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첫차는 동양시멘트 비정규직들입니다

[기고] 9.12 희망버스를 타며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앞.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길바닥에 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숙자 비슷하다. 다만 그들의 머리 위로 현수막이 걸려있다.
“삼표! 101명 부당해고 노동자 정규직 복직 없이는 삼척 땅에 못 들어온다.”

그렇다. 우리는 노숙자가 아니다. 2015년 2월28일 부당해고된 삼척 동양시멘트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지금 피곤에 전 졸음을 참아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들 중 한명이다. 강원도 삼척 그 먼 곳에서 왜 서울까지 와 노숙을 하고 있을까?

이유는 복잡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저임금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어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해고되었을 뿐이다. 따져보니 나는 비정규직 하루살이가 아니라 “우리의 진짜 사장은 동양시멘트 본청이다”라고,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서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이 해고는 부당하다, 동양시멘트가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먼 이 곳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앞에 누워있다.

게다가 이제는 삼표가 동양시멘트를 인수한단다.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기업이 가진 의무와 책임을 다 인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부당해고 문제도 삼표가 책임져야 하기에 우리는 삼표 본사 앞에서 당신들의 당연한 의무를 묻는 우리들의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비현실적이다. 내가 아니 우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니. 매일 선전전을 하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 궁금한 듯 쳐다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무감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상황에서 삼척을 떠나 서울에 있는 상황이 외롭고 서럽고 또 분하다. 그런데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피켓문구를 쳐다보시더니 말씀 하신다.

“언제쯤이나 이런 거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올까요? 우리가 바꾸지 못해서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미안합니다.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딱 한 시간만이라도 노동을 멈추면 다 해결될 텐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잠깐 멍해졌다. 뭐하시는 분일까?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분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잠시 후에 이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달리는 댓글이 흐뭇하다. 그 중 '이런 어르신이 많은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댓글이 가슴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상경 노숙투쟁도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많은 냉대와 구박 속에서 반짝 번뜩이는 마음 따뜻한 응원들, 무엇보다 우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전국의 동지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리고 지역에서 항상 연대해 주던 고마운 동지들,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말이 가슴 속에 메아리친다.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데 노동조합을 만들면 해고되는 세상, 돈밖에 모르는 저질자본은 범죄를 저질러도 용인되고 억울한 노동자들은 정당한 요구를 해도 연행되고 구속되는 세상, 거기에 질 수 없어 노동의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공장굴뚝 위로, 전광판 위로 올라간다. 지상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허공 중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 희망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지상을 떠나 허공 중에 매달린 깃발로 매달려 울며 호소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하공 중의 노동자나, 정당한 요구가 범죄가 되어 옥중에 갇혀 있는 동지들은 다르지 않다. 그런 동지들 중 얼마전 구속된 우리 동양시멘트노조의 최창동 지부장과 박철민 사무차장도 있다. 그들은 온 몸으로 희망을 찾고 있다. 희망을 고공 농성이나 감옥에서 찾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슬픔과 분노가 쓰나미처럼 소용돌이친다. 그래서 희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그냥 그렇게 말없이 살았으면 해고될 일은 없었겠지만 그것은 절망의 수렁이다. 사람답게 살자는, 최고한의 인간적 존중이 필요하다며 시작한 투쟁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해고’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람답게 살자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담은 버스가 9월 12일 출발한다. 우리의 희망이 지역을 넘어 전국의 모든 노동자의 희망이기에 우리는 전국에서 스스로 희망이 된 이들을 찾아 간다. 우리가 농성하는 삼표에서 멀지 않은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 오른 기아자동차비정규직 최정명, 한규협이 우리다. 거제 대우조선 크레인 TTC-06호 위에서 140여일째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강병재가 우리고,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 오른 지 130여일째인 생탁과 한남교통의 송복남, 심정보가 우리의 다른 이름이다. 구속된 우리 지부장과 사무차장의 다른 이름이다. 단결과 연대, 내가 내 마음을 모든 이와 함께 하는 진정, 그것이 희망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당당하게 일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속이라 믿는다.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노동조합 동양시멘트 지부는 희망버스를 타며 스스로 희망버스가 된다고 생각한다. 기아 대우 생탁 택시 이름은 달라도 우리는 몸으로 안다. 그들이 바로 나다. 내가 바로 그들이다. 그 마음이 바로 희망버스다. 9월 12일 우리의 희망이 출발한다, 우리 동양시멘트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이제야 노동조합을 알았지만, 이제야 참삶을 알았지만, 용기있게 강원 희망버스의 첫차가 되고자 한다. 사람들아, 함께 이 희망 버스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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