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장애인 남매 비극, 그래도 일자리가 복지인가?

[기고] 장애인 연이은 죽음, 모든 노동자의 문제

거짓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일자리가 복지라고?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 증거들이 장애인과 그 가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드러나고 있다. 새천년을 외치던 그때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복지정책의 근간으로 삼은 이후 십여 년간 이어져 온 장애인 또는 그 가족의 죽음은 생산적 복지, ‘일자리=복지’라는 등식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아주 엄혹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출처: KBS뉴스 보도영상 캡처]

사실은 정반대다. 이번 장애인 남매의 죽음은 부모가 일하지 않아서 생긴 사건이 아니라, 부모가 장애가 있는 자녀를 안전하게 보살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해야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일자리=복지’가 아니라 ‘일자리=죽음’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너무나 비극적인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수많은 장애인 단체가 성명서를 내고 장애인 복지정책의 부실함을 추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 복지에 관한 문제제기조차 지엽적이고, 사건의 진실이 축소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수많은 비장애인 노동자 대중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문제가 장애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문제는 장애인 문제가 아니다. 단지 한국 사회 모든 노동자 대중 가운데 장애인이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기에 그 지점에서 문제가 터진 것에 불과하다. 오늘도 수많은 정치인이 ‘일자리는 복지’라며 표를 달라고 외치고 있고, 자본은 더 많은 고용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자신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죽는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창출된 일자리는 아빠와 엄마 모두를 비정규직,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아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예속을 더욱 강화시키고, 심지어 사회에 산재한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녀를 지킬 여력마저 강탈해가는 결과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의 문제다. 만약 부양해야 할 부모가 치매나 중증이 있다면, 돌보고 양육해야 할 자녀에게 작은 장애라도 있다면 그 위험이 더욱 가중되는, 그런 노동자 모두의 공통된 문제다.

따라서 이 사건 역시 그저 지자체의 장애인 복지 예산을 증액하는 것, 그래서 몇몇 장애인 관련 단체나 복지시설이 예산을 더 타내는 것, 무능한 공무원들의 안일함을 비판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 스스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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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 장애인 , 복지 ,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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