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파업이 일깨워준 전설의 의미

[연속기고] 안녕,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1)

[편집자주] '안녕,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은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이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꼼짝하지 않는 학교 측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왜 파업을 지지하는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과 인연들을 소개하면서 청소노동자 파업의 의미를 알리기 위한 연속 기고글이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답을 얻거나 위로를 얻는 경우가 많다. 우연이란 삶의 의미를 재확인시켜주기도 하고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에겐 우연은 소중한 선물이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과의 만남도 그랬다. 노동인권협약 관련 발언을 하기 위해서 찾아간, 12월 16일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 선포 기자회견과 집회에서 뜻하지 않게 난 진실을 마주했다.

전날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8년째 싸우고 있는 콜트콜택노동자들을 응원하며 기타 레전드라 불리는 한상원, 신대철, 최이철 등이 출연한 공연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착잡하고 시렸다. 공연은 정말 환상적이었지만 멋진 공연을 보면서 나는 ‘기타 레전드들은 저렇게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흘러도 공연을 하면서 전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데, 왜 노동자운동의 전설은 그럴 수 없는 걸까? 왜 여성비정규노동자운동의 전설이라 불릴 만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약속을 깬 사측에 의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중앙대 본관 로비에서 청소노동자 수십 명이 모여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답도 얻고 힘도 받았다. 가슴이 벅찼다. 비정규노동자운동의 전설, 노동자운동의 전설은 투쟁으로 이어가는 것이라는 것, 어느 특정 사람, 특정 사업장으로 남는다기보다 릴레이 마라톤처럼 바톤을 넘겨주고 넘겨받으며 ‘계속’ 싸우는 것, 뛰는 것이라는 것을 파업현장의 열띤 분위기 속에서 다시 깨달았다. 전설의 주체는 정적이라기보다 동적인 것, 머물기보다는 흐름-연결된 흐름이었다. 특히나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처음 하는 단체행동, 파업에서 느껴지는 설렘, 동료애, 부당함에 맞선 의지 등등이 나도 덩달아 들뜨게 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연맹]

청소노동자들은 한국여성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3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통해 본 2013년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특징'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증가한 비정규직 95%(3만3,000명)가 여성이고, 50대 이상 비정규직 남성 4만 명, 여성 8만5,000명으로 고령 비정규직이 늘고 있다고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도 커져서 2013년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56.1%인 142만8,000원이다.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한국여성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이 고령 여성이고 간접고용된 비정규직이다. 2011년도에 필자도 함께 한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단’에서 서울지역 청소노동자 165명을 설문조사했는데, 청소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이 84.5%, 청소노동자들의 평균연령 58.16세이고 93.2%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다.

그래서 청소노동자 싸움에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게 아닐까? 청소노동은 천한 노동이라는 낙인이나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시혜적 시선을 넘어야 한다. 아니 조금씩 넘어서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시대 비정규노동의 현실,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기에 사람들의 지지가 모아지는 게 아닐까?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녀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이기에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대자보를 붙이며 함께 하고 있는 것일 게다.

노동탄압을 위해 사용하는 성별 위계

이번에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중앙대학교와 용역업체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노조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중앙대와 용역업체의 복수노조 공작으로 조합원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새벽 4시 반 첫차를 타기 위해 맞아야 하는 찬 공기는 이제는 익숙하다. 출근시간은 7시이지만, 일이 많아 청소를 제 시간에 끝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5시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청소노동자 o 씨는 새벽 출근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발 뻗고 편히 쉬지 못하는 휴게공간은 익숙해지기 어렵다고 했다. 남녀 휴게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남녀의 휴게공간이 분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비 남성들이 감시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앙대는 경비노동자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에도 같은 용역회사 직원이지만 경비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지시를 한다. 관리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소는 남성인 경비들이 모인 시설 근처에 엉터리 휴게공간을 만들었다. 청소노동자들은 경비들의 눈치를 보며 편히 쉬지도 못한다. 게다가 노조탈퇴를 종용하는 경비들의 압력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용역으로 공공부문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관리감독업무에 남성근로자 배치를 요구하는 이유가 “효율적 인원 관리, 통솔력에 있어 남성이 적절하기 때문” 등으로 조사되었다. 성차별적 인식에 따른 성별 위계이다. 많은 청소노동 관련 용역업체가 사실상 성별위계를 통한 노동위계, 노동 관리를 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위계는 임금을 통해서도 관리된다. 동일 유사 직무를 수행하는 남녀 용역근로자간 임금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업무 범위, 난이도, 노동강도, 위험도 등이 다르다”는 이유였고, ‘외곽수당’이나 ‘직무수당’이라는 명목으로 3만원~10만원 더 주었다. 공공부문이 이 정도라면 민간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중앙대의 경우 건물 외곽 청소를 청소노동자들이 하고 있지만 그에 해당하는 어떤 수당도 받고 있지 못하다. 겨울이면 눈을 쓰느라,가을이면 낙엽을 쓰느라 고생하고 있고 학교와 도급업체의 계약에도 외곽청소를 명시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여성이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노무관리를 위해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관행 끝내야

처음 하는 단체행동에 대한 학교 측의 태도는 너무나 무성의했다. 학교는 (직접)고용관계를 맺지 않았으니 ‘무관’한데 왜 여기서 파업을 하냐고 했다. 심지어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를 외쳐도 업무방해로 손해배상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학교와 도급업체 티엔에스가 맺은 계약서에서 드러났듯이 학교는 "콧노래 금지"등의 어이없는 세세한 업무지시까지 내릴 정도로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불법파견이 분명했다.

불법파견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중앙대 총장은 중앙인 청룡광장 게시판에 “직접고용 형태로 운영할 경우 (용역)업체간 경쟁이 사라짐에 따라 학교는 매번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 인상을 해야 하고 복지 확충에 대한 직접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협의가 결렬됐을 때는 항상 이번 사태와 같은 농성과 파업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파견의 이유는 사실상 노무 관리였음을 자인했다.

하지만 노동권의 행사는 국제사회가 1960년대에 이미 국제인권규약으로 인정한 노동자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인권으로서 규정했고 한국 헌법에도 명시된 기본권이다. 청소노동자도 노동자이고 인간이다. 물론 이런 말을 백날 해봤자 소용없음을 안다. 그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니까.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싸움으로, 행동으로, 투쟁으로 바꾸는 게 아닐까. 그래서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더 소중하다. 청소노동자들도 모이고 함께 행동하고 표현할 인간적 권리가 있음을 파업으로, 온몸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 중앙대학의 못된 관행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덧붙임 : 얼마 정 중앙대학교의 반인권적 도급계약서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하고 중앙대 청소노동자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호칭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나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언니가 좋다고 했다. 언니, 왠지 자매애가 느껴지는 호칭이다.

게다가 '어머니'라는 호칭이 주는 청소노동에 낮춤, 노동에 대한 성별화된 인식, 노동자성에 대한 부인이나 회피보다는 나은 듯하다. 예전에도 나이도 비슷해보이는 남성노조 간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어머니들 싸우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는 말을 듣고 불편했다. 왜 그는 동지나 노동자라고 하지 않고 어머니라 부르는지... 동등한 노동자로서의 관계가 느껴지지 않아 불편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자매애가 느껴지는 '언니들의 파업' 의 이름으로 지지를 보낸다. 언니들, 잘 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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