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산다는 것

[기획연재]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2)

[편집자주] 전체 노동자의 83.7%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노동자 조직률은 1%도 채 안 된다. 대부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임금을 메우고 있다. 혹시라도 잔업이 없어지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니 물량을 따라 이곳저곳 이동한다. 대다수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가 권리를 찾지 못하면 노동자의 미래는 없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즐겁고 권리가 충만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이제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고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글을 싣는다.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란 무엇일까? 임금, 고용형태, 노동시간과 환경, 그리고 복지가 좋은 곳이 좋은 일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단에서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위에 언급한 어떠한 것도 좋은 일자리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수백개의 불법파견 업체가 있는 공단은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그러니 더 나은 시급을 원하기도 힘들다. 일거리가 없으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불법파견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공단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 많은 회사’를 최고로 꼽는다. 최저임금을 받아도 잔업과 특근을 많이 해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덜 깐깐한 팀장이나 반장이 있는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십수만원이 아까워서 4대보험을 떼이지 않는 파견회사를 더 좋은 회사로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좋은 일자리를 가지려는 희망도 갖지 않는다. 그저 잔업과 특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왜 그럴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분노할 비교의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처지가 되고나니, 이것이 문제라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이미 공단의 구인 시장은 파견회사가 장악했다. 정규직 일자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설령 정규직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금도 낮고, 노동환경도 나쁘고, 위험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공단에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은 모두 짜기라도 한 듯이 같은 조건으로 사람을 구하기 때문에 더 나은 조건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잔업 특근 많은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다.

대부분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신이 능력이 없는 탓으로 돌리고 비관하고 체념한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고된 노동 속에 살아간다. ‘옆 공장의 노동자들은 정규직이고 임금은 높고 복지도 좋은데 왜 우리 회사는 이런 조건이 안 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비교도 하고 분노도 하고 희망도 갖는데, 모두가 똑같은 처지이니, 그냥 이 처지에 만족한 채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의 불안정이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큰 고통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가 해고당하면 살기 힘들다는 두려움이 있다. 몇몇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 사례를 제외하면 중소영세사업장의 기업 노조 조직률은 수치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해고되고, 아니면 업체가 통으로 폐업해버리기 때문에 차마 노조를 만들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일하다가 불만이라도 토로하려고 하면 관리자는 바로 해고 위협을 한다. 파견업체 블랙리스트에 등록이 되어버리면 지역 다른 사업장도 취직할 수 없다. 파견업체들은 폐업과 신규 업체 등록을 반복하면서 이름만 바꾸고 영업하지만 그 사이에 노동자들은 고용도 불안정하고 힘들어진다. 언제라도 짤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자기 분노를 표출하고 조직한다는 것은 폐업과 해고의 위협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에 정말로 쉽지 않다. 그래서 다들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뭔가 방법을 찾아보고자 해도 그 고민을 들어줄 공간도 없다. 절망을 넘어서서 분노를 표현하고 싶어도, 해고의 위협이 있더라도 뭔가 해보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평균 근속년수가 1년이나 2년이 안 되는 노동자들이 기업별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고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 상담을 하기도 쉽지 않다. 저임금이 만연하고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벌어지며, 더 많은 잔업과 특근을 따라 이직하는 노동자들은 ‘규모도 있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높일만큼 그럴듯한 회사여야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기까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쉽게 체념한다. 이런 노동자들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모임이나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어렵다.

민주노총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고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했고 이제 그 사업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노동운동의 위기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까지 조직된 노동자들과는 전혀 조건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태를 잘 살펴서 어떻게 분노를 표출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 요구를 모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기업별 조직 방식’이 아니라 ‘지역’으로 조직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연재 순서

1. 중소영세사업장, 불안정노동자에 주목 - 김철식(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산다는 것 - 윤정호(반월시화공단 노동자)
3. 전략조직화 사업을 조직문화 혁신으로 - 오상훈(서울남부전략조직화사업단)
4.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들 - 기획취재
5.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운동 -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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