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따위 지키지 않는 고용노동부장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고용노동부 누리집 첫 화면에 뜨는 문장이다. 3개의 문장이 흘러가는데 “지속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 구축” “일자리 기회는 확대하고 일터 문화는 혁신” 뒤에 따라붙는 문장이다. 좋은 말이다. 조직의 이름으로 보나, 스스로 내건 구호로 보나 고용노동부가 ‘노동’을 존중해야 할 기관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아직’ 고용노동부 장관인 이정식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이 담고 있는 내용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와 쟁의행위 범위 확대, 노조 활동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인데도 말이다. 고용노동부라는 기관, 참 혼란스럽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은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재임 시절(2017~2020) 매년 노동법 위반으로 신고당하고 수사받았다. 직원 간 성추행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직원들의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재단 내 민주노총 소속 소수 노조를 한국노총 소속 다수노조로 통합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정식은 삼성전자 노무 관련 자문위원으로 여러 차례 자문료를 받았으며 삼성그룹으로부터 상당한 연구용역비도 받았다.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인 2023년 3월 6일에는 주 69시간 일하고 장기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제도를 설명하던 장관은 저축된 연차를 못 쓰게 하는 등의 악용 우려가 제기되자 “요새 MZ세대들은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서” 괜찮다고 답했다.
여하튼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러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한국 정부 출범 이후 노동 관련 기관이 대우받지는 못했다. ‘노동’도 ‘노동의 가치’도 대우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에 그나마 특별근로감독 권한이 있어 기업들이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며 고용노동부 장관 자리가 요직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칼날을 기업을 상대로 휘두르는 걸 본 적이 없는 국민으로서는 그닥 우습지 않은 말장난일 뿐이다.
2022년 9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김문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출처 : 대한민국 대통령실
이제는 김문수다
그리고 다음 주자는 김문수다. 김문수, 누구인가.
1994년 3월 8일 노동운동가 김문수는 민자당사에서 입당서류에 서명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내고 “김영삼 대통령이 있는 당이 개혁당이기 때문”에 입당했다고 했다. 민자당에 즐비한 5·16쿠데타 세력과 함께하게 된 데 대해서는 “지금은 시대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달라졌다.
과거 이력을 떠벌리며 국회의원을 3번, 경기도지사를 2번 했다. 그러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에게 밀리고, 2016년 총선에서는 대구에서 김부겸에게 졌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박원순에게 참패했다. 태극기를 휘감고 집회장을 돌아다니며 박근혜 구속 반대를 목 놓아 외치던 그는 ‘김문수TV’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가 됐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장황한 그의 일생은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가 해온 말이나 행동들이 너무도 괴이해 응당 ‘뉴스감’이어서 그랬는지 ‘왕년의 노동운동가’라는 흥미로운 이력 때문에 그랬는지, 언론이 그의 행적을 대체로 다 보도했기 때문이다.
다만, 단 한 사람만 그걸 몰랐거나, 알았기에 일부러 그를 콕 집어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하며 천방지축 장대질하다 발을 헛디딘 그를 기어이 건져 올린 게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김문수를 2022년 9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2024년 7월 31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노조 없는 현장에 감동하는 노조 출신
김문수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임명되기 한 달 전인 2022년 8월 22일, 김문수TV에 ‘불법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김문수는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업과 점거 농성을 비난하며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을 가장 두려워한다. 민사소송을 오래 끌수록 굉장히 신경이 쓰이고 가정이 파탄나게 된다”고 말했다. “원칙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노사관계가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노동조합에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상식을 가진 모두가 기함했지만, 대통령만은 그의 경박함을 높이 산 듯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된 김문수는 2023년 3월 2일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감동 받았습니다. 노조가 없습니다. 620명의 평균나이 28세, 현장에서 핸드폰은 보관하고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평균임금은 4천만 원이 안 됩니다.”
노조 없는 현장에 감동한 그에게 감동한 한 사람, 윤석열은 그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후보자가 된 그가 지난 8월 1일 인사청문회 준비 TF 사무실에 출근했다. 기자들이 이전 ‘반노동’ 발언에 관해 물었다. 그는 “반노동이 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제가 노조 출신이고 제 아내도 노조 출신이고 우리 형님과 동생도 노조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노조’가 없는 것에 감동했고, 노동자 가정의 파탄을 주장하던 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받자 ‘노조’ 출신임을 강변한다.
그에게 ‘노동’ 또는 ‘노조’가 어떤 의미인지는 매우 모호하면서도 대충 짐작은 간다. 그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시절 김문수TV에서 PD로 일했던 자를 경사노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전문성보다 친분으로 위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김문수는 “그가 노동단체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임금노동자로 생활해 와 노동계 인사에 해당된다”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았다.
굳이 그런 자들을 발견해 내는 대통령
그런데 ‘노동운동가 김문수’는 이미 30여 년 전 인물이다. 그가 노동운동가로 20여 년을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 30여 년 세월을 ‘우직하게’ 극우 보수의 한길을 걸어 왔다.
그가 변절자여서 문제가 아니다. 김문수에게 노동 정책은 ‘반노동’ 뿐이다. 그저 사전에 나와 있는 대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인 ‘돌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김문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자를 장관으로 지명한 사람이 문제다. 김문수가 아니더라도 그런 부류를 지명했을 터라, 누굴 데려오든 뭐가 딱히 다를지 싶다. 그래서 곤란한 것이고, 그래서 절망적인 것이다. 어떻게 저리도 귀신같이 최악 중의 최악만 발굴해 내는지 그 재주가 신통하기도 하다. 이렇게 최악에 길들어 차악을 그리워하게 될까 두렵기조차 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감사 도중 “성질이 뻗쳐서” 기자들에게 욕을 한 유인촌은 2023년 10월, 15년 만에 돌아와 욕설 사건을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 12·12와 5·16쿠데타를 옹호하고, 박근혜 탄핵 촛불은 거짓이라며 태극기 집회에서 춤추고 돌아다니던 신원식도 그때 국방부 장관이 됐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왜곡 글에 열광하는 이진숙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날, 김문수는 태극기 휘날린 덕분인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낙점받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태극기로 장엄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파국이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은 어김없이 행사될 것이고,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은 강행될 것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불운한 점은 딱히 이보다 나은 상황도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 노동자들은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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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