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철회 KEC, 정말 아름다운 일인가?

[기고] 복수노조 1년 “세상은 비겁해. 나쁜건 넌데, 아픈건 나야”

지난해 7월 1일 사업장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드디어 복수노조 시대가 왔다. 노동계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 양대 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부조차 노동자 권리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 달 뒤면 복수노조 시대 만 1년이 됩니다. 그즈음 각계각층에서도 복수노조 시행 1년에 대한 평가를 할 겁니다. 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상급단체 탈퇴 종용...퇴직 종용과 징계

대구의 어느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노동자가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설립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얼마나 당하고 살았기에 이리도 급했던 것인지. 아마도 2011.7.1. 법 시행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노조를 보란 듯이 띄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존 노조가 사장에게 해고를 요구했고, 그 조합원은 즉시 해고되었습니다. 기존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니온숍 규정에 의거해서입니다. 그 조합원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대구에 있는 또 다른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장이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상급단체 탈퇴를 종용합니다. 상급단체를 탈퇴하지 않을 경우 정년연장을 시켜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합니다. 상급단체 탈퇴 안건은 3차례나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결국 통과되었고, 상급단체 탈퇴에 반대했던 조합원은 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그 탈퇴 조합원의 정년이 올 4월입니다. 회사는 기존 노조와 체결된 단체협약에 의거해 기존 노조와 협의하여 정년연장을 결정합니다. 정년대상자 4명중 3명의 정년이 연장되고, 그 탈퇴 조합원만 정년연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탈퇴 조합원은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기 이전까지 회사로부터 두 번이나 표창장을 받았던 모범 사원이었습니다. 그 조합원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영양에 있는 노동자 16명의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6명이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교섭요구사실공고 등 법에서 정한 창구단일화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무응답으로 일관합니다. 그러다가 5일만에 뜬금없이 10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가 설립되더니 이때부터 창구단일화 절차를 개시했고, 뒤늦게 생긴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었습니다. 그 노조에는 사장의 처도 조합원이고 사장의 동서도 조합원입니다. 그 노조가 회사와의 단체교섭에서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은 정년단축에 대한 것이었고, 3일만에 정년단축 단체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최초의 노동자는 6명으로 노조를 설립했던 그 노조 위원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설립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징계가 내리 5번이나 이어집니다. 조합원 6명 중 위원장은 단축된 정년에 의해 당연퇴직, 3명은 징계해고, 1명은 정직 3개월, 1명은 출근정지 처분이 떨어집니다. 노동위원회 심판장에서 회사측 참고인 자격으로 뒤늦게 설립된 그 노조 위원장이 앉아 있습니다. 조합원 6명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정리해고 철회한 모범 사업장? 알려져 있지 않은 진실

