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슐라임(Avi Shlaim)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가자에서의 집단학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장기 전쟁》(Genocide in Gaza: Israel’s Long War on Palestine)은 <타임스 문예 부록>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책 중 하나로 꼽혔다. 나는 이 책이 이스라엘 군사 작전의 정치적 배경을 깊이 있게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노동당을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Labour)에 재게시된 발췌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아래에 해당 장의 일부를 <아이리시 페이지스 프레스>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
아비 슐라임의 《가자에서의 집단학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장기 전쟁》은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직접 주문할 수 있다.
아비 슐라임은 레딩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재직한 바 있는 저명한 학자로, 1980년대 후반 기존의 이스라엘 역사 서술을 비판한 “신역사가들”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연구는 중동의 현재 정치 상황과 지속적으로 맞닿아 왔다. 그는 최근 <노바라 미디어>와의 장시간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사 저술과 논평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발췌한 이 장은 제이미 스턴-와이너(Jamie Stern-Weiner)와 공동 집필한 것이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장 최근에 편집한 책은 《대홍수: 위기에서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가자와 이스라엘》(Deluge: Gaza and Israel from Crisis to Cataclysm)(OR Books, 2024)이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하자면, 이 글의 미주는 너무 방대해서 이메일 뉴스레터 형식으로는 담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전체 미주 목록은 <노동당을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웹사이트에서 확인해주기 바란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지구 통제 정책은 회유와 억압을 동시에 활용했다. 종속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이스라엘을 대신해 주요 팔레스타인 인구 밀집 지역을 순찰하고 행정적으로 관리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PA의 경제적 의존은 정치적 복종을 유도했고, 더 넓은 대중의 순응은 외국 원조를 통해 얻어졌다. 그 원조는 부풀려진 공무원 조직과 권위주의적인 치안 기관에 분배되었으며,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이스라엘의 노동 허가와 결합하였ㄹ다.
가자 지구에서는 억압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1948년 강제 축출로부터 비롯된 빈곤한 난민들과 그 자손들이 밀집한 이 지역을 오래전부터 저항의 온상으로 간주했다. 이스라엘 군사 통치에 대한 대규모 민중 봉기가 1987년 12월 가자에서 시작되어 팔레스타인 점령지 전역으로 확산하였고(제1차 인티파다), 이스라엘은 봉기를 진압한 뒤 가자에 대한 억제를 강화했다. 2004년,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NSC) 의장은 가자를 “거대한 강제 수용소”라고 묘사할 수 있었다. 2006년 1월, 이슬람 저항 운동 하마스(Hamas)는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열린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은 이미 “현대 역사상 최악의 경제 불황”을 겪고 있던 점령 하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아마도 현대 역사상 가장 엄격한 형태의 국제 제재”를 가했다. 이듬해 하마스가 가자 지구의 통제권을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이를 계기로 봉쇄 체제를 더욱 강화했고, 이 체제는 이후 강도에 차이를 두며 지속적으로 시행되어 왔다.(p.119)
이 봉쇄는 가자의 경제를 붕괴시키고 주민들을 극빈 상태로 몰아넣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다이어트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만, 굶겨 죽게 하지는 않는 것”이라고 이스라엘 고위 관리는 설명했다. 가자 접경 지역에 배치된 이스라엘 장교는 자신의 임무를 이렇게 요약했다. “개발도 없고, 번영도 없고, 오직 인도주의적 의존만 있다.” 실업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인구의 80%는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야 했으며, 75%는 식량 원조에 기대어 살았고, 절반 이상은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했으며, 지하수의 96% 이상은 인간이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 국장은 2008년에 “가자는 국제 사회가 알면서, 묵인하면서, 어떤 이들은 조장했다고까지 말하는 방식으로 고의적인 극빈 상태로 전락하는 첫 번째 영토가 되려는 문턱에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2015년에 이로 인한 인도주의 위기의 누적 효과로 인해 가자가 5년 안에 “생존 불가능”한 지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군사 정보 기관도 동의했으며, 그 뒤를 이은 유엔 분석은 이 예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판단했다. 2018년까지 이스라엘은 가자를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이 “독성 슬럼”이라 부른 상태로 만들어버렸고, 그 안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 그 절반은 어린이였다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감금되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는 2021년 5월에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자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이다.”
