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연금민영화의 교훈

[기획연재](4) 국민연금 탈퇴 주장에 가려진 진실

[편집자주] 19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현재까지 기초연금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또한 공약 후퇴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행복연금 방안 역시 국민연금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민간연금 강화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참세상>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연금 방안과 한국의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적 조명, 신자유주의 연금개혁 논리에 대한 비판과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본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흔들 때마다, 등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이미 9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폐지서명에 참여했고, 지난 주말에는 오프라인 집회까지 열렸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과 불신의 이유는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는 편이지만, 일단 형성된 감정적인 불만들은 이유야 어쨌든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모아졌다. 공적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구호는 곧 연금을 민영화하자는 ‘정치적’ 주장이기도 하다.

이들의 요구처럼 국민연금을 민영화하면 어떻게 될까. 민영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정말 개인의 선택권이 보장되고, 더 효율적일 뿐 아니라 투자수익으로 적절한 급여가 보장되며, 가입동기를 자극해 기여회피를 감소시킬까.

라틴아메리카의 연금민영화

이러한 연금민영화 주장이 현실에서 구현된 곳이 라틴아메리카이다. 지금의 ‘좌파블록’과는 달리, 80~9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제금융기관의 지도아래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구조조정의 중요한 축으로 연금개혁이 이뤄졌다. 1981년 칠레를 시작으로, 2000년 말까지 라틴아메리카의 10개국이 기존의 공적연금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민영화하는 연금구조개혁을 단행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연금개혁이 일정했던 것은 아니다. 국내의 제도적 요인에 의해 조정되었으며 상이한 속도, 범위를 보이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제도적 형태의 민영화가 진행됐는데, 크게 대체형, 선택형, 혼합형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Mesa-Lago 1996; Barientos 1997; Kritzer 2000).

칠레(1981)를 비롯해 볼리비아(1997), 멕시코(1997)는 기존 부과방식의 확정급여로 이뤄지던 공적연금을 민간에서 운영하는 완전적립방식의 확정기여로 완전히 바꿨다(대체형). 선택형은(또는 병렬형) 공적연금은 없어지지 않고 부분적으로(페루 1993) 혹은 전체적으로(콜롬비아 1994) 개혁됐는데, 사적연금이 도입돼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혼합형은 아르헨티나(1994), 우루과이(1996)의 형태인데, 국가가 기초연금을 제공하고 2층에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이 혼합된 보충연금 형태를 지니는데, 가입자들은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에 모두 가입할 수 있다.

개인의 선택권을 증진시킨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과 불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이 ‘왜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가입하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연금을 민영화한 국가들조차 ‘강제성’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볼리비아, 멕시코에서는 신규 및 기존가입자 모두 의무적으로 사적연금에 가입해야한다. 칠레는 초기에 공적체계에 머물거나 사적체계로 이전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했으나, 이후 신규가입자를 포함해 모두가 사적연금에 가입해야한다. 페루의 경우, 기존 가입자들은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선택할 수 있으나 한번 사적연금으로 이동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는 기존가입자와 신규가입자 모두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선택이 가능하나, 이들 역시 한번 이동한 사람은 다시 공적연금으로 돌아올 수 없다. 즉, 연금체계에서의 선택권이 지니는 의미는 단지 사적체계로의 이전과 강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관리기관의 선택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주지 이전을 조건으로 하거나(볼리비아), 변경횟수를 제한하는 등(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우루과이 등) 선택의 자유를 전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다. 또한 포트폴리오나 투자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주로 관리기관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아예 이러한 ‘의무가입(강제성)’ 자체를 없애면 어떨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제외하면 다른 국가들 대부분은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임의가입으로 규정했는데,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노후 빈곤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특히 칠레는 이런 문제 때문에 2008년 개혁을 통해 자영자 강제가입 범위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적연금체계가 더 효율적이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근거는 ‘경쟁’이다. 국가독점으로 이뤄지는 공적연금과는 달리, 사적연금은 경쟁적으로 금융기법을 개발하고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유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경쟁의 실체를 살펴보자. 눈길을 끄는 것은 폐업, 인수·합병 등으로 민간관리회사의 수가 초기에 비해 상당히 감소하였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는 초기 26개에서 13개로, 콜롬비아와 멕시코는 17개에서 각각 7개, 13개로 줄어들었다. 칠레도 12개에서 8개로 줄어들었다.

리회사가 많은 국가라도 소수 관리회사에 집중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의 가장 큰 민간관리회사는 전체 자산의 20~25%를 차지하고 있고, 콜롬비아, 페루, 우루과이에서도 상위 3개의 민간회사가 전체 자산의 60~75%를 차지했다. 이런 연기금 자본의 집중화는 경쟁을 감소시키고 독점시장을 형성한다. 효율성을 증진시킨다는 긍정적 경쟁은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약하다.

관리운영비가 낮다?

오히려 경쟁은 관리운영비를 높일 뿐이다. 너무 심한 나머지, 민영화론자들 역시 ‘경쟁자체가 낮은 관리운영비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초기 주장을 수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개혁이전(1990) 6.3%에서 개혁이후(1999) 23%로 3.5배 증가했고, 콜롬비아는 7.81%(1996)에서 17.6%(1999)로 증가했다. 관리회사가 2개뿐인 볼리비아만 다소 감소했다.

