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탄식한 식민지 시인의 마음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끝없이 달리는 아지랑이 같은 혼에 어지러워하며 흥분했고 흙에 안겨 온몸을 적시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의 땅이라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겨 봄 신명조차 빼앗겨 긴 겨울왕국인 자신과 조국을 뼈저리게 맛보아야만 했다. 그로부터 세계사는 우리에게 식민지의 오명을 벗게 해주었고 우리는 우리 땅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역사교육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 꾸며진 거짓말이다. 우리에게는 나리꽃 같은 하늘하늘한 생명들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봄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은 눈과 입과 귀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동물이라면 식물이라면 모두가 골고루 만끽하고 호흡하고 노래해야할 공공재이다. 이러한 자연은,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봄이 모두의 것이 아니고 특별한 그 누구 거란 말인가’ 하고 항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봄은 모두의 봄이 절대 아니다. 식민지시대에 봄은 제국주의 것이었다. 지금은 돈을 소유해 권력까지 차지한 강자의 전유물일 뿐이다.
이 미친 봄을 증거하듯 지난 주와 그 전 주에는 많은 꽃들의 죽음들이 있었다. 아니 꽃이 피기도 전에 봉오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참사가 매일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사회의 총체적 겨울왕국이 빚어낸 비극적인 죽음들이었다. 교사의 체벌이 있은 뒤에 뇌사상태가 되어버린 고등학생 아이가 끝내 죽었고 성실하게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세 모녀가 자살했고 늦자라던 아기를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젊은 엄마, 직업병으로 죽는 노동자, 해고당해 죽는 노동자와 가족, 진보정치에 몸담고 당찬 투사로 살아가던 소수파 비주류 정당의 젊은 부대표가 어이없이 죽음을 택했다. 불난 집에 새 교복을 가지러 갔다가 연기에 질식해 죽은 여고생의 죽음도 있었고 공장에 화재가 나 안타깝게 죽은 이주노동자의 죽음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죽임이 계속되는 지랄 같은 봄, 제발 봄이여! 땅에서 땅으로만 흘러 차라리 인간에게 겨울왕국을 내려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차라리 죽기 싫어 얼어붙고 싶은 저항의 봄이 아니면 모두가 파국으로 내몰리게 말이다.
멀쩡하게 건강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짐승들이, 땅들이, 작은 생명을 연장하지 못하고 죽어가도 언론에서는 생활고와 우울증과 AI전염병이라고만 말한다. 진지한 진단도 정의로운 해결책도 아닌 것들이 난무하는 국가와 정부라는 것이 자연과 사람에게 고귀한 것을 주는 존재인지 뼈저리게 생각하게 한다. 인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인데도 나에게 자애로운 국가가 아닌 것은 내가 언제든 없어져도 좋은 벌거벗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본질이 착취에 기인하고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체제라면 그것은 벌거벗은 생명에게 언제나 제국주의인 것이다. 배제당하는 목숨들은 돈에 이용되다가 언제든지 제거되어도 상관없는 체제의 부속물로, 1% 자본가들은 99% 인류 중에 상당수가 죽어나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살상하고 세계를 전멸시킬 수 있는 전쟁기계를 매일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전쟁기계들은 못된 반항을 하는 세계에 퍼부어진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노동당 부대표의 우울은 상당히 복잡하고 깊었을 것이기에 그의 죽음에 당혹해하면서도 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매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봄은 그렇게 되풀이되겠지만, 봄의 정취 속에 녹아나는 따스함과 새로운 창조의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사막에서 치열한 투쟁이 없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없듯이 수많은 인고로 누적된 흔적들을 치유하고 희망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을 일궈나갈 때, 진정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언 땅을 뒤집고 기지개 켜는 아름답고 말간 새싹을 보아야 하는 이때에 전염병처럼 번져오는 죽음들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산 것과 죽은 것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사는 것이고 죽어간 생명들은 우리 가슴에 봄처럼 오고야 마는 새싹의 다짐들을 심어 놓는 것이다. 체제의 우울증이 깊어가는 시대인 만큼 서로서로 옆의 지인들이나 가녀린 생명들에게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자. 이런 작은 마음들과 큰 전망들을 동시에 공유하는 따스한 봄을 그래도 기다리는 것은 봄이 주는 지저귐 때문인가 보다.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