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분열, 자기 기만에 빠진 일본의 내면 읽기

[신간안내] 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교양인, 2010).

일본 우익은 왜 불안에 떠는가? 일본의 내면은 왜 분열되어 있는가? 그들이 내세우는 평화주의는 왜 자기 기만적인가? 일본 좌파를 과격화와 자멸로 이끈 트라우마는 무엇인가? 작은 나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큰 나라, 평화헌법으로 무장한 호전적인 군사대국, 피해자 심리에 빠진 기묘한 가해자 국가……. 전후 일본 사회를 연구해 온 일본 현대사 학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집단 심리를 ‘분열’, ‘트라우마’, ‘자기 기만’, ‘불안’이라는 네 가지 사회심리적 코드로 해독한다.

극우 지식인들에게 환호한 일본 좌익 학생 운동의 자기 분열적 행보, 한반도를 ‘일본을 향해 돌출한 흉기’로 인식하는 우익 히스테리,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사건에 묻어버린 조선 식민 지배와 난징 대학살의 역사, 전 세계 평화 운동의 중심을 자처하면서 침략과 전쟁을 지워버리는 자기 기만…….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일본 사회의 표면을 걷어내고 내면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일본의 집단 무의식이 표출된 사건들, 현상들, 일화들을 소재로 삼아 그려낸 일본 정신의 단면도이며 일본 사회의 해부학이다.

간 나오토 총리 사과 담화에 담긴 기만성

2010년 8월 10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한국인들에게 과거 식민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해방 65주년이 되는 8월 15일과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이 체결된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8월 22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강제 병합의 불법성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같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야노 히데키 ‘강제 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은 8월 12일 한국실행위원회에 보내온 의견서에서 “(간 총리의 담화는) 식민 지배에 의해 한국인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객관적’ 사실을 표기하는 데 머물러 그 식민 지배의 주체가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있다”며 “(식민 지배의) 주체를 빠뜨린 이런 표기는 일본의 책임을 애매하게 하는 것으로 지난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사과를 하면서도 식민 지배의 주체로서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태도는 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의 피해자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분열적이고 기만적인 심리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1945년 패전 후 평화․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성된 일본의 집단 멘털리티를 해부해 일본에서 급속하게 진행 중인 우경화 현상과 비틀린 역사 의식의 원인을 찾는다.

일본 우경화의 뿌리는 ‘불안’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자각도 없이 오히려 한반도를 ‘흉기’라 표현하는 일본 우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나타난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운동이나 사상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왜곡 교과서의 검정 통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더하여 자위대의 국외 활동에 대한 법적 족쇄도 대폭 완화되었다. 이제 군사 무장을 금지하는 ‘평화헌법’만 개정하면 명실상부한 군사 대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군국주의의 부활과 국가주의의 강화를 주장하며 세력을 키워 가는 일본의 우익 세력. 저자는 이러한 급속한 우경화 뒤에 감춰진 일본의 ‘불안’ 심리를 지적한다.

일본은 왜 불안한가? 패전 후 1946년에 공포된 ‘평화헌법’으로 일본은 전쟁과 군대가 없는 ‘현실적’ 평화를 얻었다. 그리고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통하여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친미 반공 군사 독재정권도 일본 전후 평화 체제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화’되면서 군사․외교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안보 소국’ 일본은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거나 한반도 분쟁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더욱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실험 등은 일본이 침략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불을 질렀다. 일본 우익은 그 불안을 국민적 불안으로 확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과 안보 대국화에 대한 일본 사회 전반의 동의를 끌어냄으로써 우경화를 획책하고 있다.

일본 평화주의의 기만적 실체를 읽는다!

2009년 9월 총선에서 54년간 장기 집권해 온 자민당이 참패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넘겨받았다. 우경화 행보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바람이 일부 수렴된 결과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다면 돌아가야 한다는 우경화 이전, 즉 패전 이후 일본 전후란 어떤 공간인가? 과연 돌아가기를 꿈꿀 만큼 평화로운 공간인가? 저자는 가해와 피해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상태에서 모든 역사적 과실을 덮어놓은 채 전쟁 없는 평화만을 말하는 일본의 자기 기만적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일본의 전후 평화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규범적 가치, 명분으로서 평화를 뛰어넘어 이를 ‘평화주의’로 현실화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전쟁과 무장을 포기하는 헌법 9조와 핵무기 제조와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후 평화주의가 비무장 평화로 일관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평화헌법과 자위대가 공존하는 기묘한 상황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 평화주의가 지닌 한계를 제대로 보려면 과거의 경험, 즉 식민 지배, 전쟁, 피폭 체험과 일본의 전후 평화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1953년에 일본 국회는 도쿄 전범재판의 판결을 무효화하면서 전쟁 범죄자 사면을 결의했다. 이 결의는 일본이 자랑하는 전후 민주주의가 미국이라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었다. 또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체험을 내세워 전쟁 침략자로서의 기억을 지우고 세계 평화 운동의 중심에 서는가 하면, 국적에 따라 피폭 보상 제도에 차별을 두는 데서 전후 일본 평화주의의 한계가 드러난다.

