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 고갈돼도 괜찮아, 사회보험이니까

[기획연재](5) 노동자 서민에게 득이 되는 국민연금

[편집자주] 19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현재까지 기초연금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또한 공약 후퇴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행복연금 방안 역시 국민연금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민간연금 강화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참세상>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연금 방안과 한국의 공적연금에 대한 민중적 조명, 신자유주의 연금개혁 논리에 대한 비판과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본다.


국민연금기금(이하 연기금)이 2044년부터 적자가 발생해서 2060년 고갈된다. 이 정보를 접해온 대다수 사람들은 매달 연금 보험료를 냈는데 정작 자신의 노후에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까봐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국민연금기금 재정추계가 발표될 때마다 어렵게 쌓아온 제도에 대한 대중적 신뢰도는 다시 무너져왔다. 게다가 올해는 인수위로부터 흘러나온 연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설로 인해 시작된 불안감이 3차 재정추계 발표를 앞두고 거대해지면서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시민운동이 다시 한 번 공론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민단체가 민간 보험회사 홍보와 회원정보 거래를 통해 상당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들 운동의 정당성이 훼손되기도 했다. 국민연금 폐지운동은 그 정당성이 훼손되었지만 이들이 적극 활용한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대중의 이러한 태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째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불신하고 있나?

[출처: SBS뉴스 화면 캡처]

왜 사람들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불안해할까?

첫째, 사회보험은 민간보험과 달리 ‘강제성’의 원칙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으로서 18세 이상 60세 미만인 자는 가입대상자로서 강제적용을 받는다. 그러므로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사업장, 지역, 임의가입자로 구분되어 보험료를 반드시 내야한다. 사회보험의 강제성은 고용주와 고소득층의 기여회피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해서 제도 내적인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자영업자, 저소득자, 비정규직 증대 등으로 보험자 혼자 보험료 전액을 부담해야하는 계층이 증가했고, 이에 보험료 기여에 대한 부담이 확대되면서 강제성 원칙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둘째, 장기적인 제도 성격에서 기인된 급여 체감도의 불만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의료서비스를 접근할 경우 해당 급여가 즉각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급여혜택의 일상적인 경험으로 매달 기여하는 보험료에 대한 불만은 심각하지 않다. 반면 국민연금의 경우 노후소득보장이 목적이이기 때문에 10년 이상 40년 동안 매달 기여를 유지한 후 연금수급 연령에 도달해야만 급여가 발생한다. 이에 노령 이전에 급여 혜택 없이 기여만 유지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현재 국민연금의 수급자는 약 27% 수준으로 거대한 사각지대로 인한 간접적인 체감도로 인해 혜택에 대한 불안감이 증가한다.

셋째, 기금고갈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조성과 이를 주도하는 국가의 태도이다. 2003년 이후 국민연금 재정 건전성 평가와 방향 제시를 목적으로 5년에 한 번씩 연기금에 대한 재정계산을 수행해왔다. 재정계산의 결과는 항상 수지적자 및 기금소진 발생 년도에 맞춰졌고, 기금고갈 자체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험하게 한다는 식의 태도를 국가는 보여 왔다. 1차 재정계산 결과로 2007년 급여율은 60->40%로 인하되었다(연금수령연령 상향조정은 1998년 1차 제도개혁의 결과로 올해 2013년부터 매5년마다 1세씩 상향되어 2033년 65세에 도달하도록 했다). 국가는 기금고갈을 내세워 급여율을 삭감했고, 더불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수령연령 또한 더욱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간간히 피력해왔다. 보장성 축소와 보험료 인상을 위한 활용됐던 기금고갈론은 정부를 자승자박의 길로 이끌었다.

25년 된 국민연금제도의 성숙을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기금에 대한 불안론 활용으로 제도의 축소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불신이 심화되면서 제도 이탈에 대한 욕구와 불만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제도개혁에 있어 암초로 존재하고, 이에 3차 재정추계결과에 대한 향후 계획은 소극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금고갈론과 제도의 지속가능성은 국가의 주장대로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출처: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적립식도 부과식도 아닌 국민연금 재정운영의 딜레마

민간보험의 재정운영은 적립식에 따른다. 적립식은 보험자가 갹출한 보험료를 기금으로 형성하고 이를 투자해서 수급시기가 되면 기여한 보험료를 근거로 급여를 제공한다. 이것은 자신이 낸 돈을 나중에 돌려받는 구조로 저축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며 보험자 명의의 꼬리표가 붙은 재정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인구학적 구조 변동에 민감하지 않다. 반면 공적연금의 경우 대부분 부과방식에 따라 운영한다. 부과방식이란 그 해 필요한 급여의 총액을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거대 기금적립이 불필요하고, 사회연대 정신을 실현하고 제고할 수 있다. 건강보험은 부과방식에 따른 재정운용을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부과방식으로 인한 어려움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경우 완전 적립방식도 완전 부과방식도 아닌 수정적립(부분적립)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수정적립방식이란 두 가지 재정운영방식이 혼합된 방식으로 기금고갈은 이와 같은 구조에서 인구학적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국민연금의 경우 보험자가 갹출한 보험료는 모두 모아져서 연기금으로 운용된다는 점에서 적립식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국민연금은 보험자가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도록 설계되어있다는 점에서 부과식이기도 하다. 민간연금의 경우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적게 급여를 받게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경우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이 추가 재정부분에 대한 책임주체가 논란의 쟁점이 된다.

