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가 사라졌다. 지난 2월 카다피의 42년 독재에 맞선 평화시위로 시작한 리비아 민중의 투쟁은 시민군의 무장투쟁을 통해 마침내 지난 8월 24일 수도 트리폴리를 접수했다. 8월 20일 인어의 새벽 작전이란 이름 아래 나토군의 엄호 아래, 트리폴리내 민중봉기와 시민군의 포위공격으로 시작된 작전이 격렬한 교전 끝에 시민군의 군사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외견상 반카다피 리비아혁명은 6개월간의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리비아 민중들 자신만의 힘이 아니라, 유럽제국주의의 군사력에 의지한 승리였다. 따라서 그 대가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나토와 EU의 의도 - 제국주의는 무엇을 얻었나?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이 된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은 1997년 코소보 공습이나 2003년 이라크 공습에 비해 제한적 군사작전이었다. 지상군 파견을 배제한 나토군은 시민군의 전사들의 무기공급 요구를 거부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 한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경로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무장시킨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같이 제국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기는 Yes, 지상군은 No”라는 어느 시민군 병사의 표현대로 리비아의 역사적 반제국주의 전통 역시 고려사항이었다.
한편에서 공습을 지속하면서도, 제국주의 세력은 카다피와의 협상을 지속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시민군의 비타협적 태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제국주의 세력의 의도가 혁명으로 동요하는 아랍지역의 안정화, 즉 카다피 없는 카다피 체제의 수립이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언론의 폭로된 포스토 카다피 체제의 청사진은 제국주의의 석유이해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속으로 요약된다. 독재타도와 권위주의 청산, 민주주의 정착 등은 수사일 뿐이고, 무장과 막대한 인명피해도 불사한 리비아 민중의 분노와 생존권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
42년 철권통치를 끝장 시민무장혁명, 그러나....
카다피 독재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유일한 수단은 무력투쟁이었다. 친위세력의 압도적 군사력 앞에 제국주의세력의 “인도주의적 개입”(?) 요청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거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악마와의 거래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결정적 약점은 반카다피 세력의 내부적 통일성 부재이다. 카다피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단결했지만,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둘러싸고 부족적, 지역적 갈등의 요소가 상존하고, 카다피 정권에서 이탈한 과도국가평의회(NTC) 내부의 구 카다피 세력에 대한 기층의 불만은 상당하다. 이는 무장투쟁의 전과정에서 전선의 시민군 병사들과 지도부 사이에는 갈등으로 표출된 바 있다.
따라서 리비아혁명은 카다피 족벌 독재체제를 무장투쟁으로 종식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한 대안은 부재하다. 과도국가위원회가 제국주의의 지도 아래 정상국가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민주화 이행에 돌입하겠지만, 카다피 체제의 모순인 민주주의와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추진할 만한 주체의 조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리비아혁명의 성과는 사실상 카다피 없는 카다피 체제의 수립으로 귀결될 것이다.
리비아 “혁명”과 아랍혁명
카다피 체제의 몰락의 궁극적 원인은 42년 개인장기독재와 족벌체제의 모순, 특히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반제국주의에서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로의 전환과 그로부터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화였다. 카다피 체제를 몰락시킨 리비아혁명은 튀지니와 이집트혁명에 이어, 아랍혁명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나 혁명군의 불가피한 선택은 아랍지역의 거대한 변혁을 두려워 하는 제국주의세력에 개입의 기제를 제공함으로써 혁명 자체를 위협할 위험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에상치 못한 거대한 대중투쟁의 물결은 단지 장기독재체제를 타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야합에 대한 대중적 심판이기도 했다. 아랍혁명은 이슬람근본주의로 변형된 아랍사회의 지형을 바꿈과 동시에, 새로운 반제국주의 투쟁의 가능성을 담보하기에 제국주의 세력에게 막대한 위협요소였다.
대중투쟁의 정치적 경험과 민주주의의 확장은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을 중심축과 그에 기생하는 신자유주의적 매판정권의 느슨한 연합으로 구성된 현재의 아랍내 지정학적 질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특히 팔레스타인문제를 아랍 전체의 문제로 재점화시킨다면, 미국-유럽 제국주의의 아랍 석유지배 체제는 종식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체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 반독재투쟁으로 단련한 대중적 정치세력이 조직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민주화혁명을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확장시킬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외형상 가시적 조직주체의 부재는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의 득세를 불안정의 요소로 꼽지만, 아랍정치의 이슬람화 전망은 대중적 노동운동과 조직된 좌파의 사실상의 부재 또는 취약성에 의한 착시현상일 뿐이다.
아랍혁명의 과제와 전망
리비아혁명은 나토의 군사지원으로 아랍민주화혁명의 대열에 동참했지만, 제국주의의 개입경로를 열어놓는 원죄의 씨앗을 뿌렸다. 지상군 투입을 꺼려했던 나토측으로선 리비아인들의 피로 원하는 성과를 거둔 셈이지만, 리비아 민중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아랍혁명의 미래에 리비아 사태가 미칠 파장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아랍혁명은 아직 진행중이다. 몇 명 독재자와 그들의 협력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에서 투쟁이 계속되고 있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착과 사회경제적 확장을 위한 대중투쟁의 성패 여부가 아랍혁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더불어 각국의 내부정세 외에도, 제국주의의 지배구도가 관철되는 아랍의 지정학의 근본적 변화를 둘러싼 변화도 예측된다.
역사적으로, 아랍민주화 혁명은 1950년대 식민지독립과 1960년대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운동의 확산의 거대한 역사진보가 제국주의의 포섭체제로 굴절되면서, 또 이슬람근본주의로의 변형을 넘어서 도달한 새로운 단계의 변혁이다.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의 실패가 상징하는 아랍좌파의 실패가 근본주의의 성장에 한 요소를 제공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아랍혁명은 변화된 국내외적 지형 속에서 새로운 역사적 주기의 민중주체를 세움으로서 일국적 민주화혁명만이 아니라, 아랍지역 전체의 반제국주의적 지형변화를 가져올 국제적 공동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아랍민중의 연대를 복원하는 데에 아랍혁명의 국제적 의의와 미래가 달려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이스라엘 식민주의 체제의 종식 여부가 그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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