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대한 식량지원을 통 크게 하자

[진보논평]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존권 문제다

최근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북한 주민들이 국경 부근 중국 마을까지 건너가 농작물을 훔치거나 나무를 도벌하는 사례가 급증해서 북중 양국간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적게는 5∼6명, 많게는 10여 명씩 무리를 지어 두만강을 건너가는데, 이들 중 대부분 식량을 훔치려고 국경을 넘는다고 하고 나머지 일부만 약초를 캐러 간다고 한다.

게다가 8월말에는 집중 호우로 인해 압록강이 범람하여 평안북도 신의주시가 홍수 피해를 당해 농경지 2천458정보가 침수됐으며 이재민이 수천 명 발생하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

이에 지난 9월 4일 북한 조선적십자회가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쌀과 중장비, 시멘트 지원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내왔으며, 지난 8월 7일 동해상에서 어로행위를 하다가 북한 당국에 의해 나포된 대승호를 9월 7일 송환시켰다. 게다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북측이 먼저 제안해서 오는 17일 실무접촉 등을 통해 순조롭게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여러 가지 정황 속에서 다양한 판단과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겠지만 일단은 어지간히 다급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는 9월 13일 신의주 지역 수해지원을 위해 쌀 5천t과 시멘트 1만t, 컵라면 300만개 등 긴급구호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북측이 요구했던 중장비가 지원 대상에서 빠졌는데, 이는 전략물자로 전용될 가능성과 수해복구 이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한의 지원규모가 북한의 식량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미흡하다.

비관적인 북한의 식량사정

북한의 식량 사정에 밝은 농업 분야 국책연구기관이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바라보는 올해 북한의 식량 수급 전망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0년 1월 공개한 ‘2010년 북한의 식량수급 전망’ 보고에 의하면 북한의 2009년 곡물 생산량(감자 포함)이 정곡 기준 380만∼400만t으로 2008년(431만t)보다 최고 11.8%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또 북한의 올해 식량수요가 523만t에 달해, 단순히 작년 생산량과 비교하면 123만∼143만t이 부족하고, 올해 이뤄질 상업적 곡물수입을 감안해도 대략 100만t 정도 ‘공급 부족’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작황 전망과 식량상황’ 보고서에도 북한이 올해(2009.10∼2010.9) 11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2009년 11월부터 2010년 4월까지 6개월간 외부에서 들여온 물량은 17만7천t으로 예상 부족분의 16%에 그쳤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북한의 식량난은 상당히 심각해져, 식량난 악화로 아사자가 속출하자 북한 노동당이 5월 26일 국가의 식량배급 중단을 선언하고, 주민들에게 식량 자급자족을 지시할 정도였다. 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의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황해남ㆍ북도의 농촌 지역 상황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남도 도당이 조사한 결과, 연안군의 오현리와 풍천리, 청단군 등의 농촌 마을에서는 약 60%의 농가가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배천군의 한 협동농장에서는 15명이 근무하는 한 분조에서 10명이 먹을 것이 없어 결근했다는 것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일하러 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산나물과 풀을 캐러 산으로 가는 농민들이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직까지 옥수수 파종이나 모내기를 못한 농장이 많아 올해 농사에서도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실정이란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국경너머 중국으로 건너가 농작물을 훔치거나 약초를 캐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부터 고사리, 생열귀, 오미자, 룡담초 등의 약초를 중국에 내다팔아 부족한 식량을 충당해왔는데 이런 현물 거래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요즘 북한 땅에는 약초 씨가 거의 말랐다고 한다.

중국 투먼의 국경수비대 관계자는 “최근 북한 주민들이 중국 땅에 들어와 나무를 도벌하는 사례가 늘어 비상이 걸렸다”면서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산림훼손과 농작물 절도죄로 구속됐다가 투먼 세관을 통해 돌려보내진 북한 주민이 2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투먼교도소에 북한 주민 30여명이 수감돼 있는데 강도와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중국법에 의해 처벌받을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월경 절도가 늘자 연변자치주 공안 당국이 북한 측에 국경질서를 더 엄격히 잡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례가 잦아지면서 국경 근처의 중국 주민들은 밭 주변에 높은 울타리를 치고 사냥개를 여러 마리 기르거나 사냥총으로 무장하고 경작지 주변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인도적 지원만이 해결책

이렇게 북한의 식량사정이 악화된 것은 2009년 북한의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았던 데다 남한의 비료 지원도 중단돼 전체적으로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식량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중국과 남한의 인도적 지원뿐이다.

인도적 지원이란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지원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과 제2 개성공단 운운하면서 당장 눈앞의 현안인 천안함 사과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죄를 받아야겠다고 못을 박고 있다.

이들은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해서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것이다. 물론 정부가 결정한 규모의 지원도 북으로서는 매우 고마운 것이며, 앞으로도 북의 태도에 따라 추가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의 태도가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소지가 적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추가 지원을 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냉전보수세력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분배의 투명성과 북한 변화론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퍼주기를 한 결과 분배도 불투명하고 북한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들 문제는 상호 인식의 차이와 주관적인 기대치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분배의 투명성 문제는 양측의 합의 하에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 북한 변화론의 문제는 남측의 보수세력들이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변화의 폭과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북이 여전히 폐쇄적인 체제인 것은 맞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지속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휴대폰 가입자가 10만 명에 이르고 남한과 서구의 대중문화 유입이 일반화된 것만 해도 대단한 변화인 것이다.

남한의 보수세력들이 기대했던 변화의 폭과 수준이 개방개혁의 전면화라면 그것은 곧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수용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비록 최근의 남북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식량지원은 북한주민의 생존권문제이기 때문에 체제와 이념을 떠나서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거 DJ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기의 30-40만t을 반드시 지원하라는 게 아니다. 북의 주민들이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남한의 쌀 재고가 너무 많아 농민들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가 아닌가. 지금이야 말로 이명박 정권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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