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청산과 어용노조에 맞선 투쟁, ‘노동자의 길’을 묻는다

[오늘,우리의투쟁]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 해복투(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고용 책임진다며 헐값에 인수한 공장, 2년 만에 폐업하고 청산 선언한 자본

2013년 1월 7일, 경북 칠곡의 스타케미칼 공장이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2006년 3월부터 만 5년 간 멈춰 섰던 공장을 스타케미칼 자본이 인수해 재가동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공장 인수 이후 사측은 지속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구조조정 등을 언급하며 노조를 압박해온 터였다. 경기 악화에 따른 화섬업계 전반의 물량 감축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에 따른 감산계획 논의가 2012년 임단협에서 마무리되지 못한 채 노사협의회로 넘겨졌다. 그러나 노사협의회 재개를 미루던 사측은 2013년 1월 2일, 돌연 일방적인 폐업 입장을 밝혔다. 고용보장과 회사의 분할·합병·매각·양도·합작, 공장 증설 및 이전·정리해산 등에 대한 단체협약 조항이 엄연히 있었지만 모두 무시됐다.

스타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 업체로, 광고용 플렉스 원단을 생산 판매하는 스타플렉스가 모기업이다. 스타플렉스는 파산 상태에 있던 구 한국합섬 제2공장을 2010년 자회사 SIL을 통해 인수한 뒤 2011년 1월 스타케미칼로 상호를 변경했다. 공장의 인수 금액은 국내 유일의 최신 제조공법을 보유한 설비와 부지의 규모 등으로, 애초 800억에서 1,000억 원 수준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자본은 399억 원이라는 헐값에 공장을 인수했다. 5년간 파산투쟁으로 공장을 지켜온 한국합섬 노동조합원들의 고용을 책임지기로 한 것이 주효했다는 사실이, 당시 주채권자였던 산업은행의 입장을 대리한 변호사를 통해 전해졌다. 입찰을 고려하던 일부 업체들이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존재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 스타플렉스는 1985년 광고 소재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강우상사로 시작해,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렉스 사업에 진출해 성장한 옥외광고용 간판 표면소재 생산 판매 업체다. 충북 음성에 위치한 공장에는 25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조합은 없다. 2010년 국내 최대 규모인 한국합섬 제2공장의 인수자가 스타플렉스로 결정되자, 공장 설비의 운용 능력에 대한 우려와 자산 부풀리기 의혹 등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 인수 이후 설비 보수와 순차적 인력 투입을 통해 2011년 3월 재가동을 시작한 스타케미칼 공장의 가동율은 50%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스타케미칼이 2년 내리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의 영업이익은 특기할 만한 변수가 없었음에도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고,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영업이익도 그만큼 하락했다. 더불어 법인 해산 이후 스타플렉스가 스타케미칼에 투자했다는 944억 원 중 공장 인수자금을 제외한 500억 원 이상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기업구조 개선운동을 벌이는 소액주주 모임 네비스탁의 보고서를 통해 지적되었다. 부당 내부거래와 자회사로의 비자금 유입 의혹,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자본은 청산 선언 이후 336억 원의 사모펀드 투자금 상환 등으로 스타플렉스의 지분율을 90%대로 끌어올리고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스타케미칼의 해산을 결정했다.

[출처: 스타케미칼해복투]

노동자를 갈라친 자본, 노동조합이 앞장선 조합원 고용 청산

2013년 1월 2일, 대표이사 김세권이 일방적인 청산 선언을 한 직후 현장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회사가 어려운데 파업해서 망했다’고 주장하는 유승재·서병욱 조합원이 다음날 새벽부터 폐업의 책임을 노조집행부에게로 돌리며 불신임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장 폐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집행부의 제안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역 상급조직 간부들의 공동집행부 구성 제안도 거부하며 차광호 집행부의 전원 사퇴만을 고집했다. 탄핵안을 발의한 그들의 강경한 입장에 당시 차광호 지회장은 공장을 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조건 없는 사퇴를 결정한다. 한국합섬 5년 투쟁의 고통이 조합원들에게 여전히 각인되어 있었고, 15년 이상 함께해왔던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도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조집행부를 사퇴한 직후부터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정황들이 포착되었고 인준안이 통과된 1월 4일, 유승재 비대위는 교섭과 체결의 권한이 없음에도 금속노조 구미지부와 함께 사측과의 보충교섭을 진행하고 무쟁의를 약속했다.

