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봉사자가 아니라 사회복지 노동자입니다”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1월 31일 이00 용인시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자살
2월 26일 강00 성남시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자살
3월 19일 안00 울산시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자살
5월 15일 김00 논산시 사회복지담당공무원 자살
10월 29일 박00 양평군청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과로사...

복지국가를 부르짖는 한국사회에서 2013년을 살아가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이다.

지난 4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실시한 ‘사회복지 공무원 건강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37.9%가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 고도 우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7.5%는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A씨(여, 44세)는 12년째 알코올중독자나 우울증, 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마주한다. 민원인들의 분노와 짜증은 고스란히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개인의 몫이다. 사회복지 업무뿐만 아니라 밀려드는 행정업무까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돼버린다.

“처음에 돕겠다는 마음을 갖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그분들의 힘든 이야기나 험한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힘들 때가 많아요. 만취한 상태로 칼을 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고, 심한 우울증에 몇 시간씩 하소연을 듣다보면 지치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겁이 나더라도 내색할 수 없으니까... 전화로 항의하던 민원인이 ‘찾아 갈테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 하루 종일 문만 바라보게 돼요. 언제 그 민원인이 들어와서 욕하고 고함칠지 모르니 겁에 질려 하루를 보내요. 10년 동안 이런 저런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이력이 났을 것도 같은데, 사람들이 하는 욕설은 시간이 갈수록 피하고 싶지 적응이 안 돼요. ... 주변에 10년 이상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행정직에 비해 수도 적고, 우리의 감정노동이나 업무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해도 다른 공무원들이 잘 이해를 못하니까... 소외감 같은 것도 느껴요.”

연이은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의 죽음 이후 보건복지부는 몇 가지 대책을 내놓으며 과도한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신규인력 채용을 약속했지만, 안전행정부와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보건복지 업무를 하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의 소속은 안전행정부다.

정부의 대책마련 뒤 현장에서 어떤 점이 달라졌냐고 물으니, A씨는 "달라진 점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의 죽음에 보건복지부나 정부의 사과 한마디조차 없는 현실은 화가난다."고 답했다. 13년째 사회복지 담당업무를 맡고 있는 B씨(여, 49세) 역시 정부의 개선방안 중에 피부에 와 닿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업무가 많으면 세세하게 조사하기도 어려워요. 사회복지 서비스라는 게 사회 관리도 들어가고, 일대일 집안 형편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인데 현재 공적 전달체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해요. 사회복지 담당자로서 여러 행정업무까지 가중되는 게 아니라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면, 개개인에 대해 파악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실태조사를 넘어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 이런 것도 많이 갑갑해요. ... 사람이 늘면 업무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다른 직군이 했던 업무까지 사회복지 담당자가 수행하게 되니깐... 정부에서는 개선방안을 마련한다고 때마다 실태조사도 하고 하는데, 대책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은 적이 없어요.”

[출처: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높은 감정노동

국가인권위원회가 11월 15일 발표한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2,808명의 민간사회복지시설, 학교, 공공기관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공무원 대상으로 실시)’ 결과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들이 다른 보건복지 분야 노동자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 임금은 월평균 196만 4천원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의 80%수준이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2.9시간이었지만 출근 전이나 퇴근 뒤 약 85분을 더 추가 근무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약 50시간 정도였다. 사회복지공무원의 경우 주 49.5시간에 추가근무를 고려하면 주당 60시간 가량을 일하고 있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들은 다양성을 요구하는 감정노동의 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응답(1,2번 문항)한 비율은 82.4%와 74.1%로 나타났으며,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야한다는 응답(3,4번 문항)도 88.8%와 90.0%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감정표현의 내면행위는 노동자 스스로 진심으로 친절한 감정을 고객에게 표현하기 위해 일종의 자기 최면이나 내면적인 노력이 상당히 필요함을 의미하는데, 사회복지사들은 82.4%와 82.7%(7,8번 문항)로 높게 나타났다.

감정노동의 내면행위 수행정도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높았고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감정노동을 다양하게 더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실제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조절해야 하는 압박이 노동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이러한 감정조절이 여성들에게 더 많이 요구되고 있었다. 또한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감정노동을 다양하게 더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드러나 고용불안이 감정노동과 연관성을 나타냈다.

감정적 소진과 관련한 조사 역시 정서적 고갈 46.4% 근무시간 뒤 녹초가 된 느낌 61.4%, 출근 시 피로감 64.5%로 높게 나타났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들어주고 하면 힘들죠. 그런데 저는 그게 그냥 사회복지사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항상 웃어야 하고 항상 친절해야 하고. 어찌됐건 민원이 발생하면 처리해야 하고, ‘알겠습니다’ 해야 하고, 내가 기분이 우울해도 속마음이랑은 다르게 항상 웃고 친절해야 되고, 뭐 예를 들어 당장 상사한테 깨졌다고 해도 그걸 이용자한테 드러내면 안 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게 거의 뭐 사회복지사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배웠다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거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때로는 힘들죠.”(인권위 면접조사, 남, 34세)

대부분의 사회복지사들은 C씨처럼 자신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을 감정노동이라 인식하지 못한 채 ‘사회복지사의 자질’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사회복지사의 노동권 보장, 노동강도 완화가 시급

감정노동은 대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사회복지사는 고객을 대면하고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지원뿐 아니라 인격적 존중의 자세를 표현하기를 기대받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감정은 있는 그대로 고객에게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부터 희생과 봉사가 강조됩니다. 민간 사회복지 기관들이 사유화되고 비민주적인 운영체계들이 있으니깐, 시설장이나 상급자들에게 폭언, 비인격적 대우 등도 많고... 사회복지시설 같은 곳은 이용자들에게도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에 노출되더라도 항상 밝고 친절하게 대해야 해요. 일반 기업에서는 친절교육이나 스마일 교육 같은 것을 하는데, 사회복지사들은 그런 교육이 필요가 없어요. 이미 스스로가 친절과 봉사를 내면화해서, 자기 검열기제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현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직국장은 이러한 ‘복지’ 업무의 특성상 사회복지사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자로 이해되기보다는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업무스트레스나 감정노동의 수행은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참고 견뎌야’ 더 훌륭한 사회복지사로 평가받고, 개인이 극복하지 못하면 무능력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현장의 특수한 조건은 노동자들에게 ‘내가 그런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내면화시켜온 부분이 많아요. 사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인권침해로 느끼는 것은, 보건의료 쪽과 비교하면 수치는 비슷하게 나오는데, 외부화하거나 표면화하는 것은 굉장히 수치가 낮게 나옵니다. 이런 결과는 사회복지사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이데올로기 측면이 큽니다.”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내면화해 수행하는 사회복지사들. 이들의 감정노동과 소진 해소를 위한 대책마련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현석 조직국장은 충분한 휴식, 적정한 노동시간, 감정노동의 인정 등 '노동자로서의 노동권 보장'이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에서 감정노동과 감정소진 해소를 위해 교육이나 프로그램 등을 통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복지사의 기본적인 노동권이나 인권에 대한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과중한 노동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인력기준을 재설계해야 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근로기준법 위반이 태반인 거주시설의 경우도 예산확보 등을 통해 노동 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사회복지사들이 더 잘 아는 것들인데, 감정노동을 높게 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내버려두고 프로그램만 마련한다는 건 근본대책이 아닙니다. 충분한 휴식과 감정소진에 대한 재충전을 위한 노동환경이 전제되어야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지원프로그램도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과중한 업무와 사회적 무관심속에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사회복지사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안타까움 죽음이 사회적 관심과 사회복지사들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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