그럼 집중화 현상으로 관리회사가 줄어들면 관리비도 감소할까.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칠레의 경우, 관리회사가 21개로 최대였던 1994년 마케팅비는 전체관리비의 38%였으나 2000년 8개로 줄어들었을 때 오히려 52%까지 꾸준히 상승했다(현재 5개로 감소). 경쟁사가 줄어들어도 미 가입 비중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보험가입자의 관리운영비에 대한 부담은 늘었는데, 임금에서 총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2.5%~4.6% 수준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높은 공적연금 관리비를 지출해 왔던 국가 중 하나였던 엘살바도르가 개혁이전(1996년) 불과 0.47%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또한 보험가입자는 수수료를 부담하게 되는데, 이는 기여에서 부과된다. 즉 보험가입자가 기여를 하지 않으면 수수료도 내지 않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가입해놓고 납부하지 않는 기여회피가 높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여자는 기여회피중인 비활동 계정의 수수료 부담까지 담보하게 된다. 자연스레 가입자 1인당 연평균 관리비와 기여자 1인당 연평균 관리비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특히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본래 부담액보다 2배 이상의 관리비를 부담하고 있다. 또한 정액으로 들어가는 고정수수료가 있어 저소득자의 부담을 증가시켰다(칠레는 2008년 연금개혁을 통해 폐지함).

강한 인센티브를 갖고 있어 적용범위가 넓다?

연금개혁 이전 라틴아메리카의 연금적용범위는 연금발달수준이나 정규부문의 노동시장 규모 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는 7~80%의 높은 적용범위를 보인 반면,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는 32~44%, 그리고 볼리비아, 엘살바도르는 각각 12%, 23%로 매우 낮았다. 연금개혁이후 연금적용범위는 칠레가 109%, 우루과이(72%)와 아르헨티나(66%), 콜롬비아(56%) 수준이고 다른 국가들은 40% 미만이다. 명목적으로 약간 상승했지만, 칠레의 109%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관리회사가 중복 계산되어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가입이 아닌 실제 기여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가입자 중 기여자의 비율은 거의 절반 혹은 그 이하수준(9%~60%)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여회피는 악화되고 있다. 실업률도 높고, 비공식부문의 노동비중도 높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으로 인한 기여회피문제는 ‘연금체계’로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고용주의 기여가 없어져 경제활동인구의 가입의욕과 급여수준만 줄였을 뿐이다.

투자수익금이 높아 소득보장이 적절하다?

민영화론자들이 연금민영화의 성공근거로 자주 언급하는 것이 투자수익금이다. 실제 연금개혁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연평균 실질 총투자수익금을 보면 실제 약 6.7%에서 13%까지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만큼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몇 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앞서 언급한 관리수수료가 수익률에서 빠져있다. 실질 순투자수익금을 보면 2.9%에서 9.75%까지 떨어진다. 특히, 연금의 특성상 단기적 이익보다 중·장기적 추세가 더욱 중요한데, 이 당시 국제시장의 반환율이 매우 높은 시기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90년대와 같은 안정적 평균수익률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고, 이에 대한 손실부담은 전적으로 가입자의 몫이 된다.

최근 몇몇 연구들에서 기존 공적연금의 급여수준(소득대체율)에 비해 더 높거나, 낮다는 상반된 연구들이 발표되기도 하는데, 대부분 기존 공적연금의 급여가 포함되어 연금민영화에 따른 급여변동 효과로 보기 어렵다. 특히 사적연금은 확정기여방식이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소득수준은 없고, 연기금의 운용성과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한 것은 운용성과 말고도 개인의 기여정도(소득)나 기여기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당연히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처한 노동자일수록 소득보장수준이 더 열악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출산 및 육아 또는 남성에 비해 이른 퇴직연령(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엘살바도르)등의 문제로 가입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으며, 기대수명이 높은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물론 이는 공적연금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문제이긴 한데,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경우 소득이 낮을수록 자신이 낸 것보다 더 받는 재분배 기능이 있고, 기대수명에 따라 급여수준이 조정되지는 않으며,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출산 크레딧이 존재한다)

마치며

1981년 노동절(5월 1일)에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의 완전민영화를 선언하며 연금개혁의 모범사례로 칭송받던 칠레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노후 소득불평등(0.474)이라는 성적표를 갖고 지난 2010년 OECD에 가입했다. 그리고 2008년엔 저임금·비정규노동자, 실업자와 자영업자, 여성 등의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수준, 높은 관리운영 수수료 등의 문제로 연금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연금민영화는 노후 문제를 개인이 책임지거나, 사적연금에 의존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노후 빈곤예방이나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의 본래취지와 배치되며, 민영화 자체로 효율성이 담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 공적연금이 지닌 문제가 민영화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떤 연금체계라도 거시 경제적 상황이나 노동시장구조, 또는 인구학적 위험과 같은 불확실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나, 사적연금은 오히려 관리위험, 투자위험, 시장위험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추가로 안고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국민연금 탈퇴하자는 주장’에 빼앗긴 가입자의 진정한 목소리와 주연급 지위를 다시 찾아와야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 연금민영화가 자본시장, 저축, 투자와 경제성장에 이롭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나, 대부분 성취되지 못했거나 연금개혁의 직접적 결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음. 이에 대해서는 Peter R. Orszag & Joseph E. Stigliz(2001), Barr(2001), Beattie and Mcgillivray (1995) 등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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