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간안내] 『8시간 VS 6시간』(벤저민 K. 허니컷, 이후, 2011)

1. 자본의 시간에 맞선 <켈로그> 노동자들의 이야기

1886년 5월 1일, 시카고 헤이마켓에서 벌어진 역사적 총파업에서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것은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였다. 8시간 노동제가 정착되었을 때, 많은 논평가들은 20세기 말이면 노동시간이 하루 두 시간으로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로부터 70여 년 동안 적어도 ‘표준 노동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과로하는 미국인The Overworked American』의 저자 줄리엣 쇼어도 1976년 이래로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벤저민 K. 허니컷은 현대인의 노동시간에 벌어진 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1930년대 <켈로그> 공장에서 실제로 시행된 바 있는 6시간 노동제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8시간 노동이 채 자리도 잡기 전에 ‘6시간 노동’을 외쳤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표준 8시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노동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한다.

2. 사람을 살리는 노동시간, 유쾌한 6시간 노동제

1930년대, 미시건 주 배틀크리크의 <켈로그> 공장은 기존의 8시간 3교대제를 6시간 4교대제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안을 제시한다. <켈로그> 소유주인 W. K. 켈로그와 사장 루이스 J. 브라운은 이 새로운 제도로 배틀크리크 시의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에게는 더 많은 휴식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6시간 노동제는 그 출발에서부터 당시 대공황에 허덕이던 후버 행정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전 세계 논평가들은 6시간 노동제가 현실성 있는 불황 타개책이면서 지난 한 세기 동안 지속돼 온 노동 시간 단축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대는 현실로 드러났다. 3교대제 당시 일상적인 시간외 근무로 쌓인 피로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의 사고율이 50퍼센트 가까이 줄었고, 6시간제를 도입한 지 5년 뒤에는 도입 전 인력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인력을 추가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증대된 효율성 덕분에 단위당 생산 비용도 낮아져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했던 당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보수를 6시간제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제도를 가장 반긴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줄면서 생긴 추가 시간을 일터와 집안일에서 벗어난 다양한 활동들에 사용했다. 가족 관계가 좋아졌고, 공동체 활동이 풍성해졌으며, 아마추어 스포츠 경기도 늘었다. 공원과 도서관, 레크리에이션 시설은 사람들로 붐볐다. 당시 6시간제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한 언론은 “처음으로 이들은 ‘진짜’ 여가를 가졌다”라고 평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일이 중심이 아닌 삶’을 사는 노동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3. ‘일돼지’들이 승리했다!

1936년부터 <켈로그> 공장에 노조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W. K. 켈로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여가를 통해 늘어난 삶에 대한 통제력은 일터 밖에서만 유효하다.” 작업장에 미치는 노동자들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당시 노조의 주요 협상 목표 중 하나가 바로 ‘표준 6시간제 도입’이었다. 바야흐로 작업장 통제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의 쟁점이 ‘8시간’이냐 ‘6시간’이냐가 됐다. 당시만 해도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 다수는 6시간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력 부족이 심해지면서 주당 48시간 노동을 권장한 대통령령을 근거로 <켈로그> 경영진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시적인 조치’라는 단서를 달며 8시간 노동을 표준화한다. 전쟁이 끝난 후 잠시 6시간제로 복귀하는 듯했지만, 경영진은 8시간을 선택하는 부서에는 시간급을 10퍼센트 인상한다는 약속을 한다.

이에 1947년이 되면 높은 임금 등 ‘손에 잡히는’ 혜택을 선호했던 ‘남성 부서’를 중심으로 거의 절반 정도가 8시간제로 일하게 된다. 여기에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더 관심이 있었던 루스벨트 행정부, 노동을 낭만화하고 신화화하는 사회 이론의 등장,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소비’가 삶의 중심 가치가 된 소비주의 사회의 정착 등이 빚어 낸 분위기 속에서 6시간 노동자들은 1950년을 기점으로 <켈로그> 공장의 소수가 된다. 8시간 노동제를 지지하는 이들을 ‘일돼지’, ‘이기주의자’라고 비웃었던 공장 안 여론은 채 2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6시간 노동제 지지자들을 ‘충성심 없는 게으름뱅이들’로 몰아가는 여론으로 바뀌게 된다.

6시간 노동제는 삶에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좋은 일자리’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소비주의에 기반을 둔 ‘끝이 없는 일’이라는 개념이 여가의 가치를 절하하게 되어 버린 세상에서, 영원히 안녕을 고하게 됐다. 6시간 노동제의 몰락과 미국 내 노동조합이 약화되는 시점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노조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통제력을 확보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임금이나 시간외수당을 올리는 것에 만족하면서 스스로의 협상력을 갉아먹게 된다.

4. 노동시간 단축의 새로운 역사

저자는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경영진의 수기, 언론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6시간제를 끝까지 지지했던 노동자들의 화법이다. 그들은 ‘추가적인 두 시간’에 자신이 한 일을 묘사하면서 “~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식의 ‘자유의 언어’를 주로 사용했다. 반면 8시간 노동자들은 “불가피”하다거나, “해야만 한다”라는 식의 ‘필요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했다. 저자는 ‘표준 8시간제의 정착’을 ‘필요의 언어’가 ‘자유의 언어’를 잠식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필요란 곧 자본의 필요다. 따라서 <켈로그> 공장 6시간 노동제의 역사는 노동이 여가를 몰아내고, 개인의 자유를 경제 성장이라는 논리가 압도해 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997년 IMF 구제 금융으로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유한킴벌리>는 4조 2교대제라는 혁신안을 제시하며 오히려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봤다. <포스코> 역시 2011년 4조 2교대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노동 문제의 해법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전략’과 맞물려 이미 비정규직화된 노동을 더욱 유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자본의 전략으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이 그 의의를 발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통제력을 높이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이 책은 노동시간 단축이 단순히 노동시간 줄이기나 일자리 나누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일터를 틀 짓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목차

1장 <켈로그>의 해방적 자본주의
2장 시간에 대한 투쟁
3장 오늘을 살아라!: 배틀크리크의 여가
4장 6시간 동맹의 붕괴
5장 8시간제 연합의 성장
6장 일, 삶의 중심으로 다시 자리 잡다
7장 <켈로그> 노동자들의 후퇴
8장 6시간제 매버릭들
9장 6시간제의 죽음
태그

노동시간단축 , 8시간 ,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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