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가 새만금 생태 조사에 나선 이유?

[기획연재] 새만금 생명 보고서(7)

[편집자주]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무분별한 간척 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2003년, 갯벌을 아끼는 시민들이 환경 재앙의 현장을 기록하고,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자는 뜻에서 출발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그동안 매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새만금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까지 모두 120여 차례의 조사를 마쳤다.

헛된 공약으로 점철된 새만금 간척사업을 누구보다 아파했던 이들은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백서로 발간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펴낸 <2013 새만금 생명 보고서>는 지난 10년의 기간 중앙정부와 전라북도, 토건자본들의 무자비한 개발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사라진 생명들과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도움으로 보고서 일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시민생태조사단의 참가자들의 목소리로 사라진 갯벌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013년 대한민국은 약속이 깨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있다. 국민 합의 없이 민영화를 진행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약속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으로 무참히 깨졌다. 그리고 약속이 파기됐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경찰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약속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10년 전 약속을 지킨 이들이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그들이다. 2003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파괴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부지 현장을 다닌 시민조사단은 ‘10년은 가보자’던 처음의 약속을 지켰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사진 제공 -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2003년부터 지금까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이름으로 새만금 갯벌과 그 현장을 찾은 것은 모두 120차례. 그동안 약 2620여 명이 함께했다.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처음부터 지금까지 물새팀 실행위원으로 새만금 현장을 찾은 오동필(39) 물새팀 실행위원을 12월 29일 저녁 군산의 일터에서 만나 그간의 과정을 들어봤다.

오동필 실행위원을 만난 곳은 군산의 한 아파트관리사무소였다. 목수일과 아파트 전기시설 관리를 병행하는 오 실행위원은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한다. 그가 처음 새만금 갯벌을 찾은 것은 20대 중반이었다. 10년이 훌쩍 지나 지금은 조류학자가 꿈인 아들을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새만금 지도를 그려주며 설명하는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물새탱 오동필 실행위원

“2000년 정부가 준비한 민관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정말 엉터리였습니다. 엄선된 전문가들이 고작 1년의 조사를 통해 새만금 개발을 해도 좋다는 황당한 결과를 내놨죠. 보고서도 엉터리였어요. 새만금 갯벌은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어민들이 수천 년을 살아온 터전이었죠. 그런데 민관합동조사단은 어민들을 포함한 새만금 생명들의 삶 전체를 조망하지 않았어요. 문화 이야기가 없었던 거죠. 그게 시민들이 나서게 된 계기였어요.”

삶을 조명하지 못한 새만금 환경영향평가

오 실행위원은 자신의 보고서에서 2000년 정부의 민관합동조사단 보고서 결과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금은 회자되지 않는 그 보고서는 당시 큰 충격을 줬다. 1999년 5월 1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이한 새만금조사단)은 2000년 6월 말까지 조사를 한 뒤 같은 해 8월 16일 조사단장이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고 종료했다.

당시 조사단장을 포함한 구성인원은 모두 30명, 그 중 환경단체 등이 추천한 민간전문가는 10명이었다. 나머지는 정부 측 관계자와 전라북도와 농림부가 추천한 민간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됐다. 정부 측 인사가 많은 상황에서 조사단은 과정에서 많은 말썽이 있었다. 그리고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조사단장이 최종보고서를 일부 조사위원에게 알리지 않고 정부에 제출했다.

“사실상 전문가로 구성된 새만금조사단은 환경단체 추천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맺었죠. 전문가 그룹에 대한 양심의 부재에 깊이 분노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는 오동필 실행위원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 분노와 배신감은 곧 시민생태조사단의 출발이었다. 새만금 민관조사단에 기대를 걸었던 환경단체들도 그 결과에 실망하고 새로운 계획을 모색한다. 바로 시민들이 직접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한일공동조사팀을 2000년 말부터 꾸렸다.

“한·일 환경전문가들이 국가의 견해만 대변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조사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장기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맺었죠. 그래서 공동 조사 약 2~3년의 기간 동안 시민들의 참여를 열어뒀습니다. 당시 저도 이들의 이동을 도우며 조사 기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새를 무척 좋아했는데, 새만금을 찾는 도요새를 본격적으로 본 것은 그때였어요. 그렇게 공동조사팀이 2~3년 조사를 진행하고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이 바톤을 이어받은 거죠.”

