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2008년의 극적인 두 사건으로 드러난 세계의 변화를 다루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8월의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이며, 둘째는 9월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다. 두 사건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예고하는 것인지, 우연히 발생한 별개의 사건인가, 서로 연관된 사태 전개의 필연적 결과인가?
2008년 늦여름과 가을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으로 냉전 종식 후의 세계 질서가 갑자기 허물어졌다. 이것은 두 가지 위기가 맞물린 결과였다. 첫째, 2008년 8월 그루지야를 상대로 벌인 짧은 전쟁에서 러시아는 군사력을 과시해 나토의 동진을 저지했다. 둘째, 9월 15일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이 때문에 심각한 금융 폭락 사태가 일어나 세계경제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두 위기는 모두 미국의 세계 패권에 심각한 타격이었다. 나토의 확장을 추진하고 금융시장 자유화를 전 세계에 강요한 것이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기는 더 광범하게는 1989년 동구권 몰락 이후 득세했던 지배 이데올로기, 즉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 질서가 전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던 합의에 도전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미국의 이라크전 패배로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그 이데올로기는 이제 결정적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 책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쌍둥이 위기를 깊이 천착한다. 그는 2008년 금융 폭락 사태를 심층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론적 틀로서,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자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이론’, 신자유주의의 원조로 떠받들어지는 하이에크의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분석을 각각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각종 금융 파생상품을 분석한 저작 등을 원용하며 이른바 실물 경제와 금융 부문의 상호작용을 비롯한 금융 폭락과 경제 위기 발생 메커니즘을 집중 분석한다.
캘리니코스는 이번의 경제 위기가 단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동역학 자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입증하기 위해 1960년대 말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적 과잉 축적과 수익성 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한다. 따라서 이번의 경제 위기 대책으로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부으며 일시적 회복 국면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체제의 근저에 있는 모순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진퇴양난의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이는 요즘 다시 가열되고 있는 ‘더블딥’ 논쟁과 관련해서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하겠다.
또 경제적 사건과 지정학적 사건의 상호작용을 고찰하면서, 국민국가의 구실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미국과 중국의 복잡하고 긴장된 상호 의존과 갈등 관계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제국주의 세력관계 변화를 분석한다. 냉전 종식 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글로벌 거버넌스가 확산될 것이라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환상에 불과했음이 밝히 드러났고, 미국은 경제력의 약화에 따른 세계 패권 약화를 군사력 과시로 보완하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로 말미암아 이 프로젝트가 파탄나면서 세계는 갈수록 불안정하고 위험한 다극적 체제로 전환하면서 제국주의 열강 간 충돌 가능성까지 언뜻 보여 준 것이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세계 정치적 의미였다고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시장은 오늘날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자본주의의 대안적 전망들을 살펴보면서 민주적 계획 경제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 차례
서론 2008년에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가
1부 무너진 금융
금융화란 무엇인가?
금융 위기를 보는 세 가지 관점
단지 금융 위기만은 아니다
경기회복의 딜레마
2부 포위된 제국
국가의 역습
제국들의 충돌
불협화음을 지휘하기
결론 정책 교체냐 체제 교체냐
신자유주의의 종말?
국가, 시장,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