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중, 혁명방어위원회 발의

[국제통신] “쓰러진 이집트 독재정권, 계속되는 혁명”

이집트 민중은 결국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비정규 청년노동자에 대한 이집트 경찰의 살해에 대한 분노로 점화된 정권퇴진 시위가 1월 25일 촉발된 지 18일째, 무바라크가 10일 퇴임 거부 의사를 다시 완강하게 밝힌지 24시간만의 일이다. 금요일 저녁 무바라크 사임 후 민중봉기의 거점, 타흐릴 광장은 환호의 물결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이집트 민중은 무바라크 이후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정권 쓰러뜨린 이집트 민중 봉기

[출처: http://www.ctuws.com/]

10일 저녁 그는 이집트 민중의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고 카이로에는 수백만명 이상이 모여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사퇴를 위해 시위를 벌였다. 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등 지역에서 확산된 시위 물결 그리고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시위은 급격하게 확산돼 갔다.

애초 2주째 진행된 시위는 이집트 민중의 단호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무바라크는 사퇴 전 수일 동안 양보안으로 자신의 권좌를 끝까지 움켜쥐려 완강하게 버티며 정체의 양상을 보였다. 외신들은 시간 싸움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9일을 기점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공장으로 확산된 시위는 이집트 핵심 산업을 거세게 위협하며 무바라크 퇴진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9일 2만개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을 멈췄다.

조지타운 대학의 동시대 아랍연구센터 아랍정치학 교수 삼머 스헤하타(Samer Shehata)는 11일 <인 디즈 타임즈>에 노동자 파업들이 임금과 수당 같은 이슈에 집중됐을지라도 “독재정치체제의 문맥에서, 모든 저항은 정치적이고, 그것은 필경 ‘빵과 버터’ 이슈들에 대한 시위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10일 무바라크 입장에 의해 고조된 시위와 함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측면에서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정치적 요구를 증대시킬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특히 8일 시작한 수에즈 운하노동자들의 파업은 세계경제에 의미있는 압력을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도이치벨레> 8일자는 이집트경제는 세계경제에서 주요한 부위를 차지하지 않으나 운하는 문제가 다르다며, 운송 차질에 따른 원유비와 원자재비 인상이 미국을 포함한 국가 수출산업에 위험을 전할 수 있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를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폭발할 듯이 불어난 수많은 시위자들은 카이로 도심 헬리오폴리스의 부촌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이동해 시위를 벌였고, 타흐릴 광장 점거에 이어 시위자들은 광장 근처 의회 진입로 또한 점거했다. 또한 이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확성기로 간주하는 카이로에 있는 라디오와 방송사 건물도 봉쇄했다.

또한 세계사회주의자웹사이트(www.wsws.org)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2번째로 큰 알렉산드리아에서도, 11일 가장 큰 시위가 벌어졌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수킬로미터를 굽이치며 나아갔다. 무바라크의 알렉산드리아 궁전 또한 시위의 초점이 되었다.

계속해서 수에즈에서는, 수만명이 10개의 정부 청사 주위에서 시위를 벌였다. 도시 시나이에서는 시위자들과 경찰 간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총을 쏘았고, 시위자들은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차에 불을 붙였다. 이집트의 남부 지역의 한 지사는 아침 폭력적인 시위 앞에서 달아나야 했다.

군부

11일 물러난 무바라크에게 권력을 넘겨 받은 군사위원회 대변인은 12일 국영방송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제도를 약속했다. 연이어 13일 이집트 군사위원회는 양원 해산을 공포했고 새로운 선거가 6개월 안에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헌법개정을 위한 전문위원회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이 위원회에 배치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비상사태도 여전히 지속 중이다.

[출처: http://www.guardian.co.uk]

군부는 또한 13일 타흐릴 광장의 바리케이트를 철거하기 시작했으며 다시 차량이 통행되고 있다. 그러나 무바라크 퇴진 외 계속적인 요구 이행을 주장하며 타흐릴 광장에 남은 수백명의 시위자들은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타흐릴 광장을 지키고 있는 한 시위자는 13일 <가디언>에 "군인들은 우리에게 가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천막을 치웠지만 우리는 남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정부를 원한다. 우리는 민간정부를 원한다. 그들은 우리의 혁명을 훔쳐가고자 한다"며 타흐릴 광장을 중심으로 혁명을 지킨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시위대, 혁명방어위원회 발의

한편, 시위 조직가들은 13일 오는 금요일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승리의 행진”을 발의했다. 또한 이집트 대중시위의 몇몇 조직가들은 이외에도 혁명방어위원회도 제안했다. 위원회의 과제는 격변의 시기에 군사위원회와의 대화로 혁명을 전진시키는 데 있다. 이로써 이들은 약속 이행을 위해 군부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또한, 파업시위도 지속중이다. 13일 수백명의 경찰들이 카이로 정부청사 앞에서 임금인상을 위하 시위를 벌였다. 2천명의 이집트은행 노동자들 또한 파업을 벌이고 은행장의 퇴진과 회사내 임금체계의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석유산업 노동자, 공공교통 노동자 그리고 환경부 공무원들도 파업을 벌였다.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이해 관계를 배경으로 이집트 경제의 45%를 지배하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 군부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혁명의 열쇠는 여전히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이집트 민중의 손에 달려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도이치벨레> 10일자에 따르면 이집트에 조직된 야당은 크게 6개의 조직들로 대표된다. 우선 모하메드 엘 바라다이(Mohammed el Baradei)가 이끄는 <변화를 위한 전국연합>. 그는 유엔원자력기구 IAEA의 대표였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집트 민중에 대한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무바라크 정권시절 금지됐던 무슬림형제단은 현재 가장 크며 가장 잘 조직됐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향후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혀 왔다. 한편, <케파야(Kefaya)>는 “충분한”이란 뜻으로 2004년 노동조합대표 조지 아이삭(George Ischak)에 의해 조직됐다. 이들은 중간계층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며, 2005년 무바라크 정권에 맞선 저항운동을 처음으로 조직했다. 이외에 자유민주주의 성격의 와프드당, 좌파성격의 <타감무당> 그리고 2008년 노동조합 파업시위에 동조하며 조직된 <4월 6일 운동>이 봉기한 청년들의 중심적인 조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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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똘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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