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요”

[오늘, 우리의 투쟁]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현희숙 부지부장 인터뷰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현희숙 부지부장

콜센터 노동자로 십여 년 간 일해 왔다. 비정규직이 급속히 확산되고 안착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일하면서 체감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13년 전에 대한생명에서 텔레마케터 일을 처음 시작했다. 텔레마케팅으로 보험 상품을 판매한 지 몇 년 지난 시점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보험설계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일을 할 수 있었고 처음에는 근무조건도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 보통 주5일 근무에 9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졌고 이후의 근무는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기본급에 성과급이 더해지는 시스템이었지만 급여도 평균적으로 250만 원 정도는 됐다.

그렇게 몇 년 일을 하다가 2004년 어느 날 느닷없이 여의도 63빌딩에 있던 콜센터들이 노량진 CTS방송국 건물로 모두 싹 나가게 됐다. 위탁업체가 들어온 것이다. 대한생명은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생명과 관련 있는 위탁업체가 들어와서 다른 데보다는 덜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우리를 직접 관리 감독하는 실장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하중이 이미 달라진 느낌이었다. 잔업을 강요하고, 토요일도 나오라고 했다. ‘업적이 인격이다’ 라는 등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말들이 나오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당체계도 해마다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생명 상담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유야무야 합의가 되어버렸다.

대한생명에서 일하던 중에 홈쇼핑으로 보험 판매가 시작됐는데, 그때부터 근무조건이 급격히 나빠졌다. 보통 7-8시까지 일하고 어떨 때는 토요일에도 일하고.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순간이 왔다. 그만 두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병가를 줘서 쉬고 나갔더니 더 하기 싫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만 뒀다. 홈쇼핑 보험 판매의 경우, 토요일 비상근무도 많고 근무시간도 절대적으로 길고 중간착취를 하는 업체들이 많다. 물론 모든 위탁업체가 나쁜 건 아니다. 가끔 개인이 운영하는 업체의 경우에는 대체로 여성들이 많으니 어느 정도 배려를 해주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쟁이 과열되어 다들 상담원을 쥐어짜기에 바쁘다.

대한생명을 그만 둔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니까 이미 다 간접고용이 되어 있더라. 우리 급여가 지금은 평균 100만 원대다. 예전에는 최소 200만 원은 받았었는데. 십여 년 사이에 일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중간착취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절대적으로 많고, 그만 두고 나간다고 한들 일할 데가 거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감수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함께 일하자는 지인의 연락으로 2011년 1월 2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민영보험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노동강도가 높은데,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의 경우 처음에 6개월 정도는 급여가 낮지만 1년 정도 지나면 무리하지 않아도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은 가능하다고 했다. 주요 대상이 교사들이라 신중하고 안정적인 면이 있고 근무조건도 아주 악질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다. 대신 처음 몇 달은 자기 고객이 없다보니 계약이 잘 성사되지 않아 수입이 매우 낮고, 초기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콜센터 노동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면이 있기도 했다. 오전에는 교직원공제회에서 나오는 보험상품 설명서와 선물 등을 포장해 보내는 업무를 주로 하고 오후에 전화로 영업을 했다. 설명서와 선물을 보내고 연락을 하면 이후에 계약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고, 고객 응대 스트레스는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파견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을 관리하다보니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속했던 (주)한국고용정보의 경우, 관리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판단에 따라 부당해고가 자행됐다. 물론 당시는 직접고용이기도 했지만 대한생명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상담원이 그만 둘 때 고위관리자가 면담을 했다. 상급 관리자에게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절차였다. 그런데 위탁업체 관리자들의 경우에는 아무런 기준이 없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면서도 콜센터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보려 한다는 점이다. 교직원공제회를 비롯한 공제회들, 우체국과 신협 등은 독자적인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보험사들처럼 금융감독원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유효한 보험설계사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고,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보험 판매 상담원들을 보험설계사로 보아,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하려고 한다. 무수한 콜센터 상담원들, 특히 보험콜센터가 무척 많은데 단지 코드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를 하는 건 열악한 노동조건을 외면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부당해고와 투쟁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어느 정도 적응하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실장이 부임하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파견업체의 공모가 아닌 본사에서 보낸 실장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뭔가 문제 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사무실에는 파견업체 사장의 친인척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제멋대로 했다. 사장의 친인척과 새로 부임한 실장, 그리고 오랫동안 일하며 어느 정도 권력을 갖게 된 총무가 결탁해서 부당한 업무 배정을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던 중에 적응 과정인 신입들에게 실장이 무리한 업무지시를 해서 한 명은 그만 두고, 남은 한 명에게는 과도하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윗선까지 보고될 정도의 고객과의 마찰이나 사고가 아니면 콜센터에서 경위서를 쓰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경위서 요구는 징계나 마찬가지다. 기존 상담원들이 중재하려고 했으나 실장은 “단체행동하려고? 해라~ 다 잘라버린다!”며 오히려 상담원들을 도발했다. 본사 관리자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일주일 쯤 뒤에 실장이 제멋대로 신입 상담원의 컴퓨터 본체를 치워버리고 신입은 울고... 그걸 보고 뚜껑이 열려서 실장에게 따졌다.

