주노동자는 한 달이라도 월급을 못 받으면 생활도 힘들고 집에 돈도 못 보내서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야 한다. 사장은 내일 줄게 모레 줄게 살살 꼬시면서 한 달 두 달을 미루기 예사다. 아니 이 나라 사장들은 이주노동자 피땀으로 집사고 차사고 땅사고 공장 넓히면서 임금은 어찌 그리 아까와 할까. 항의 전화라도 할라치면, 지금까지 가족처럼 잘 대해 줬는데 그것 조금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까지 찾아갔냐고 적반하장에 노발대발이 기본이다. 뒤집어보면, 가족처럼 돈 안주고 착취했다는 말이고 먹여주고 재워줬으면 충분하지 천한 외국인이 뭘 그리 바라는 게 많냐는 것이다. 어디서 단체로 사장되는 교육을 받고 왔는지 레퍼토리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혹자는 남의 땅에 돈 벌러 왔으니 손해 보더라도 참아야 한다고도 말한다.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누가 필요해서 불렀는데? 국내 기업들, 농어촌 일손 부족 때문에 부른 것 아닌가. 도와주러 온 사람 손님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머슴에 노예 부리듯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또 다른 혹자는 이주노동자들이 돈 벌면 다 본국으로 보내서 부가 유출되는데 뭐하러 돈을 제대로 줘야 하냐고 한다. 그러나 물가 비싼 한국에서 안입고 안먹고 뼈빠지게 일해서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받아 생활비 빼고 보내는 돈도 많지 않을뿐더러 이 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생각하면 그 보다 훨씬 대우를 못받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IMF 이후에 거대 외국 투기자본이 들어와서 200조가 넘는 이득을 챙겼다고 하는데 그것부터 문제삼아야지 이주노동자 송금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힘센 놈한테는 찍소리 못하면서 약한 자에게 괜히 심술부리는 것밖에 안된다.
최근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의 1인당 평균 급여는 년 1,317만원(2008년)인데 그 전년도보다 39만원이 감소했다. 이는 내국인 노동자 하위 10% 평균 1,460만원보다도 143만원이 적은데, 이 외국인들 가운데는 소위 화이트칼라 외국인, 즉 외국기업 국내 지점 임직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시아출신 하층 이주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적을 것이다. 실제로 이 발표에서 전남지역 이주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701만원으로 가장 낮았고 광주(831만원), 제주(852만원), 전북(873만원) 지역의 평균 급여도 1,000만원 아래였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1년 동안 임금이 체불된 이주노동자 숫자가 2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체불 임금 규모도 2006년 40억4269만원, 2007년 62억8028만원, 2008년 170억3671만원으로 증가했고, 2009년 상반기에는 121억8293억 원에 이르렀다. 한국 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치고 체불임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앞의 안양 공장 체불임금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람들 옛날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같은데 가서 일했는데 그 사람들 얼마나 힘들었어요? 우리처럼. 그 노동자들 마음 제가 잘 알아요. 이 문제 생각해서 한국 정부가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직도 사장님들은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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