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말한 프레임 전쟁처럼 좌파는 프레임 전쟁에서 계속 밀린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새로 선출된 한나라 당 지도부가 반값 등록금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집회를 벌이고 청와대로 진출하려고 하던 대학생 몇 명이 연행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보궐 선거에서 패배했고 내년 총선 대선도 있고 하니 포퓰리즘으로라도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반값 등록금 정책이 제대로 실현될 리 없다. 이미 성적이나 가정 형편 등을 기준으로 반값 등록금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반값 등록금 정책이 왜곡되어 가고 있다.
중앙일보는 반값 등록금 정책 이전에 재단의 전입금 문제 먼저 해결하라고 호통을 쳤다. 대학들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펀드에 투자해 손실을 보고 신축 공사 등으로 돈을 재단으로 빼돌리고 있는 이미 다 알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대학 총장들은 반값 등록금 문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36조원 이상을 자랑하는 한국 대학들의 자산 규모는 어디가고 반값 등록금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문제가 왜곡 변형되어 가겠지만 한나라당이 내건 프레임은 진보 세력들이 내건 프레임보다 월등한 것처럼 보인다.
프레임은 결국 언어로 표현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핵 문제도 고엽제 문제도 아니다. 땅 문제, 아파트 문제, 등록금 문제, 청년 실업 문제가 중요하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처럼 당장 돈을 떼인 고객들의 고통이 문제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들은 당을 둘러싸고 합종연횡에만 목을 매단다. 일반 대중들은 지금 이 곳에서 당하고 있는 고통의 바다에서 프레임을 길어오지 않는다. 지금 진보의 대합창 같은 압력단체 결성이 중요한 사안일까.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 과연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일까.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합치기로 합의했다. 수업 시간에 앞으로 졸업생 두 명 중 한 명은 백수가 된다라는 다음 포털의 한 줄 메시지를 전달하자 ‘무섭다’라고 반응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정파들의 이합집산이나 합종연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는 왜 반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프레임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까? 기본소득이라고 말해봐야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신당의 현수막에 적힌 대로 최저임금 천 원 더 올리자고 해 봐야 일반 대중들은 백수나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이 더 무섭다. 과연 좌파는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운동을 하고 정책을 개발하는가? 너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다보는 것은 아닐까?
좌파의 정책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공포를 걷어가게 해준다는 확신이 일반 대중들의 뇌리에 보편적으로 각인되지 않는 한 좌파의 대중운동은 불가능하다. 개념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정책들이 일정한 프레임 안에서 언어로 표출되어야 한다. 좌파적인 프레임의 언어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핫팬츠와 7부 바지의 유행처럼 가공되어 전파되지 않는다면 개념에 의한 계몽으로는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 논의는 개념을 통해 가동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 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무상급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이념에서 떨어져 나온 개념으로는 프레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고 그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 현실에서 추상된 개념으로는 지배세력과의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인간은 자기와 종적으로 유사한 생명체의 죽음에는 공감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명체의 죽음에는 무감하다. 개구리가 차에 깔려 죽는 것에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포유류 인간과 유사한 고양이나 개가 죽으면 슬픔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무덤을 만들어 묻어준다. 일반 대중에게 좌파는 개구리다. 일반 대중들에게 노동자는 개가 아니다. 자기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존재이거나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되었든 아니든 간에 ‘정’에 약한 곳이다. 일반 대중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할 필요 없다. 모든 것이 자기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나만 광우병 소고기 안 먹으면 된다. 일반 대중의 이기주의는 여기까지 간다. 좌파가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프레임을 개발해야 한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등 시민사회운동을 비판하고 거기에 기본소득, 사회연대소득을 들이대 봐도 무상급식 논의가 나올 때 좌파는 이미 프레임을 빼앗기지 않았는가? 한나라당에 프레임을 빼앗기고 시민사회운동에 프레임을 다 빼앗기고 나서 무슨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란 말인가?
현재 부상하는 무상급식, 보편적 복지, 반값 등록금 등의 프레임은 내년 말까지 간다. 이미 늦었다. 언어는 계급투쟁의 장인데 좌파는 계급투쟁의 장에서 제도정당과 시민운동에 비해 프레임 설정이 늦었다. 6월 초는 최임 투쟁이 시작되는 날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자본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일반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국민 임투라고 하면서 프레임 전쟁에서 탈선하고 계급투쟁도 회피한다. 박근혜가 부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래의 전망이 불확실한 것처럼 좌파는 프레임 설정에서 보여주는 것이 없다. 반자본 투쟁의 프레임과 제도정당과 시민운동이 제기하는 프레임이 섞일 수 없는 것이라면 계급투쟁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프레임 설정에서 기존 권력들을 앞질러야 한다. 좌파가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미래에도 차이 없는 반복만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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