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MBC뉴스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사문화된 개념을 되살려낸 쿠팡
쿠팡 일용직 노동자의 퇴직금 이슈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처음 MBC 보도를 접하였을때, 일용직 노동자의 퇴직금 지급 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가 있기에 그저 쿠팡의 '꼼수'가 발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행 노동관계법령이 상용근로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을 노린 쿠팡의 꼼수이고, 일용직 노동자 취업규칙을 대법원 판례 법리에 어긋나게 개정한 것은 그저 선언적인 효과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쿠팡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순수' 일용직 노동자라는 사문화된 개념을 끄집어내 퇴직금 미지급을 정당화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동부치청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은 쿠팡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일 단위로 근로계약을 하여 그날의 근로를 마치면 근로관계가 종료되고, 따라서 매일 근로관계가 단절되어 계속근로가 인정되지 않기에 퇴직금이 발생하지 않음" 이것이 쿠팡의 주장이다. 순수 일용직 노동자는 100년을 일해도 퇴직금이 없게 된다.
▲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 사건처리결과통지서(쿠팡 일용직 퇴직금 사건)
'순수' 일용직 노동자?
쿠팡의 주장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허무맹랑했고, 되새겨봤을 때는 두려움이 들었다. 우리 대법원은 노동사건에 대하여 실질주의 원칙을 토대로 판단한다. 즉,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근로제공의 실질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고, 사업장에서의 명칭에 관계없이 노동자에 의사에 반하여 행해지는 근로관계 종료를 해고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순수' 일용직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순수 일용직인지 형식적 일용직인지에 대한 판단은 실제 노무관계를 바탕으로 사후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건설 일용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일(日)단위로 출근 여부가 정해지는데, 대법원은 다수의 판결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사용자에게 퇴직금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시하였다).
▲ ‘순수’ 일용직은 독자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실제 사실관계에 대한 검토 없이, 쿠팡이 만든 쿠펀치 어플을 통해 출퇴근을 한다는 이유로 쿠팡 일용직 노동자들이 '순수' 일용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노동부가 논증 없이 결론을 선취한 것이자, 노동법의 대원칙인 실질주의 원칙을 무너뜨린 것으로 매우 주의깊게 봐야하는 사건이다.
'순수' 일용직에 대한 법리적 검토
필자는 쿠팡의 주장과 지난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세가지 방법에서 반박해보고자 한다.
먼저, 형식 논리학을 통한 검토이다. '일용직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계속성이 없다'라는 명제(p이면 q이다)가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당해 명제의 역(q이면 p이다)과 이(~p이면 ~q이다)는 모두 ‘1년의 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가 반례가 된다. 이처럼 원래의 명제와는 대우 명제(~q이면 ~p이다)만이 동일한 진리값을 가진다. 따라서 일용직 노동자는 근로관계의 계속성이 없다는 당위 명제를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계속성이 없는 경우 순수 일용직 노동자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 대우 명제는 본 명제와 같은 진리값을 가지지만, 역과 이 명제는 그렇지 않음
두 번째는 귀류법적 검토이다. '노동자가 쿠팡 일용직으로 근무하더라도 근로관계가 매일 단절되지 않는다(p->q).' 라는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기 위해 논증하기 위해 '쿠팡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노동자는 근로관계가 매일 단절된다(p∧~q).'라는 조건 명제를 가정해보자.
그런데 쿠팡은 단기사원(일용직) 취업규칙에서 근로관계의 계속성이 전제가 되는 주휴수당을 규정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일주일에 2일 이상 출근하는 경우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실질과 쿠팡의 단기사원 취업규칙은 '쿠팡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노동자는 근로관계가 매일 단절된다.'는 조건 명제와 모순된다. 따라서 '노동자가 쿠팡 일용직으로 근무하더라도 근로관계가 매일 단절되지 않는다.'라는 원래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 간접 증명되는 것이다.
마지막은 근로기준법 제2조 개념 정의에서 출발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종래 대법원과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은 건설 근로자를 포함한 일용직 근로자들에 대하여 일용관계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 온 경우에는 형식적 일용근로자로 보아 일정한 기간의 계속근로를 요건으로 하는 퇴직금을 받을 권리를 취득하는 것으로 판단해왔다.
그런데 쿠팡풀필먼트 등 물류 업종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에 대하여만 예외를 두는 것은 직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는 근로기준법 제2조 개념에 반하는 것이며,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또는 사업장의 취업규칙이 법령을 위반할 수는 없다.
쿠팡 일용직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이유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사건은 단순히 그 상대방이 쿠팡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순수'라는 비법률적인 개념이 현행 법 체계에서 허용된다면 사실 우선의 원칙을 택하는 노동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 회피를 위해 ‘외형’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계약의 형식을 위장하여 노동자를 무늬만 프리랜서로 만들고, 사업장을 분리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케하여 시용노동자를 교육생으로 만드는 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자본의 위장행위를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만들어준다. 만일 '순수' 일용직을 허용하게 되면, '순수' 프리랜서, '순수' 5인 미만 사업장, '순수' 자영업자와 같은 오개념들이 세상에 출몰할 것이다.
어플을 통해 출근하면 매일 입사와 퇴사가 반복되어 근로관계가 단절되고, 손으로 출근부를 쓰면 단순 출퇴근으로 보아 사용종속관계의 계속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일반 상식에도 반한다. 이미 대법원은 2022년 7월 포스코 사내하청 불법파견 사건에서 MES(작업실적 관리시스템)를 통한 업무 지시가 업무를 직접 지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쿠팡이라고 다를 것 없다. 기존의 형식적 일용직에 대한 법리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이고,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는 '순수 일용직'에 해당하므로 다른 사례라고 하는 것은 직종에 따라 법리가 달리 적용된다는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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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