구미에 위치한 개별반도체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반도체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타임오프 시행이후 전국 최초 파업 사업장으로도 알려져 있고, 복수노조 전국 최초 사업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노조가 파업종료를 선언했음에도 직장폐쇄를 풀지 않고 업무복귀를 거부한 사업장으로, 혹은 파업을 이유로 노조 간부 전원을 해고하고 조합원 120여명을 대량 징계한 사업장으로, 혹은 파업을 이유로 조합원들을 상대로 3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업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 누구에게는 새벽에 용역경비들이 여성기숙사에 난입하여 자고 있던 여성조합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짓을 저질러 여성조합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치를 떨게 했던 사업장으로, 혹은 파업 복귀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색깔이 다른 옷을 입혀놓고 하루 왼 종일 정면 벽면에 붙어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구 하나만을 바라보게 하면서 눈을 감아서도 안 되고 몸을 비틀어서도 안 되는 고문과도 같은 묵언수행을 시키고, 심지어 여성조합원들이 화장실을 갈 때에도 줄을 지어 가게 하는, 볼 일을 볼 때도 용역경비들을 배치시켜 몇 시 몇 분에 화장실을 가서, 몇 시 몇 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지를 체크하게 만드는 반인권적 조치가 문제가 되어 인권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국정감사에서조차 문제가 되었던 사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사업장은 긴박한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75명을 정리해고 했다가 며칠 전 정리해고를 철회한 모범적인 사업장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장은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이라는 회사측 문건을 통해 파업기간 중에 이미 경영상 어려움과는 무관하게 파업참가자 240여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관리자 처우개선안’이라는 회사측 문건을 통해 정리해고 직전에 연 100억원의 관리자 연봉 인상 계획을 세워놓고 그 재원을 파업복귀자 198명을 전원 퇴사처리시켜 마련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또, 해고회피방안이라며 노조에게 최후 통첩했던 ‘3년간’ 연 100억원의 인건비 삭감안이 사실은 ‘3년간’ 관리자 연봉 인상에 필요한 재원 마련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 사업장이 정리해고의 근거로 내세웠던 회사측 경영컨설팅 보고서 내용이 전체 직원 800여명 중 674명을 정리해고 해야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보고서였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보고서가 그리 전망한 근거 역시 2012년도부터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치 때문이었는데 정작 그 첫해인 2012년 1/4분기 이 사업장 영업실적은 오히려 26억원 흑자가 나고 있는 황당한 근거였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회사가 어렵다며 부분휴업을 실시하면서도 휴업기간 중 어느 부서는 잔업을 하고 또 어느 부서는 휴일 특근을 해야 할 만큼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사업장은 정리해고를 통보하던 그 시점에도 4차례나 조직 확대개편을 하고, 130여명을 승진승급하고, 관리자 1인당 평균 900만원의 연봉인상이 진행된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고, 경쟁업체 생산기지가 홍수 피해로 침수되어 인터넷 여기저기서 연일 주문 폭주 뉴스가 올라오고, 회사 관계자가 연일 생산물량 증가에 기뻐하며 인터뷰하는 기사가 나온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출구전략 로드맵’이라는 회사측 문건을 통해 기존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신설 노조를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관련자에게 7억 원의 노조설립 활동비를 지급한 정황이 노동부 검찰 합동 압수수색을 통해 밝혀진 사업장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종 정리해고된 75명 전원이 기존 노조 조합원이고, 이들은 최근 1년 반 동안의 인사고과가 모두 D였다는 사실과 이렇게 평가된 인사고과에 따라 기존 노조 조합원 75명이 정리해고 1순위자로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회사가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근거로 제시한 이들 75명의 인사고과 자료는 해당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직전에 미리 전산 출력해 두었던 인사고과 자료와는 전혀 상반된 것으로 회사에 의해 조작된 자료라는 사실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철회한 시점은 지난 달 31일 노동위원회 심문회의가 있던 바로 하루 전날입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정리해고만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기존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며, 7억원의 노조설립 활동비가 지급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제2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강제로 적용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정리해고 철회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회사의 정리해고 철회 통보는 이들 75명의 정리해고자들에게 실체도 없이 주장하던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노동위원회를 통해 확인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시키는 통보였습니다. 기존 노조 조합원 180여명에게 관리자 연봉 인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본인 동의는 물론 노조 동의도 없이, 오히려 본인이 거부하고 소속 노조가 거부해도 연 100억원의 인건비를 강제로 삭감시키겠다는 통보이고, 단체협약에 의해 유지되어 오던 3조 3교대를 강제로 2조 2교대로 근무하게 만들겠다는 통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뒤늦게 설립된 제2노조와 체결된 단체협약에 의해서입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인건비 24억원을 절감하기 위해 75명의 조합원을 정리해고 해야만 했다던 이 사업장이 현재 심혈을 기울려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생산활동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구미국가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의 조성목적과도 전혀 맞지 않는, 10만평의 공장부지 절반을 현물출자하여 대형백화점, 호텔, 전통먹거리타운을 설립하는 일명 “G-Well-드림파크 계획”이라는 3천억원대의 산업구조고도화 사업이며, 당장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안은 오는 8일로 예정된 산업구조고도화 사업 공청회의 성공적인 개최입니다.

이런 판국에 나름 진보적이라 여겨왔던 신문에서조차 회사의 정리해고 철회를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는 사설을 버젓이 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면의 모든 것들을 직접 보고 겪어 왔던 75명의 정리해고 조합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기뻐했을 이들 모든 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일까요. 구미 반도체 사업장의 조합원이 트위터에 올렸던 글이 기억납니다. “세상은 비겁해. 나쁜건 넌데, 아픈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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