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숲을 불태우는 중동지역 노동자 민중의 거센 바람

[진보논평] 이집트에서 한국의 미래를 본다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이집트인들은 변화를 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5년에 이르자 이집트인들은 더 이상 변화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수십 년 안에 뭔가가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2011년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사임했다. 민중들의 고통이 임계점에 다다랐던 것이다.

이집트 정부는 2000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전을 수용하여 전력공급회사 15%를 사유화하고 석유회사 40%를 사유화한다. 이집트 GDP 규모가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서서 1999년 5%이던 것이 2002년에 2%로 떨어졌다. 달러 대 이집트 파운드 비율이 3.4에서 2001년 4.25로 떨어졌다. 이집트 파운드 교환비율을 자유화하면서 지역의 화폐가치 중 40%가 사라졌다. 그 탓에 외국인 투자액 3분의 2가 날아갔고 비공식 집계로 실업률은 20%로 고공행진을 했다. 빈곤선 이하에서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35%에서 48%로 뛰었다.

2003년 이집트는 극심한 물가고에 시달렸다. 화폐가치가 급락한 탓이었다. 몇몇 부문에서는 물가가 40%나 뛰기도 했다. 공공부문 예산안을 10.4% 늘리면서 물가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12만 개 늘리겠다고 천명했지만 예산안 소폭 상승으로 끝났을 뿐이다. 이집트 정부는 기업에 토지를 아주 매력적인 가격에 사들일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대신 수백만 명의 이집트인들로부터는 일자리와 수입 원천을 박탈했다. 이 와중에 기업은 민중의 돈을 들고 해외로 도피했다. 투자액 중 80%에 해당하는 이집트 파운드 3550억이 기업으로 들어갔고 변제되지 않은 채무액이 2000억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말해 ‘사적 자본주의’가 활개를 쳤다. 소농들은 농업 크레디트를 변제할 능력을 잃고 감옥까지 갔다. 2003년 새로운 노동법이 통과되어 노동자들의 권리가 향상되기는 커녕 고용주들이 피고용자를 마음대로 해고하고 임시계약을 하거나 직장폐쇄를 일삼았으며 모권과 어린이 케어도 포기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파업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노동법 발의에 참여했다. 노조가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를 대변했던 것이다.

2011년 새해가 열리면서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고 있다. 권력의 숲을 불태워 버리는 노동자 민중들의 불길이 어디까지 거세게 밀어 붙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2004년 이집트 변화를 위한 운동(케파야), 샤밥이라 불리는 청년 운동이 대학 안팎에 나타났다. 그 해 9월 샤밥의 회원들인 35 명의 젊은 남녀들이 무바라크 재선 반대 캠페인을 벌였고 대통령 선거를 보이콧했다. 2005년 5월 7일 노동자들이 많은 정당과 우파 지지 세력과 협력한 형태였긴 하지만 처음으로 정치적인 몸짓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과 중산층들 중심의 케파야 운동이 선거에 관여했다. 그들은 침묵 행진과 촛불을 주도했다. 좌파는 규모는 작았지만 어떤 운동에도 결합하지 않았다. 무슬림 형제단하고도 협력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이집트 노동자들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110만 개에서 40만 개로 줄었다. 70년대 중반 이후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하면서 산업지대가 새로운 도시로 옮기고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2006년 12월과 2007년 9월 엘-마할라 파업에 72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면서 이집트에 노동자 계급 투쟁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인 1998년부터 2006년 사이에도 수많은 파업이 있었다. 파업의 성공 여부를 떠나 노동자 운동의 잠재력을 보여준 파업의 저항들이었다. 이 파업은 2008년 4월 6일 재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 때 페이스 북이 등장했다. 5개 정당과 이집트 동맹은 파업을 요구했지만 이집트 연합조합 위원장인 후세인 모가버, 엘-마할라 지도자들이 파업의 끔찍한 결과들에 대해 경고를 하면서 파업 철회를 설득했다.

이집트 노동자 운동은 그 이전의 성공과 실패 혹은 한계를 넘어 공공부문 노동자, 농민, 자유 직업 등 노동자 계층이 넓어지고 새로운 조직 형태가 출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 피고용인들이 이집트에서 5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연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2009년 사법부 전문가들이 두 달 동안 파업을 벌였고 탄파 플랙스 사 노동자들이 5개월 간 파업을 벌였다. 이집트 노동자 운동은 아직 스스로를 조직할 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이 서로 연결되고 공장 수준을 넘어 운동을 통일시킬 수 있는 공동의 요구들을 찾기 위해 더 넓은 맥락으로 이동해가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1년 중동, 북아프리카를 뒤덮고 있는 변혁의 미래는 우리가 가야 할 변혁의 매래 상이기도 하다. 사유화가 만연하고 부패가 코를 찌르며 물가-실업률이 고공 행진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은 이집트의 그 동안의 10년 역사를 닮았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노동자 민중들이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를 것이다. 구제역, 전세 값 폭등, 한반도 대운하 후유증 등 이집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문제도 만만하지 않다. 다르다면 정부가 사법부를 억압하는 이집트와 달리 검찰이 정부와 놀아나는 모습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이집트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집트 계급투쟁의 역사 또한 현장엔 파업 분위기가 없고 지도부는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거나 파업 중단을 종용하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거기다가, 한국 사회에 또 다시 선거 바람이 불 조짐이다. 노동자 민중이 요구하지 않은 선거에 왜 우리는 참여, 개입 등의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이 개회하겠다고 하면 국회를 여는 것인가. 개헌은 이 재오 특임 장관 혼자 하겠다면 하는 것인가. 노동자 민중이 요구하지 않은, 국회, 개헌, 선거를 왜 열고, 하고, 치러야 하는지 심각하게 자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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