가자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미래를 자신들의 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몇 년에 한 번씩 이들을 폭력으로 징벌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를 “잔디 깎기”라고 불렀다. 이 중 일부 군사 작전은 가자에서 비롯된 저항에 대한 대응이었다. 예컨대 2021년 5월, 예루살렘 동부 점령지에서의 정착민 침입에 대응해 하마스가 이스라엘로 로켓을 발사한 경우처럼 무장 저항이 있었고, 2018년 초처럼 가자 주변 철책선을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적으로 시위했으나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이스라엘 저격수에게 부상당한 경우처럼 비무장 저항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감행한 가장 파괴적인 공격(2008년과 2014년의 공격)은 더 큰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아랍 세계에 공포를 심어주고, 이스라엘의 외교적 반대 태도 — 즉, 평화와 맞바꿔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태도 — 를 위협하는 하마스의 “평화 공세”를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2014년 공격, ‘보호 가장자리 작전’에서만도 가자에서 민간인 약 1,600명이 사망했고, 그 중 550명은 어린이였으며, 주택 18,000채가 파괴되었다.
2023년 10월까지 이스라엘은 자국 인권 단체 ‘베첼렘’(B’Tselem)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유대인의 우월 정권”이라 묘사한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다. 1년 전 구성된 37대 이스라엘 정부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끌었고, 연정 지침에는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전역 — 점령 팔레스타인 지역(OPT)을 포함한 — 에 대해 배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명시되었으며, 이 땅 전체에 대한 유대인 “정착” 추진을 약속했다. 서안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이 공식적으로든 사실상으로든 병합되었고, 유대인 정착촌은 유례없는 속도로 확장되었으며, 가자의 주민들은 감옥 철책 뒤에서 숨 막히는 정체 상태에 갇혔고, 서안 지구의 동포들은 의존적인 소규모 구역으로 쪼개져 몰려들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과 국제 외교 의제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네타냐후는 2023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2020년과 2021년에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 4개 아랍 국가와 체결한 양자 협정을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평가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역사적인” 조약을 예고했고, 이스라엘-아랍 관계 정상화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소위 전문가들”을 조롱했다.
현장에서는 이스라엘 관리들도 “가자의 인도주의적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는 정책적으로 의도된 결과였다. 이들은 “만약 그것이 폭발한다면, 방향은 이스라엘 쪽이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 작전과 가자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유지할 수준의 지원 제공 사이를 오가는” 전략을 통해 팔레스타인인의 봉기를 견딜 수 있는 한계 내에 가둬둘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듯하다.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2018년에 이렇게 인정했다. “하마스는 때때로 들고 일어나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피해를 입힐 수는 없다.” 가자의 사람들은 그 철창 속에서 곪아가도록 내버려질 수 있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타협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자랑했고, “아랍 세계의 단 2%”에 불과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과정에 대해 “거부권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존재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 가자: 위기와 기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무장 세력이 가자 지구의 경계를 돌파해 여러 이스라엘 군사 기지를 압도하고 남부 이스라엘 전역을 휩쓴 사건은, 네타냐후의 자신감이 방심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마스에 소속되지 않은 가자 주민들도 이에 가세했다. 이 작전은 그 대담성에서 충격을 주었고, 이어진 학살은 그 잔혹성에서 충격을 주었다. AFP(프랑스 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사망했고, 대부분 민간인이었으며, 250명이 인질로 붙잡혔다. 이 수치가 정확하다면,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단 하루 만에, 피비린내 나는 자살 폭탄 공격을 포함한 제2차 인티파다 5년간보다 더 많은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셈이다. 이러한 충격은 하마스가 드러낸 이스라엘의 군사 및 정보 취약성으로 인해 더욱 가중되었다. 열악한 자원만 가진 민병대가, 포위되고 철저히 감시되는 게토 안에서, 이스라엘의 첨단 경계선을 넘어서 IDF 가자 사단을 제압하고, 어떠한 통합된 군사 대응 없이 몇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활개를 쳤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의 전직 고위 관리는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는 하마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 단 몇 초 만에 모든 게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 독립 전쟁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 영토가 전투 중 점령된 사건이었고, 전체적으로는 이스라엘 건국 75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다.(p.132)