“도쿄 북쪽에 자리한 ‘군마 현 원폭 피재자 모임’의 스도 요시히코는 2005년에 현 내에서 열린 전몰자 위령식에서 나가사키 피폭 체험을 들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야스쿠니 문제나 헌법 문제는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 자신이 왜 피폭을 당했고, 피폭 후에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고통이 세계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니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문제의 배제란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 피폭 체험은 1945년 8월 9일에 정지되어 있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없다. 오직 순간의 사실만이 피폭 체험이다. 피폭을 가져다준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고 그 전쟁을 결행한 최고 권력자인 천황이 그 후 피폭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그리고 피폭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전쟁을 찬양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피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과 같은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다. …… 피폭 경험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 3장 ‘자기 기만’ 302-304쪽.

일본이 말하는 ‘평화’의 허구성은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의 비틀린 과거 인식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956년에 일본의 경제기획청은 ‘전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전후란 ‘어둠의 시대’였던 전시(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5년 패전까지)를 지나 전쟁의 폐허로부터 회복하는 기간이나 과정을 뜻한다. 중요한 점은 일본이 생각하는 어둠의 시대에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과 패권주의 정책 아래 이루어졌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 침략 등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타이완과 조선의 식민지화, 괴뢰국가 ‘만주국’의 건설은 어둠의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제기된 ‘종군 위안부’ 문제 등은 1956년에 일본이 이미 끝났다고 선언한 ‘전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에서는 미 군정기에 매듭을 지었다고 생각한 전범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일본의 전후나 그 이후의 ‘번영’이 실제로는 “끝나지 않은 전후”를 “끝났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문제 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나라의 ‘쇳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의 모든 것이 이 ‘쇳덩어리’를 잠깐 숨겨주었던 도금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 1945년 패전은 민주주의와 평화주의 헌법을 가져다주었지만, 이 나라의 ‘쇳덩어리’에 본질적 변화는 없었던 것이리라. 지금 다시 전쟁과 차별의 시대가 오고 있다.”
(2004년에 창간된 잡지) <젠야(前夜)>의 언급은 2000년대 이후에 일본 사회에서 급격하게 진행된 우경화를 경고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경화 이전, 즉 평화와 민주주의의 전후 혹은 포스트 전후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젠야>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목적은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도금’에 가려져 있던 일본의 전후가 과연 어떤 사회였는가를 밝혀내는 데 있다. ― 들어가는 글.24쪽에서

[차례]

1장 분열

전후 평화주의에 대한 반란
일본 좌파는 왜 몰락했는가?
‘혁명’을 찾아 나선 어느 적군파의 삶
죽음 위에 세워진 나리타 공항
나리타 반대 운동의 40년 진화
참치가 일으킨 반핵 평화 운동
아시아를 보는 자기 분열적 시선

2장 트라우마

히로시마 체험, ‘가해’와 ‘피해’ 사이
파괴자의 트라우마
원폭은 누구의 잘못인가?
평화 없는 평화 도시 히로시마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가미카제’ 나라의 병역 기피
비핵 3원칙이 비핵 2원칙으로?

3장 자기 기만

‘니혼’인가 ‘닛폰’인가?
‘작은 나라’ 콤플렉스
일본군과 정신주의
후지산의 불편한 진실
일본 음식과 내셔널리즘
<일본 침몰>로 본 영토 관념
부부 별성(別姓)을 허하라!
‘평화’와 ‘헤이와’

4장 불안

번지는 ‘불안’ 증후군
‘위험한 북한’과 인종주의
일본에는 인권위원회가 없다
‘잃어버린 세대’
이라크에서 살해된 일본인 청년
재일조선인이 던지는 질문
오키나와, 일본 이탈의 꿈
아이누, 선주 민족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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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 불안 , 트라우마 , 자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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