사퇴에 반대했던 조합원들과 전임 집행부는 ‘고용안정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스타케미칼지회 조합원모임’을 꾸려 일방적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한 현장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비대위는 조합원 총회를 열어 자본의 폐업 입장을 수용하고 공식화한다. 총회에는 스타케미칼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온 강민표 상무가 참석해 조합원들에게 일괄 권고사직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비대위는 나아가 지도부 선출과 전 집행부 핵심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제명 처리를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비대위는 폐업을 앞두고도 몇 달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사측을 착한 자본이라 칭하며 조합원들의 자발적 퇴직 종용에 열을 올렸다. ‘고용안정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스타케미칼지회 조합원모임’이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공동대응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1월 29일에 치러진 지회 선거에서 유승재 후보 측은 ‘청산에서는 실리’라는 주장과 함께, 권고사직서를 제출해도 조합원 자격이 유지된다고 호도하며 당선되었다. 조합원 168명 중 139명이 권고사직서를 썼고, 나머지 29명은 해고를 당했다. 그 중 유승재 지회장을 제외한 28명이 ‘금속노조 구미지부 스타케미칼지회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합섬 5년 투쟁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노동자들이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요구하며 다시 투쟁에 나섰다.

파산에서 복직으로, ‘3승계’를 쟁취한 한국합섬 5년 투쟁

스타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생산하는 구 한국합섬의 제2공장이었다. 대여섯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섬유업계의 중견기업이었던 한국합섬은 2005년 말부터 경영난을 이유로 350명에 대한 정리해고 의도를 드러냈다. 2006년 2월 사측은 단체협약 상의 합의를 파기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리고 3월 11일 300명의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구사대를 동원해 노동자들이 지키던 공장을 폭력적으로 침탈했다. 지난했던 한국합섬 5년 투쟁의 시작이었다. 2006년 9월 사측은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공장 가동을 위한 합의를 했지만, 이후 원료대금과 경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2007년 5월 법정 파산되고 만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파산을 선언한 자본이 내팽개쳐버린 공장을 지키며 끈질기게 투쟁했다. 주채권자인 산업은행과 삼성 등을 상대로 수도 없이 상경투쟁을 하고 정부를 향해 고용을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사업장을 넘어 연대하며 싸웠다. 결국 한국합섬 노동조합은 2010년 공장 인수를 결정한 스타플렉스 자본으로부터 애초의 계획이었던 자산 인수만이 아니라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까지 쟁취해냈다. 그 결과 공중 분해될 수도 있었던 일터를 오롯이 되찾았고 100명의 조합원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텅 빈 공장을 지키며 5년이나 투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난 시기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세우고 지켜온 노동자들의 의지였다. 한국합섬은 창립 초기에 사측이 유령노조를 설립하고 회장 조카를 노조위원장으로 앉혀 현장을 통제하던 사업장이었다. 1994년 노동자들이 현장 투쟁을 통해 유령노조를 분쇄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했고, 1995년 12월 두 노동자가 질소질식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1996년 봄 대대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산재사망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에 약속을 파기하고 노조 탄압에 열을 올리는 자본의 손배 청구와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전투를 방불케 하는 투쟁 과정에서 두 사람이 분신으로 내몰렸고, 분노가 일깨운 치열한 싸움을 통해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싸우며 민주노조에 청춘을 바친 노동자들이 투쟁의 전통을 일구고 지키며 지역의 노동운동을 지탱해왔고. 뼈아픈 파산투쟁을 마침내 승리로 이끌었다. 민주노조를 통해 세상을 바로 보고 투쟁을 통해 노동해방을 꿈꾸던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탐욕의 자본은 십 수 년을 함께하며 어렵사리 현장을 되찾은 노동자들을 어용노조와 해복투로 갈라놓았다. 더 많은 노동자들은 5년 투쟁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고 다시 불안한 생계로 떠밀려나갔다.

[출처: 스타케미칼해복투]

자본을 대리한 자들의 피난처가 된 노동조합과 상급조직의 방임

조합원들의 고용 청산에 앞장선 스타케미칼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소속이다. 2013년 1월 이후 다시 시작된 투쟁, 스타케미칼 해복투 노동자들은 자본만이 아니라 지난 시절의 동지였던 어용노조와도 싸우고 있다. 하나씩 내어주고 양보하기 시작하면 기어이 영혼까지 요구하는 자본은 어제의 동지를 적으로 맞서게 만들었다. 5년 투쟁의 피폐함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조합원들은 또다시 시작될지 모를 긴 투쟁에 지레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자본은 그러한 폐업의 공포를 이용해 현장을 분열시켰다.

1월 말 선거에서 당선된 유승재 지회장은 2월 4일 ‘(주)스타케미칼을 재가동을 목적으로 하는 제3자에게 매각할 시 매수자에게 권고사직에 응한 조합원들의 고용을 권유한다’는 내용이 담긴 청산 관련 합의서를 사측과 작성했고, 고용승계 대상 조합원 명단을 비공개로 제출했다. 해고자들이 수차례 명단을 요구했지만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불가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후 해고자들이 낸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과정에서 차광호 전 지회장을 포함한 28명의 조합원에 대해서는 고용승계 요구를 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조합원들의 권고사직이 마무리된 후 사측과 집행부는 청산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임금을 받는다고 합의했다. 기간은 4월에서 9월로 연장되었고 현재까지도 그들은 사측으로부터 매월 160만원씩의 임금을 받고 있다.