이후 실장이 사소한 실수라도 트집을 잡기 위해 내가 일하는 콜을 다 들으며 개인적인 콜을 한다는 등의 딴지를 걸고 사전에 고지한 출장을 근무지 무단이탈로 처리하는 등 작정하고 시비를 걸더니 경위서를 요구했다. 사실 콜센터에는 노동자들이 매우 개인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에 별로 관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의 일터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부당함과 불편함까지 감수하면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요구하는 대로 경위서를 썼지만 2012년 8월 말일자로 해고됐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10월에 복직했다가 연말에 계약 만료를 이유로 또다시 해고됐다.

처음 해고와 복직 사이 기간에 (주)한국고용정보에서 상담원들의 수당조정 공문이 내려왔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대다수 상담원들의 실장에 대한 적대감이 대단했는데, 개인적인 감정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원들의 서명을 모아 (주)한국고용정보에 총무 교체를 요구하고 전 상담원이 하루 일을 안 했는데, 실질적으로 타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노동조합 결성 제안에 상담원들의 의견이 갈렸고, 일단 보류하고 있는 사이에 나를 포함한 세 사람에게 영업정지를 내렸다. 징계라기보다 해고의 수순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후 회사에서는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법 위반 등으로 소송을 했지만 판결은 혐의없음으로 나왔다.

나는 내가 선택을 했지만 네 명의 동료들은 나를 보고 조합원이 된 것이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중노위에서 패소하고 근로자지위확인과 불법파견에 대한 민사소송에 들어갔는데, 내가 질 경우에는 안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까지 해고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있다. 또 재판비용도 많은 동지들이 구입해 준 채권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운 측면이 있다.


복직투쟁을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다 되어가고, 소위 정년도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계속 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고 싶다. 힘에 밀려 부당함을 인정하고 물러서고 싶지 않다. 위탁업체에서 파리 목숨처럼 잘리는 상담원들을 많이 봤다. 솔직히 그때는 내 일이 아니라서 가만히 있었다. 이제까지 일하면서는 실장들과 친했다.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성격이 아님에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원만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해고 싸움을 마음먹게 된 이유 중에는 이상한 사람이라서 해고된 게 아니냐는 시선에 대한 자존심 문제도 있었다. 해고될 만하니까 해고된 것이겠거니 하는, 무난하지 않은 사람인가보다 뭐 이런 인식도 있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었고, 어디 가면 느닷없이 초라해지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좋은 조건에서도 일했었고 안 좋은 조건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예전에는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얘기를 하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담원들은 거머리같은 본사와 파견업체에 피를 빨리며 그저 일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것이 부당해고다. 언젠가부터 이런 일이 일상적인 것이 되게 되었는데, 자꾸만 이야기하고 알려내기 전에는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싸워서 풀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에 대한 울분이 있고, 콜센터 상담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누군가는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해고가 철회되고 고용이 보장되고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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