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노동자, 사업장을 넘어 지역조직화로

[정치대회](2)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의 의미와 과제

왜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인가

200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가 줄어들고,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생활 및 노동의 불안정성, 낮은 조직율과 노동권 박탈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의 다수로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어선지 오래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직접고용보다는 간접고용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대기업 노동자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으로 상징되는 대기업으로부터 상대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상징되는 중소영세기업으로 고용의 하향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30인 미만 영세사업장 종사자가 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현황>).

불안정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의 다수로 등장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조직화가 노동운동 활성화의 중요 사안으로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획득을 위한 무수한 투쟁과 조직화 시도가 있었고, 불안정노동자 문제를 자기과제로 하기 위한 기존 조직노동의 노력이 있었으며,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이 확대되었다.

그런데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시도들 중에서 많은 경우는 불안정 노동자들을 투쟁과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이들을 사회의 약자로서 배려와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한 가운데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 조직률 향상을 위한 필요, 혹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소위 ‘시혜적 실천’의 당위로 그 의미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주체화하는 것의 의의는 가장 열악한 집단에 대한 조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는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일방적 공격을 무력화하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자 주체화는 계급투쟁 전선 복원을 위한 핵심 지점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하는 것은 오늘날 노동현장의 모순이 자본간 모순(대자본-중소자본), 노동간 모순(대기업 노동자-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현실에 대해 그것의 기저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노자관계의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투쟁의 전선을 복원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다.

오늘날 대자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형성하고 불안정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그에 따른 노동자 분할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대자본은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부의 노자간 모순을 하위자본과 불안정 노동자에게로 전가하고, 이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획득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 성과가 노동자 계급 전반의 성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 투쟁이 하위자본과 불안정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하위자본, 불안정 노동자의 영역이 대자본과 조직된 노동의 영역을 대체해나가면서, 이제 조직된 노동의 존재조건도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이 열악해지는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투쟁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모순의 집약 지점인 중소영세사업장과 불안정노동자가 직접 정치의 주체로, 투쟁의 주체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 조직화는 대자본의 비용과 위험의 전가, 노동자 분할 전략을 무력화하고 자본주의 노자관계의 모순을 드러내는 핵심 지점인 것이다.

노동자 계급 연대를 위해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 필요

한편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하는 것은 다양하게 분할되어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를 복원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일방적으로 모순을 전가하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와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들은 노동자 계급 구성원들간 연대의 확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조건이 양호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건이 열악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일종의 시혜적 실천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투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장기화될 경우 시혜적 실천은 당사자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유발하면서 지속되지 못하고 한시적인 것으로 끝나곤 했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기대하고 의존하는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기대와 의존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는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의존하려고만 한다는 불만을 갖는 결과를 가져왔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공동투쟁은 상호 신뢰보다는 실망과 불신을 쌓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공동투쟁의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의 주체, 정치의 주체로 서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는 일방의 시혜적 실천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계급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필요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일정하게 ‘시민권’을 인정받아왔다. 여전히 반노조적인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노동권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은 기업단위의 협상을 통해서 권리를 확장해왔다. 그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노동권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기업단위의 노동조합 활동 구조에서 노동권이 배제된 상태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서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정한 규모가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기업단위의 노사관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일부 실현해왔던 노동조합 운동의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단,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 사업장 단위 조직화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자 집단이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사업장 단위로 조직화가 이뤄지고 그 성과들을 지속적으로 외부로 확대해나가는 것은 유의미한 조직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상당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먼저,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담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오늘날 대자본은 다단계의 하도급 위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층을 확대하여 노동자들 간 위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위험과 비용이 연쇄적으로 생산위계의 하위로 전가되는 구조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는 자본간 권력격차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다시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어느 기업 소속이냐에 따른 노동자 집단 간 권력격차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외부로의 모순 전가를 담보로 한 노사간 담합 가능성을 높인다. 그에 따라 사업장 단위에서의 내적 연대와 단결은 사업장 외부의 계급적 단결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자본의 분할전략에 활용되기 쉬운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불안정 노동자들의 다수는 영세사업장에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또한 불안정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실직과 이직, 새로운 사업장으로의 입직을 반복하면서 빈번히 사업장을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하나의 사업장에 집착하지 않는 조건에서 개별 사업장에 국한된 운동, 작업장의 노동조건에 국한되고 있는 현재의 운동으로는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의 성과를 내기 힘든 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개별 사업장을 넘어서는 포괄적 조직화 전략이 요구된다. 개별 사업장이라는 기존을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제 설정과 조직화, 주체화 전략의 시도가 요구된다. 개별 사업장 조직화와 투쟁 성과를 외부로 확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은 사안으로부터 사업장을 넘어서는 의제와 조직화 전략을 설정하고 이를 보다 큰 범위와 사안으로 확대해나가는 시도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는 유력한 시도였던 그간의 산별 조직화 경험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요청된다. 더불어 화물연대, 학교 비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 등 직종별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 시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정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오늘날 다단계 하청연계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청연관을 따른 조직화, 중소영세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공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단위 조직화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말

* 김철식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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