어깨 너머로 배운 조사기법, 비록 라이센스는 없지만 열정만큼은 환경 전문가보다 컸다. 그렇게 배운 조사기법을 시민생태조사단 초기 참가자들이 공유했고, 2003년 12월 첫 시작을 알렸다. 시민조사단은 물새팀·저서생물팀·문화팀·식물팀·영상팀으로 꾸리고, 각 팀마다 1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조사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교육적 측면에 방점이 찍었다.

  새만금 갯벌의 어민 [출처: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처음에는 운동적 차원에서 접근했죠. 당시에는 새만금 사업이 지금의 4대강 사업처럼 논란이 컸던 시기여서, 많은 시민들이 아픈 마음을 이끌고 현장을 찾았어요. 동화작가, 대학생 등 다양했죠.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 새만금의 아픈 현장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 과거 갯벌로 진입하는 마을 입구(해창, 살금, 문포, 화포, 옥구염전 등)를 찾았죠.”

그러다 보니 물새팀의 경우 조사에서 기본이 되는 정량 조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보고서에 2년 단위로 물새들의 개체 수가 보고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정량 조사에 대한 강박은 없었다. 그 이유는 민관조사단과 정부, 전라북도가 보지 못했던 새만금 갯벌을 뿌리로 살고 있는 생명들과 어민들의 삶이 더욱 중요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바로 ‘문화’, 새만금 지역의 문화가 우선 가치였기에 그랬다.

“민관조사단 보고서는 문화 이야기가 전혀 없어요. 환경영향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이죠. 물새는 정량 조사가 가능하지만, 문화와 삶은 그렇지 못해요. 어느 집 70대 할머니가 용돈 없이 자기 힘으로 갯벌에 나가 일을 해요. 그 분은 많이 움직이니 병치레도 없죠. 이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독립되어 그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갯벌이 사라지고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빈민층으로 전락하죠. 이런 주민들이 상당해요. 엄청난 경제 손실이죠. 그래서 우리 조사단 중 문화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물새나 저서생물, 식물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그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는 무척 중요합니다. 결국 문화와 다 연결이 된 문제였죠. 이처럼 저서생물이나 새, 식물, 주민의 삶을 모두 엮어낼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문화와 철학이었어요. 그런데 민관조사단의 조사는 과학, 그것도 비상식적인 과학으로 진행됐고 철학과 문화는 배제됐죠.”

이와 같은 마음에서 시작한 시민생태조사단의 조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2005년부터 새만금의 재앙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밀물과 썰물로 매일 바닷물에 잠기고 드러나는 것을 반복하던 갯벌은 한 달에 2~3번 정도 바닷물에 잠겼다. 이에 기존의 염습지는 완전히 말랐고, 물이 잠겨야 사는 저서생물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2006년 여름, 새만금 갯벌에는 수많은 바닷생명들의 주검이 널려있었다.

새만금 끝물막이 이후, 참혹했던 새만금 갯벌

“2005년 4월로 기억해요. 물이 안 들어오니까 그 전에는 가지 못했던 곳도 1시간 이상을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걸어가는 내내 참혹한 저서생물들의 죽음을 목격했죠. 조개들은 마지막 숨을 내쉬는 듯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죽어있었죠. 거의 한 달을 버티더라고요. 2005년부터 마지막 끝막이 공사가 완료된 2006년 4월과 그해 여름까지 새만금 갯벌은 참혹했습니다.”

당시 기자도 현장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어민들의 그레질과 햇볕에 빛나던 갯벌, 그 위를 지나던 수많은 농발게와 백합, 바지락 등 조개들. 2006년 여름은 갯벌의 풍족함을 바닷생명들의 사체로 증명하고 있었다. 20세기 말, 새만금 방조제의 타당성과 갯벌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고 많은 이들이 갯벌의 소중함을 삼보일배와 투쟁, 눈물로 설파했지만, 대개발 앞에 절충안은 없었다. 대법원 판결이 끝난 2005년 말부터 새만금 공사는 재개되었고, 그 속도를 바닷생명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들과 박근혜 정부, 전라북도는 환경에 대한 철학이 없었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절충안을 내놨을 것이에요. 그런데 갯벌을 다 없애는 계획으로 갔죠. 민주당도 선거 표만 의식하고 정치적 싸움으로 새만금을 이용했죠. 경제적으로 봐도 새만금 사업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말을 아무도 못하는 것이죠. 전라북도도 그동안 자신들이 소외되어 왔다는 강박관념에만 사로잡혀 새만금 사업을 보상의 기회로만 생각했죠.”

