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는 항상 외롭고 쓸쓸한 체제였다. 그것은 북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도 있지만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에 의존하면서 체제를 운영해야 하는 ‘고독한 군주’였다. 이제 그의 죽음은 또 다른 ‘고독한 군주’를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남한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남한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사회의 진보운동이 일상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안보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김정일의 죽음은 남한 진보세력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벌써부터 일부 언론에서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출처: http://news.xinhuanet.com/video/2011-12/19/c_122446199.htm] |
그런데 이번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불거진 의혹은 이명박 정부가 언제 인지했는지의 시점문제이다. 유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보편적이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의혹이다. 즉 조선중앙통신이 오늘(19일) 정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는 발표를 접하면서 김정일 죽음을 인지했다는 이명박 정부의 발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정보 수집력과 장악력이 대단히 뛰어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낌새도 못 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중국은 당시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도 인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북한당국의 공식발표를 기다리면서 향후 대응전략을 공동으로 모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북미 3차 대화가 22일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이르면 오늘 워싱턴에서 대북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에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추정이 불편하다면 대통령의 일본방문 일정이 사망을 인지한 뒤 시점인지, 아니면 인지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된 것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공식발표를 사망 이틀 후에 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북한 내부의 혼란이나 특별한 징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추정컨대 그 사이에 북한 내부의 충격을 완화하고 향후 닥쳐올 한미일의 협력적 압박에 대해서 김정은 후계체제 중심으로 체제를 보위하면서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중국에게 전달하면서 협조를 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러한 추정이 사실로 확인되고 현실화된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한미일과 북중러 삼각 대결 구도로 동북아 정세가 단기적으로는 더욱 불안정하게 전개될 것이다.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변수는 2012년 남한에서의 선거를 강제하는 규정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지는 차후 문제이지만 당분간 그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체제의 전망이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극심한 내부혼란 없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소의 불만세력들이 저항하거나 주민들의 탈북행렬이 예상되지만 그 수준과 범위는 위협적일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전망은 김정일 위원장이 생존시 자신의 사망 이후의 후계체제를 준비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돈독한 협력적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 권력투쟁이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김정은을 든든하게 후원하고 지원할 수 있는 리영호, 김영철, 최룡해, 리영수, 문경덕, 지재룡 등 당정군 엘리트들로 포진시킴으로써 권력토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김정은이 권력체제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김정은이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김정은의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 세력의 충성도를 감안하면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수렴청정 체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전망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로서 장성택이 군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장성택이나 군부가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다른 마음을 먹은 세력이 등장하면 이에 맞서 유사한 세력들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극심한 내부 동요와 혼란이 조성되어 체제의 불안정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의 죽음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매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느 한 체제가 일방으로 권력구조와 세대교체를 단행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쌍방향적 소통과 교감을 통해서 체제를 일신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한미일 3국이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변화를 촉발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를 유발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정치적 기획이 한반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에서는 차분하게 북한의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불필요한 자극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일부 언론에서 조장하고 있는 불안감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중들의 올바른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또 다시 북한을 매개로 정치적 성과를 노리는 꼼수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