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기소권이 절실한 이유

[기고] 증거인멸, 책임회피 결론으로 억울한 죽음은...

세월호 특별법의 쟁점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특히 기소권이 핵심이다. 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이를 반대할까? 유가족은 곡기까지 끊으며 수사권과 기소권이 절실하다 할까?

‘정법영 열사’는 충북 민중운동 아버지 청주도시산업선교회 故(고) 정진동 목사님의 첫째 아들이다. 1978년 신흥제분 등 노동자들의 농성에 함께하다 행방불명되고, 며칠 후 건장한 청년들에 의해 돌아와 시름시름 앓다가, 청주 성가병원에서 사망했다.

당시 교회는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수사대 등이 교회 앞에 집을 얻어 살 정도로, 아예 청주경찰서 정보과 요원은 집안에 들어와 먹고 잘 정도로 밀착 감시를 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정법영 열사가 누구에게 끌려갔는지, 누가 교회에 데려다 줬는지, 병원에는 누가 데려갔는지 등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정보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나 몰라라 했다. 이 억울한 죽음은 군부독재시절 약물중독에 의한 자살로 처리됐다.

그리고 24년이 흘러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정법영 열사 사건을 다뤘다. 위원회는 9월 14일 ‘의문사한 자 정법영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한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법영의 사망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직·간접적 개입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밝히지 못한 점은 당시 수사 자료 등을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점, 시간이 많이 흘러 주변 사람들의 기억이 정확하지 아니한 점 이외에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보아 정진동 목사와 그 가족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정보원(당시 중앙정보부)의 자료제출 비협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며 죽음의 경위와 이유, 가해자를 밝혀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의 민주화운동 관련 의문사 규명을 위해 설치된 기구인 위원회가 자료를 요청하는데도,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자료제출을 하지 않았다. 수사권만을 가졌던 위원회의 한계였다. 위원회가 수사권과 함께 자료제출 등을 거부하는 국가기관을 처벌할 수 있는 기소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료제출을 하지 않는 국가정보원장을 수사방해와 증거인멸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었고,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직접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 결국 기소권 자체가 없었던 절름발이 위원회는 억울한 한 젊은이의 죽음에 가해자도 밝혀내지 못하고 허무한 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국정조사에서도 보인 것처럼 국정원, 해경 등 관련 국가기관들은 증거인멸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특히 기소권이 없는 특별법은 제정된다 해도 국정조사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국정원은 기밀을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해경 등은 회피해 버리면 된다. 청와대는 솜털 하나 조사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304명의 억울한 죽음은 또다시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게 된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 절실한 이유다.

[출처: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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