이 시기 참혹한 주검 앞에 충격을 받은 시민조사단원들은 지금도 열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고 그 죽음이 준 충격이 컸던 탓일까? 점점 조사단원의 수는 줄었다. 매번 40여 명이 함께하던 시민생태조사단은 2007년부터 20여 명으로 줄었다. 한 번은 6명이 조사에 함께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2008년부터 4대강 사업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환경 이슈는 새만금에서 4대강 사업으로 이전하게 된다.

  방조제로 인해 말라버린 갯벌, 수 많은 게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때부터 물새팀은 정량조사가 가능하게 됐죠. 하지만 사회 이슈에서 새만금이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감이 있었어요. 이제 새만금 문제는 시작인데.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에 희망은 사라졌다고 말했죠. 항상 같이 다녔던 분들을 못 보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더라고요. 처음에는 몇 명이 오냐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새만금을 꾸준히 보면서 진실은 새만금 문제가 이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새만금 갯벌은 중요하다는 기존의 입장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었어요.”

지역 어민들이 생태적 가치가 곧 지역 경제로 간다는 것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부 정책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해수유통을 비롯한 대안이 나왔고, 일부 개발을 하되 남은 갯벌을 살리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새만금 갯벌을 보존하자는 말은 이제 극단적 싸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환경을 대안적 차원에서 살펴보고 협상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논리도 존재했다. 그러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그런 다양한 논리와 의견에 잠시 거리를 두었다.

“갯벌을 계속 봐온 사람에게 어느 갯벌이 중요하고 어느 곳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워요. 2006년 재앙 앞에 아픔을 겪었고, 그 후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처음 약속을 생각했죠. 10년을 봐야한다. 그 말에 조사단원들은 공감했어요. 일부에서는 저희를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했죠.”

  동진강 하구의 가창오리떼 [출처: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홈페이지]

새만금 사업의 결론은 갯벌 복원이어야

그렇게 봐온 10년의 새만금. 지금도 오동필 실행위원이 내린 결론은 새만금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의 조사를 통해 새만금 개발의 결론을 내린 새만금 민관조사단의 평가는 모순적입니다. 10년을 다니며 새만금 내 생명의 보편적인 가치를 표현하는데 지역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어요. 생명을 쉽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도 그렇고 다시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갯벌이 품은 가치를 거둬서 자식들을 키운 어민들과 수많은 물고기와 저서생물. 잡아도 또 생겼던 생명력. 그것들은 새만금 방조제로 막히면서 사라졌다. 4대강 사업이 보로 물길을 막으면서 ‘녹조라떼’와 ‘민물고기 집단 폐사’ 등의 징후들로 보를 허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듯,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를 막은 방조제는 갯벌 복원을 위해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이 오 실행위원의 결론이다.

“6~70대 어르신들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노동인력으로 보지 않아요. 이들은 소외계층이죠. 과거 갯벌은 이들에게 공장이었어요. 갯벌은 공공재였죠. 약 3만 명의 어민들이 활동했어요. 그래서 새만금 사업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철도 민영화와 같은 문제예요. 사람들이 왜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나요? 공공재가 가진 유익성이 훼손되니까 그렇잖아요. 갯벌을 복원하고 새만금의 번창했던 문화를 살리면 다시 지역경제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연재 순서]

1. 새만금 조류 조사 10년, 8만 마리의 도요새는 어디 갔을까? 오동필 물새팀 실행위원
2. 군산에서 가장 큰 포구, 이제는 황량함만 자리해. 여길욱 저서생물팀 실행위원
3. 새만금 지역 어민, 지금은 어떻게 사나?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4. 내가 만난 새만금 어민.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5. 지금도 돈이 되는 실뱀장어 어장. 김회경 동화작가
6. 새만금은 끝나지 않았다. 생태조사단 10년.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7.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실행위원 인터뷰. 문주현 참소리 기자
8.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문주현 참소리 기자
9. 소외받은 자의 우울한 완장. 김형균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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