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난 50년 동안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말해 온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정치철학 내지 사상의 집약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정치적 평등의 이상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초기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칸트로 대표되는 이성 중심의 정통적 접근과는 달리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비이성적 측면이 정치적 평등을 향한 인간적 충동을 만들어 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왜 다시 정치적 평등인가
이 책에서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할 정치적 평등을 다룬다. 잘 알다시피 정치적 평등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였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것은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갖는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에서 발원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설득력 있게 설파한 바 있다.
하지만 그 후 어떤 정치체제도 정치적 평등을 완벽하게 실현하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칭송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정치적 평등의 원리는 경제적 불평등과 소비주의, 국가 관료제와 위계적 계층구조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에는 평등의 과도함이 경제적 자유를 억압한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3. 로버트 달의 도전
이 책을 통해 90세를 넘은 노학자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다.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도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이 책의 2장과 3장은 이 문제를 다룬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인간의 이성적 힘인가 아니면 감정과 열정의 힘인가? 반대로 정치적 평등을 제약하는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가 갖는 불가피한 한계들은 무엇인가(이 책의 핵심 장이라 할 수 있는 4장과 5장의 주제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그런 한계나 제약 요인들은 향후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우리가 제어해야 할 지배적인 가치 내지 행위 문화는 무엇이며 반대로 우리가 불러들여야 할 대안적 가치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이는 정치적 평등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아니면 여전히 비관적인가를 다루는 마지막 6장과 7장의 주제다)?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평등의 가치를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권으로 설명하거나 혹은 인간 이성의 합당한 결론으로 정치적 평등을 옹호하는 것은 어떨까?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주제는 초기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였고 1970년대 초 존 롤스에 의해서도 다시 검토된 바 있다. 로버트 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으며 정치적 평등의 원리가 이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오랫동안 그가 발전시켜 온 ① 효과적 참여, ② 투표의 평등, ③ 계몽적 이해의 획득, ④ 의제에 대한 최종적 통제, ⑤ 포괄성 등은 특정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는가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논의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아마도 그렇게 새롭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그 다음이다. 설령 정치적 평등의 원리가 이성적으로 합당하고 규범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인간의 행동이 추동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달은 그럴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그 때문에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인간이 순수이성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달은 뇌 과학과 현대 심리학의 발견에 기초해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한 인간의 인식과 판단력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게 하는 힘으로서 이성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간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이성적 기획으로서 다룰 수 없다면,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택하고 정치적 평등을 위해 투쟁해 온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로버트 달은 결정적으로 데이비드 흄을 불러온다. 로버트 달은 이성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의 지각과 인식, 행동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자 했던 흄을 따라 시기심, 분노, 공감과 같이 특정의 불평등에 반응하는 인간 행동의 정서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분석한다. “우리가 실제 도덕적 목표나 윤리적 목표를 선택하려 할 때 우리를 추동하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이다”라는 로버트 달의 단언은 "이성이란 열정의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던 데이비드 흄의 철학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4. 결정론은 없다
인간 본성에 내장되어 있는 불평등에 대한 저항 내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적 충동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해서, 로버트 달이 정치적 평등을 자연스러운 인간 사회의 귀결로 주장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불평등에 저항하고 평등화를 추구하는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성과 규범의 역할에 의존한 결정론을 부정했지만 대신 열정과 정서의 역할에 의존한 또 다른 결정론을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서적 능력을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정치적 평등을 어렵게 만드는 수많은 요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차이가 있고 집단들 사이에서의 격차는 더욱 크다. 정치 지식과 정치 기술에도 당연히 능력 차이가 있다. 공적 결정에 참여해 평등한 발언권을 향유하는 것에는 시간 제약이 따른다. “20명의 시민이 모인 정치 단위에서, 각각의 시민이 10분 동안 발언권을 얻게 된다면, 타운회의에는 200분 혹은 3시간 이상이 필요하게 된다. 50명이 모인 정치 단위에서 각각의 시민이 10분 동안의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꼬박 8시간이 필요하다. 5백 명의 시민들이 모인 정치 단위에서는 80시간 이상이 필요하게 된다! 민주적인 정치 단위에서 시민들의 수가 증가하면 할수록, 직접적인 참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의 비용은 불가능한 수준까지 빠르게 올라가게 된다.” 또한 국제체제의 역할은 커지고 중요해 지는데 이들의 결정방식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도 문제다. 테러나 경제 위기 혹은 군사적 위기 등 인간사회에 내재된 위험 요인들 역시 시민보다 통치자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불평등 효과를 낳는다. 시장경제의 위세가 커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 과연 이런 한계를 넘어서서 정치적 평등이 확대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한계가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한 미래의 진보를 방해하여 정치적 평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닐까? 달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강력한 힘들이 정치적 불평등을 거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밀어붙여서, 결과적으로 기존의 민주주의 제도들이 심각하게 손상되고 더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적 평등이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될 가능성이다. 좀 더 희망적인 다른 시나리오는 복지나 행복을 향한 욕구와 같은 강력한 인간적 충동이 문화적 전환을 촉진하게 되어, 경쟁적 소비주의라는 지배적 문화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 많은 정치적 평등을 향한 움직임을 강하게 지지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우위에 서게 될 가능성이다.
달은 이 두 미래 가운데 어떤 미래가 현실이 될지는 다음 세대의 시민들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차례┃
서문 : 왜 다시 정치적 평등인가
1. 서론
2.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인가?
3. 정치적 평등이라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4. 감정의 역할이 중시되어야 하는 이유
5. 정치적 평등, 인간의 본성 그리고 사회
6. 정치적 불평등은 심화될 것인가?
7. 정치적 불평등이 약화될지도 모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