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불법파견 철폐,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정몽구 구속’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쪽문 주차장 송전탑에 올라 농성에 들어간 천의봉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철탑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천의봉 사무국장은 매주 2차례 정도 일기를 보내줄 예정이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울산공장 포위의 날, 우리 해고자 동지들이 전국에서 몰려오는 손님 맞을 준비로 어느 하루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바쁜 일손을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현대자동차 2공장 라인순회를 하러 갔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오늘은 울산, 아산,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하루 파업을 하고 철탑으로 모이는 날인데, 내가 일하던 2공장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가장 조합원이 많았던 2공장이다. 예전에는 자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눈치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 한편으로 보면 이런 조합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울산공장 포위의 날 풍경
‘힘내라 비정규직’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허전했던 주차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정문에서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오색만장을 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모일까 걱정이었는데 행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집회 시작과 동시에 철탑 위에서 집짓기 공사가 시작됐다. 흔들리는 철탑에 휘청거리는 몸을 밧줄을 동여매고, 좁다란 판자에 앉아 매미처럼 매달려있는 우리들이 안타까웠는지 플랜트노조 선배들이 철탑위로 올라왔다.
뚝딱뚝딱... 금속노조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하늘을 쳐다보던 나는 ‘우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두 다리를 뻗을 수조차 좁다란 합판 위에서 열흘을 보냈더니, 온 몸이 쑤시고 저려왔는데, 순식간에 머리 위에 축구장만한 집이 지어진 것이었다.
들뜬 마음에 밑에 있던 짐을 하나하나 위로 올려 보낸다. 빨리 이 불안한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내 아래에 있는 병승이형한테 짐 싸서 빨리 올라오라고 얘기하고 내가 먼저 새 둥지로 이사를 왔다.
새 집으로 이사 오던 날
한편으로는 진짜 고마웠는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니 얼마나 오래 있으려고 이렇게까지 집을 지어주는 것일까, 이러다 이 겨울을 철탑위에서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잠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해 다리에 계속 쥐가 났던 시간을 생각하니 신이 났다.
새 집으로 올라오자마자 한발로 굴러본다. 음~ 역시 튼튼하구나. 드디어 하루하루 불안에 시달려야했던 나는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몇 분 뒤 병승이형도 올라오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10월 17일 밤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올라왔지만 공간 때문에 아래층과 윗층으로, 이산가족으로 지냈어야 했다. 이제 같이 살 수 있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쪽방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기분이랄까?
쪽방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한 기분
짐을 풀고 문화제를 즐기려는 순간 카톡에 ‘박현제 지회장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소식이 뜬다. 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주기 시작한 거다. 앞으로 우리 싸움이 탄탄대로구나 하는 생각과 철탑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덩실거리고 있었다.
배고픔도 잠시, 새로 이사한 집과 지회장 석방 소식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린다고 내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철탑 아래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우리 집들이에 초대한다고 장난도 해본다.
새 집으로 이사도 했겠다, 오늘 밤은 무조건 재밌게 노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맞서 싸워왔던 지난 10년의 시간과 우리 조합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어른거렸다. 여기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가 승리했을 때 승리의 눈물을 흘리겠다며 눈물을 삼킨다.
갑자기 소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철탑 밑에서는 박현제 지회장 석방 소식에, 전국에서 ‘비정규직 힘내라’며 달려온 동지들의 연대에 행복한 술잔이 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철탑 밑으로 내려가 동지들을 부둥켜안고 술잔을 들이키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침낭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의 별은 맑기만 하다. 철탑 아래의 노랫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며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자리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다. 열흘 만에 첫 숙면이었다.
열흘 만의 첫 숙면
밤새 철탑을 지키던 조합원들이 이제 막 새우잠을 든 것 같은데 빗발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른 우비를 꺼냈다. 일인용 비닐천막도 친다. 철탑 밑에서는 출근선전전이 끝나고 아침식사를 마친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순간 머리 속에는 이 많은 동지들이 가고 나면 이 허전함을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다. 서울에서 열리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촛불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동지들이 손을 흔든다. 아쉽고 허전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몸이 으스스 떨려와 라면 국물 생각이 났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라면을 끓였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먹던 라면 맛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철탑에서 먹는 라면 맛은 그것을 능가했다.
열흘 동안 이산가족이었던 병승이형과 오붓하게 비닐천막에 누워 그 동안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비닐 천막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으...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