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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라는 거대한 가족 폭력

[칼럼] 자본주의 붕괴와 함께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질 세 개의 별

가을이 죽어가고 있다. 녹색이던 나뭇잎은 엽록소가 파괴되고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붉은 나뭇잎 이른바 단풍은 파괴의 색깔이자 죽음의 색깔이다. 나뭇잎은 붉게 물들어 죽어 가고 있는데 웬 단풍 행렬이란 말인가. 죽어가는 나뭇잎을 보고 연신 스마트폰을 찍어대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가을의 죽음이 그리도 즐겁단 말인가.

죽어가는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던 최종범, 임현우 씨가 연거푸 30대 나이에 죽어갔다. 자살과 뇌출혈이 겉으로 드러난 원인이다. 그러나 억울한 두 서비스 기사의 죽음은 예고된 인재였다. 극심한 노동 착취와 노동 강도가 죽음의 원인이었다.

[출처: 미디어충청]

아파트 고층에서 목숨을 걸고 에어컨 수리를 하고 사장에게서 짐승 같은 욕설을 들으며 밤 9시~10시까지 고된 노동을 하던 삼성서비스 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차 떼고 포 떼고 고작 1~2백이었다. 게다가 그 월급에서 변상금으로 돈을 떼어가기도 한다. 어느 노동자는 달랑 19만 원만 손에 쥐기도 했다. 자동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최종범 노동자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무급 휴무 요청까지 반려당하면서 과도하게 일을 하던 임현우 씨는 결국 뇌출혈로 사망했다.

삼성은 노동자를 죽이는 곳이다. 삼성반도체에서부터 시작한 삼성노동자의 죽음은 제조업, 서비스업은 물론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갤럭시노트3와 갤럭시기어를 만들어내는 삼성의 뒤에는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폰을 만들어내는 중국의 팍스콘 공장에서 중국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듯이 별 세 개의 삼성, 깔끔한 서비스 처리 운운 뒤에는 노동 착취, 극심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있다.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죽음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삼성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담보로 서비스 평가 1위를 차지한다. 거기다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일거리를 빼앗아 다른 지역의 비노조원에게 몰아주면서 노조 파괴를 종용하기까지 한다.

지난 9월 30일 금속노조는 5월의 삼성전자 서비스 동래센터 위장 폐업, 영등포센터 폭행 사건 등 노조 무력화 정황을 고발하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0월 14일 삼성그룹이 지난해 초 작성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란 제목의 151쪽짜리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을 문제 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은 노동자를 죽여도 너무 많이 죽인다. 가족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의 말을 빌려 삼성이 가족기업이라 손 치더라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거대한 가족 폭력일 뿐이다. 가족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근거리에 오지 못하도록 하는 법도 만들어지는 마당에 삼성 안의 폭력은 국가도 법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삼성반도체처럼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죽고 삼성전자서비스처럼 노동자들이 과로사하며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이 거대한 가족 폭력의 질주를 누가 막을 수 있는가. 가족에게 폭력을 가하는 가장이 가족 운운하듯이 가족 폭력의 대부 삼성이 가족 기업 운운하는 이 아이러니, 노동자에 대한 폭력을 일삼는 삼성자본이 가족 운운하는 이 착란의 악셀레이터를 누가 멈춰 서게 할 것인가.

가을이 죽어가며 커다란 나무들이 나뭇잎을 단풍잎으로 바꾸고 끝내는 낙엽으로 털어내고 분비한다. 나무들이 분비한 낙엽들은 똥이 되어 다시 커다란 나무에 나뭇잎들을 돌려줄 것이다. 자연의 이 거대한 선순환과 달리 삼성 같은 거대한 글로벌 자본은 선순환할 줄 모른다.

대중을 갤럭시노트, 갤럭시 기어 등으로 현혹하고 대중이 기술의 스펙타클에 유혹당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노동과 시간을 착취하며 사회를 악순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에 바쁜 것이 삼성이다. 낙엽이 나뭇잎을 피워내는 거름이 되는 이치를 삼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노동자를 나무에서 털어 내고 죽음으로 몰아갈 분비물 정도로 여길 뿐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능력이 없는 ‘무뇌아 삼성’에게 인간-노동자의 죽음을 돈으로 매수하고 불법, 탈법, 편법, 초법 등 온갖 꼼수로 이건희 일가의 재산 축적에만 혈안이 된 삼성에 오묘한 자연의 진리를 들려줄 생각은 없다.

파괴당한 자연이 인간과 사회에 복수하듯이 글로벌 대자본 삼성도 인생을 파괴당한 노동자들로부터, 파괴 공작에 시달리는 노동조합으로부터 노동의 반격에 당하고 말 것이라는 진리를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듯이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세워놓은 장벽으로 인해 무너진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자본에 장벽이 되는가? 자본의 욕망으로 탄생한 주식, 펀드, 선물, 옵션,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 등이 그 자본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가로막고 파괴한다는 것 아닌가.

자본의 붕괴는 필연이다. 부채 상한(debt ceiling) 증액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사실상 그 위기가 몇 달 뒤로 연기된 데 불과한 지금 세계 자본주의는 미국발 디폴트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은 영원한 삼성이 아니다. 혹여 삼성 라이온즈 연속 3년 우승에서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야구 같은 스펙타클한 스포츠 문화를 통해 잔인한 노동 착취를 은폐하고 노조 파괴를 위해 상상 이상의 짓을 행하는 삼성은 자본주의의 붕괴와 함께 언제든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질 세 개의 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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