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기점으로 줄곧 MBC와 부딪혀왔다. 대통령실은 해외 순방 시 MBC 소속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고,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MBC 보도는) 동맹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가짜뉴스”라고 모욕했다. 그날 대통령실은 “MBC, 이게 악의적입니다”라는 공식 브리핑을 내놓기도 했다. 2022년에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에서 눈엣가시(?)인 MBC는 KBS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2022년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MBC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진행된 ‘채 상병 입법 청문회’를 생중계했고, 메인 뉴스에서도 주요하게 다뤘다.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행보가 갈린 이유는 간단하다. 윤석열 정부가 시도한 MBC 사장 교체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이다.
MBC 사장 추천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기가 오는 8월 끝난다. 이 말은 즉 공영방송 사장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내정할 수 있는 현행 법·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현재의 (망가진) KBS는 MBC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2대 국회에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1(방통위 설치법)’ 개정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다.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방송3법’과 더불어민주당의 속도전
‘방송3법’은 21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골자로 공영방송 KBS와 MBC, EBS 이사 추천권 분산과 사장의 선출 방식 및 임기 보장 내용을 담고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조차 되지 않았지만 ‘방송3법’은 5건이나 발의됐으며, 지난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해 25일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된 상태다. 그렇다면, 방송3법이 시행되면 공영방송은 어떻게 바뀔까?
KBS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현행 「방송법」에 따라 KBS 이사는 11인으로 구성되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KBS이사회 11인은 관행적으로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측 인사 7인과 야당 측 인사 4인으로 구성해 왔다.
개정안은 KBS이사회를 21인으로 증원하고 △국회 교섭단체 5인(의석수에 따라, 성별(性別)로 각각 1명 이상),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 6인(지역방송 관련 학회 2인 포함, 성별로 각각 2명 이상), △시청자위원회 4인(성별로 각각 2명 이상), △직종 대표 6인(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이 추천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KBS이사의 추천권을 가진 주체는 공모·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KBS 사장을 뽑는 과정도 바뀐다. KBS이사회는 사장 임명제청 시 반드시 성별과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3인 이하로 후보자를 압축하면, 이사회는 해당 후보 중 2/3(특별다수제)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사회에서 2회 이상 부결되는 경우, 마지막 투표 시 최고득표자와 차점자에 한해 결선투표를 해서 다수득표자를 임명제청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임명된 KBS 사장은 특별한 결격사유나 ‘회계 부정이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등의 사유 없이 해임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추가됐다.
정리하면 이렇다. KBS의 정치적 독립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 추천권을 분산해 놓고, KBS이사회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사장 임명제청 시에는 별도의 사장후보추천위원회라는 조직을 운영해야 하며,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선택을 받은 후보 중 특별다수제까지 거쳐 최종 1인을 임명 제청해야 한다는 얘기다(심지어 KBS사장은 대통령 임명 전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아야 하기도 한다). MBC와 EBS의 경우, 각 방송사의 설립 취지와 지배구조에 따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은 유사하다. 옥상옥에 복잡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런 복잡성은 책임소재를 흐리게 만든다.
2024년 6월 25일 KBS 뉴스 보도. ‘방송 4법(방송3법+방통위법)’ 속전속결...여, 강력 반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편과 방송통신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늘리는 내용 등을 담은 이른바 방송 4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정권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공영방송
현재 국회 의석수 상황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지를 볼 때, ‘방송3법’은 조만간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거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게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라고 이야기된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언론을 장악할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자들의 흔한 거짓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언론은 장악할 의지도 없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었다. 권력자들은 수위만 다를 뿐 언론을 장악하고자 했고, 실행해 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양분화된 정치 지형은 방송의 독립성에 관한 사항을 빠르게 정치화시켜버렸다.
‘방송3법’의 추진을 두고 나오는 우려는 정확히 이 부분을 겨냥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5월 26일)을 통해 “아무리 세심하게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설계한다고 해도, 특정 세력이 맘먹고 제도를 남용하겠다고 나서면 애초 설계 의도를 간단하게 무력화할 수 있다”며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 당연히 살펴야 할 대목이다. 다음 총선에서 국회 의석수가 바뀌어 국민의힘이 또다시 법 개정에 나선다면 뭐라 할 것인가. 방송 관련 법 개정은 어느 것보다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공영방송이 망해간다. KBS의 문제는 박민 사장이 취임했기 때문인가.
단편적인 시각이다. 공영방송의 진짜 위기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방송이 180도 달라지는 데에 있다는 시각도 크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KBS의 보도가 정권에 따라 널 뛰듯 달라지는데,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누가 이런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구성원들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또한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양승동 사장 체제의 KBS와 박민 체제의 KBS. 그 둘은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외 방송에서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 내 공영방송을 위한 법 개정은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그런 방법으로 개정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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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