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제네바로 가는 까닭

[기고] 수십 차례 ILO 권고에도 한국은 여전히 노동후진국

민주노총은 오는 6월 5일부터 개최되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11명의 대표단을 파견한다. 이는 민주노총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총회 대응이다. 이들은 총회가 열리는 기간 내내 집회와 선전전, 총회 회의 대응,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 면담, 국제 노동단체 대표자 면담 등 폭넓은 투쟁-연대 사업을 펼치게 된다. 민주노총 대표단은 공무원노조(김중남 위원장 등 3명)와 전교조(김정훈 위원장 등 2명), 공공운수노조연맹(윤유식 부위원장 등 3명), 민주노총(김경자 부위원장 등 3명)으로 구성됐다. 민주노총이 이번 ILO 총회에 이례적인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하고, 예년과 다른 강도 높은 실천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단 구성에서 드러나듯, 이번 ILO 대응은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의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ILO 기준적용위원회의 일반토론 주제가 바로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이기 때문이다. ILO 산하 상설위원회 중 하나인 기준적용위원회는 각국의 국제노동기준 이행에 관한 감시감독 기능을 담당하는 ILO의 중추적인 위원회다.

한국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최악의 노동기본권 상황은 이미 국제적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명박 정권 5년을 거치면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노동기본권이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는 노조설립필증 교부가 4년째 불허되고 있다. ‘해직 공무원’ 등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닌 조합원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론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공무원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교조는 정부의 한마디에 ‘법외 노조’가 될 지경이다. 역시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다. ‘조합원의 범위’는 노조가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협약은 정부의 ‘지침’ 앞에 휴지조각이 되고, 노동조건 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파업권은 ‘필수유지업무제도’ 아래 철저하게 봉쇄돼 있다. 이런 탄압 속에 2013년 1월 현재 공공부문 해고자는 648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 올 해 ILO 총회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악의 노동기본권 박탈 앞에 놓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난 6월 1일 대규모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본격화 됐으며, 6월3일부터는 민주노총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의 시국농성이 국회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군다나 6월에는 임시국회 개원에 따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노조법 개정안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결의안이 다뤄져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문제가 나라 안팎에서 쟁점이 되는 기간이자, 관련 투쟁 역시 불을 뿜는 시기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민주노총 대표단의 ILO 총회 대응 역시 이러한 맥락과 기조 속에서 진행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대표단은 △노동기본권 보장 행진 및 집회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 항의서한 조직 △한국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에 대한 국제 연대방안 모색 간담회 △총회장 선전전 등 제네바 현지에서도 투쟁을 이어간다.

특히 6월 12일 진행되는 ‘사회 정의-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자전거 행진(Route of Shame)은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 2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대중투쟁이 될 전망이다. 국제공공노련 주최로 진행되는 자전거 행진은 공공부문 노동자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13개국 제네바 대표부를 순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 국가 중 노조탄압이 극심한 한국을 포함한 5개 국가 대표부(한국 러시아 과테말라 방글라데시 그리스) 앞에서는 약식 집회도 개최된다.

아울러 6월 10일에는 ‘한국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투쟁 현황 및 국제연대 방안’ 간담회가 소집된다. 간담회에는 이번 총회에 참석한 각국의 노동자 대표들이 대규모로 모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현황을 공유하고, 연대 방안을 토론-실천한다.

또 6월 13일에는 한국의 가스-철도-대학-물 사유화 움직임에 발맞춰 ‘재정 통제와 반부패 전략 : 민영화 vs. 공공서비스 강화 포럼’이 개최된다. 이밖에도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 면담 △각국 노조 대표자 면담 △국제노총 및 국제산별노련 간담회 등이 촘촘히 배치된다.

ILO는 국제 수준의 ‘노사정 협의회’라 할 수 있다. 즉 각국의 노사정이 모여 총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모든 토론에는 노사정 대표가 모두 참여한다. 이런 ILO에서 정한 국제노동기준이나 협약, 권고가 과도할리 없으며,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ILO의 협약과 권고에 따라 노동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주요 협약 비준은 20년이 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ILO가 정한 총 189개 협약 중, 2012년 현재 한국 정부가 비준한 ILO 협약은 고작 28개로, 협약비준율은 12.7%에 머물고 있다. 이는 185개 ILO 가입국 중 120위에 그치는 숫자다.

한국의 노동기본권 수준은 ILO가 내린 권고에 대한 정부의 반응과 후속조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93년 ILO 가입 이후 지금까지 총 29차례에 걸쳐 ILO의 권고를 받았으나, 단 한 번도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 등의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노동후진국’ ‘노동탄압국’이란 국제사회의 손가락질과 비아냥거림이 한국 정부에 집중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누리기 위해 싸워온 날도 벌써 십 수 년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누리자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리 만무하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그렇게 좋아하는 정부가 왜 노동기본권만은 예외로 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는 ILO 주요 협약을 즉각 비준하고, 관련 국내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전면 보장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를 모두 복직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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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 국제노동기구 , 공무원노조 , 노동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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