연금에 대한 보수적 운영을 주장하는 부류에서는 수익자 부담원칙, 즉 급여를 받을 미래수급자들이 재정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민간보험 운영의 원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즉 자신의 계정에 각자가 불입한 수준의 총보험료를 근거로 연금을 제공해야한다는 입장이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공적 연금을 운영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우리가 사회보험으로 노령소득을 준비하는 이유는 보험자들의 소득수준과 비례한 수준의 급여와 더불어 적어도 한 사회가 공적으로 준비한 노후소득의 적정성과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공적연금은 세대내, 세대간의 재분배뿐만 아니라 자본의 총이윤을 노동에게 전이하는 효과 역시 있다. 그러나 재정부담의 원칙을 논쟁할 때 주로 세대간 갈등만이 주요한 쟁점이 되어서 후세대 부담의 불공평성만이 부각되어 왔다. 또한 기금고갈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증가될 연금수급자에 대한 급여지출로 발생되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국민연금은 완전적립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기금의 고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국가는 왜 연기금만을 중요시하는가?

한국의 연기금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GDP 대비 적립금 규모가 세계 1위다. 부분적립 방식인 연기금은 20년 이상의 적립금을 쌓아 두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 5년 정도의 기금을 적립하고 있고, 완전부과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10일 미만의 적립금만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적립금의 규모와 연금제도의 운영은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연기금의 중요성에 집착하는 것일까?

2012년 12월 말 연기금은 시가기준으로 약 391조 9,677억 원이며, 이 중 3,994억 원(0.1%)을 제외한 전체기금의 99.9%인 391조 5,683억 원은 금융부문에서 운용되고 있다. 투자부분별로 보면 국내채권 235.8조원(60.2%), 국내주식 73.3조원(18.7%), 해외주식 31.3조원(8%), 해외채권 18.1조원(4.6%), 국내 및 해외대체 32.8조원(8.4%)이다. 2013~2017년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목표수익률인 6.6%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포트폴리오로 주식 30%이상, 채권 60% 미만, 대체투자 10%이상으로 정했다. 노후소득보장을 목적으로 적립한 기금이 현재 국내 금융부분뿐만 아니라 해외 금융부분에 투자되고 있다. 보험자들에게는 수익률 확보를 통한 재정여건 제고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부분에 대한 투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2008년도와 같은 세계금융시장의 위기에 투자된 기금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모든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2008년도 금융위기 당시 국민연금은 –0.2%, 미국의 공무원연금인 Calpers는 –23.1%, 캐나다 공적연금 CPP는 –13.7%, 아일랜드 NPRF는 –29.5%로 모두 수익률이 감소했다. 수익률은 관리운용의 기술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세계금융시장의 여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투자되는 순간부터 위기는 항상 존재한다. 더욱이 향후 주식시장과 대체투자의 비율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기금의 투자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민간시장에서와 같이 그 손실을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그러므로 리스크의 부담은 그대로 가입자에게 돌아온다. 또한 수급자의 급격한 증가 시기 투자된 자산의 현금화가 시장여건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서 투자비용 회수의 문제역시 상당하다.

둘째,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공적인 재원이 사적인 금융시장에서 철저하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운용됨으로써 사회적 가치와 연대의 가치에 위배되는 투자자금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반노동적이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효율화를 달성한 기업에 투자하거나 특정 정권의 이해를 달성하는 비용으로 사용되든가(4대강 채권매입), 투기의 목적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대체투자라든가,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투자된다든가... 기금의 투자 측면에서는 안전성과 수익성이 기준이 될 뿐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없다. 결국 우리의 노후를 위해 모아진 기금으로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거나 누군가에게 해가 될 만한 어떤 것에 투자될 수 있는 자금으로 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투자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거대 기금운용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기금 투자자체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고 정보보호라는 측면에서 가입자의 실질적인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재부와 복지부 그리고 기금운용본부가 계획한 기금운용에 대한 방안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되고 있지만 기금운용위원회는 비상설기구이고 모든 투자부분을 상세하게 검토할만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가입자 대표위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 그 결정이 가입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형식은 민주적이나 실제는 가입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국가는 기금에 대한 특정 이익을 충실히 수행할 뿐만 아니라 연금제도의 보장성보다는 기금을 통한 경제적 정치적 이익 모두를 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해야 하나?

국가는 연기금 고갈론을 내세워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하향시켜왔다. 현재도 보험료율 조정과 연금수령연령 상향을 주요 연금개혁의 항목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못 미더운 국가 덕분에 그나마 공적소득보장제도로서 기능하는 연금제도에 대해 국민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 제도는 노동자와 서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그 어떤 민간보험제도보다 보장성이 높다. 또한 기금의 고갈은 제도의 자연적인 현상일 뿐 이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국민연금급여가 중단되는 사태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국가 위기 상황에만 현실화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득이 되는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흔들려선 안 될 것이다.

국민연금과 관련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첫째, 연기금 고갈이 아니라 적립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재정부담의 주체를 ‘세대내-세대간-자본(이윤)’로 확대시켜 적정 책임의 규모의 분담 수준에 대한 논의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국가가 관료 및 전문가 중심으로 기금의 지배구조 및 제도의 개혁을 폐쇄적으로 주도하는 것에 맞서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와 결정이 반영될 수 있는 지배구조로의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적립식 기금운영을 부과식으로 전면 전환했다. 물론 신자유주의 이후 미시적 차원의 개인적립방식의 연금개혁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부과식이 주된 공적연금의 운영방식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나는 의혹이 든다. 휴전중인 국가에서 이렇게 많은 기금을 적립하는 연금제도가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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