사태는 갈수록 노골화됐다. 유승재 집행부는 자본 청산 조짐을 구조조정으로 오판해 조합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파업으로 대응하고, 집행부를 어용으로 몰아세웠다는 등의 이유로 차광호 전 지회장 등 스타케미칼 해복투 6명에 대한 징계 제명을 결의해 금속노조 구미지부에 제출했다. 이에 지부는 3월 4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반조직적 행위 등을 이유로 6명 전원을 제명했다. 스타케미칼 해복투는 3월 13일 금속노조에 재심청구 및 징계무효의견서를 제출했다.

재심을 담당한 금속노조는 6월 19일, 6명의 조합원들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결정과 함께 해복투의 해고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 지지할 것을 권유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속노조의 징계의결서에는 유승재 집행부의 권고사직 합의가 구조조정에 대한 금속노조의 대응지침을 위반했고 투쟁의 전통과 정신을 후퇴시킨 행위이며 위원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징계 재심건 자체가 금속노조의 방침에 어긋난 활동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점 등이 적시되었다.

그러나 그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상급조직의 방임 속에 유승재 집행부는 SNS상에서 자신을 어용이라 비판한 지역의 비정규 조직활동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경찰 조사를 받게 했다. 재심기관이었던 금속노조는 별다른 후속조치 없이 사태를 방관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임원들의 임기는 종료되었다. 새로 선출된 금속노조 8기에서 KEC지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금속노조 구미지부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스타케미칼 문제를 포함해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단결 강화를 첫 번째 목표로 공약하며 출범한 8기 금속노조의 올바른 결정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스타케미칼해복투]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스타케미칼 해복투의 투쟁

스타케미칼 해복투는 2013년 3월 이후 연말까지 모기업 스타플렉스가 입주해있는 서울 목동 CBS빌딩 앞 상경투쟁을 지속해왔다. 해고투쟁 6개월 이후부터 지급되는 금속노조의 장투기금은, 패권을 장악한 지회와 지부의 방해와 외면으로 지금까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없는 주머니를 털어 십시일반 마련한 기금으로 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그 한합’이 어용노조와도 맞서며 다시 투쟁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졌다. 배신의 상처를 딛고 힘겨운 상경투쟁을 진행하는 중에도 스타케미칼 해복투 노동자들은 연대를 생명으로 여기며 투쟁해왔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연행되고 공동투쟁단으로 함께하면서 곳곳의 사업장에 연대하며 함께 싸웠다.

2013년 9월에는 처참하게 무너진 지역운동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 ‘강철도 녹슬면 고철! 구미지부 리모델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금속노조 선거에 출마했다. 부정이 횡행하는 선거를 어렵사리 완주하며, 좁은 구미지역 사업장에서조차 스타케미칼 사태에 대한 왜곡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노동자의 자존심도 민주노조의 원칙도 무너져버린 현실을 통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믿음을 되새겼다.

모든 기득권을 갖고 나날이 진화해 온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칙 아래 단결하고 연대하는 집단의 힘이다. 5년의 파산투쟁, 동지의 배신, 어용노조의 야합, 상급조직의 방임과 직무유기, 지독한 생계의 무게. 이 모든 것을 떠안고 스타케미칼 해복투 노동자들이 다시 싸움에 나선지 벌써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상급조직이 반조직행위자로 몰아세워 징계 제명을 강행하고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파업으로 공장을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 누명을 씌웠지만, 노동운동의 원칙과 노동조합의 자정능력에 호소하며 조직을 바로 세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폐업 선언 이후 1년 가까이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던 공장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분할매각을 둘러싼 움직임이 포착되고 최근에는 구체적인 정황들이 확인되고 있다. 스타케미칼 해복투는 2006년 텅 빈 공장을 지키며 싸울 때와 다름없이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 요구를 걸고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고 있다. 그 시절 함께 싸우던 수많은 동지들이 떠나고 주저앉고 돌아섰다. 결의만으로 넘을 수 없는 물리적인 장벽이 만만치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어리석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어렵다고 피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싸운다. 장렬한 패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 함께 승리하고자 싸운다.

자본은 언제나 최대치의 이윤을 위한 선택에 골몰한다. 그 계산에는 이윤의 원천인 생산이 들어있지 않고,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삶이 고려되지 않는다. 위기를 말하는 자본의 엄살에 양보를 거듭할수록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고 삶의 벼랑으로 내몰려왔다. 노동자를 갈라친 자본은 그 뒤에 숨어 가장 손쉬운 카드를 찾는 비열한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일터를 지키고 노동자의 양심과 자존을 되찾기 위한 싸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싸움을 선택한 스타케미칼 해복투 동지들이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가 가야할 길을 묻는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연대와 투쟁으로 답해야 할 싸움이다.

[출처: 르뽀작가 연정]

* 스타케미칼 해복투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48-126822 고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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