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바꾼다고 내용까지 바뀌진 않아

[기고] 민주당 당사 이전과 깃발 변경에 대해

이탈리아 축구리그엔 ‘밀란’이란 이름을 가진 축구팀이 2개 있다. AC밀란과 인터밀란이 그들이다. 원래 두 팀은 하나의 팀이었다. 영국인 노동자들이 189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영국인 사업가들과 손 잡고 에드워드 데이비스(구두수선공)을 초대 구단주로 한 ‘밀란 크리켓&축구클럽’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 AC밀란의 시작이었다.

노동자들이 만든 축구팀답게 밀란은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만든 유니폼을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고집하고 있다. 그러다 1908년 클럽이 영국과 이탈리아 선수만 기용하는 데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 여러 나라 선수들을 기용하는 ‘국제적’ 축구클럽임을 표방하며 ‘인터밀란’이란 새 클럽을 만들었다. 인터밀란은 이후 기업가들이 주축이 돼 파란색과 검정색으로 만든 유니폼을 입었다.

전통적으로 인터밀란은 중상층 부르조아, AC밀란은 노동자계급 지지를 받아왔다. 두 팀은 멀쩡하게 같은 축구구장을 놓고도 산시로(AC밀란)와 주세페 메아차(인터밀란)라는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해왔다. 밀란 구장은 1926년에 준공해 두 팀이 ‘산시로’라는 같이 사용해왔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축구부흥을 이끌었던 축구영웅 주세페 메아차가 1980년 죽으면서 인터밀란은 이 구장의 이름을 ‘주세페 메아차’라고 달리 불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두 팀의 색깔은 달라졌다. 1986년 당시 보수주의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AC밀란을 인수하면서부터 이런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중상층 부르조아에 기반했던 인터밀란의 현 구단주 모라티는 중도좌파 성향이다.


민주당이 1일 당사를 영등포 시장통 과일가게들 옆에서 다시 여의도로 옮겼다. 민주당이 당사를 옮기면서 당의 색깔도 그동안 사용해온 노란색 계통을 버리고 파란색으로 바꿨다. 노란색과 파란색 계통으로 구별되던 한국의 거대 양당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제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세계일보 9월 2일자 5면>

파란색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보수정당이 즐겨 사용하는 색깔이다. 그래서 파란색은 ‘안정’과 ‘번영’을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여긴다. 보수를 지칭하는 또 다른 색으론 ‘흰색’도 있다. 반면 붉은색은 노동자를 뜻하는 ‘개혁’과 ‘진보’의 색깔로 통한다.

새누리당은 사실 극우정당이면서도 합리성을 갖춘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흉내 내면서 한국에서 주로 파란색 계통을 고집했다. 그런 새누리당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당 색깔을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꿨다.

민주당은 당의 이념에 맞게 노동자 색깔인 붉은색도, 기업가들의 색깔인 파란색도 아닌 노란색을 즐겨왔다. 그런 민주당이 이번에 새누리당이 한나라당 시절 때까지 사용해온 파란색으로 당의 색깔을 바꿨다.

위기 때만 되면 당명 바꾸고, 로고 바꾸고, 당 색깔 바꾼다고 당의 정체성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당들은 익숙할만 하면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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