하마스의 작전과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가자를 울부짖는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이 공격은 ‘철검 작전’(Operation Swords of Iron)이라 명명되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7월 사이, 이스라엘군은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했고, 이들 대부분은 여성, 어린이, 노인이었다. 보도된 사망자 수는 전 세계 모든 분쟁 지역에서 3년간 사망한 어린이 수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가자의 병원들은 ‘WCNSF’라는 약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가족 생존자가 없는 부상 아동(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이라는 뜻이었다. 전체 인구의 90%, 즉 약 190만 명(이 중 약 80만 명은 어린이)이 국내에서 강제 이주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여러 차례, 많게는 열 번 이상 거처를 옮겨야 했다. 유엔 사무총장 구테흐스는 가자 주민들이 “인간 핀볼처럼” 다뤄지고 있다고 개탄하며, “점점 더 작아지는 남부의 땅 조각 사이를 튕기며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요소 하나 없이 떠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유엔 직원, 의료진, 언론인을 사살한 기록에서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고, 가자 전역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불발탄을 남겼으며, 전 유엔 인권담당 사무차장 앤드루 길모어는 이스라엘이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 이후 가장 높은 살해율”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유니세프는 가자를 “지구상에서 아이로 살아가기 가장 위험한 곳”이라 불렀고, 국제 위기 그룹은 “구호 활동가에게 가장 위험한 곳”, 국제구호위원회는 “민간인에게 가장 위험한 곳”, ACLED는 단호하게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지칭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2008년 공격은 국제앰네스티가 “22일간의 죽음과 파괴”라 묘사한 것이었으며, 이는 “민간인을 벌주고, 굴욕 주고, 공포에 떨게 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의도적으로 불균형적인 공격”이었다. 5년 뒤, 이스라엘 병사들은 가자에서 “전혀 다른 수준의 파괴”를 가했음을 자백했고, “이동하는 모든 것,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까지”에 대해 “광적인 화력을 퍼부었다”고 밝혔다. 2018년에는 IDF 저격수들이 가자 외곽 철책선에서 벌어진 거의 전적으로 비무장 상태의 시위에 대해 어린이, 언론인, 의료진, 장애인들을 고의적으로 실탄으로 조준 사격했다. 실제로, 2023년 10월 이전부터 ‘철검 작전’을 주도한 모든 정치·군사 지도자들 — 총리 네타냐후,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 IDF 참모총장 헤르치 할레비, 전시 비상 내각 구성원 베니 간츠 및 핵심 보좌관들 — 은 민간인을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이스라엘 군사 교리의 원칙임을 공식적으로 지지해온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이후 파괴의 규모는 질적으로 격상되었다. 하루 평균 폭격 목표 수는 2014년의 100120개에서 2023년 10월에는 430개로 증가했고, 하루 손상된 건물 수는 2014년의 305개에서 2023년 10월2024년 1월에는 743개로 증가했으며, 2014년의 잔해 총량 250만 톤에 비해 2024년 5월 기준 3,900만 톤을 넘기며, 이는 2008년 이후 모든 가자 전쟁이 만들어낸 잔해의 13배에 달했다. 미국 군사 역사학자 로버트 페이프(Robert Pape)는 2024년 1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세는 “역사상 가장 격렬한 민간인 처벌 작전 중 하나”라고 결론지었다.(p.149)
이러한 폭력의 급격한 증가는 이스라엘 정책의 질적 변화를 반영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가자를 서안, 이스라엘, 이집트, 세계와 단절된 빈곤 지역으로 봉쇄해 하마스를 가둬두려 했다. 하지만 10월 7일의 공격은 이러한 ‘갈등 관리’ 접근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기회도 함께 열렸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국제 여론이라는 정치적 한계 안에서 무력 사용의 수위를 조율할 필요성을 인식해왔다. 2008년, 이스라엘은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에 몰두한 11월 4일, 하마스와의 휴전을 파기했다. 전반적으로, 2018년 한 연구는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 시점을 미국 뉴스 방송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점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네타냐후 자신도 이러한 역학에 민감했다.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전투에 돌입하면 국제적 압력을 받는다”며 “텔레비전 시대에는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몇 주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989년 톈안먼 광장 학살 이후, 당시 외무차관이었던 네타냐후는 국제 언론의 시선이 다른 데 쏠려 있을 때, 이스라엘이 “대규모 팔레스타인 추방”을 실행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2014년 여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당시, 그는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되며 국제 관심이 전환된 틈을 타 지상 침공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p.154)
하마스 공격 이후 미국, 영국, 유럽연합이 이스라엘에 보낸 무조건적 지지는 외부 제약이 해제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이스라엘 전략가들에게 가자의 “전략 현실”을 재편하고 “중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녹색 신호로 해석되었다. 전 국가안보보좌관 메이르 벤 샤밧(Meir Ben Shabbat)은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이 이스라엘에게 비상조치를 취할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한 영향력 있는 군사 싱크탱크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강력한 국제적 정당성과 공세적 행동의 자유”가 “높은 수준의 공격성을 가능케 한다”고 권고했다. 익명의 정치 소식통은 베테랑 기자 벤 카스핏(Ben Caspit)에게 이스라엘은 “이 기회를 이용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둘기파로 간주되는 전 국회의원 오페르 셸라흐(Ofer Shelah)조차도 “어떤 형태의 행동에도 전례 없는 국제적 정당성이 주어진 지금, 전례 없는 수준의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가자를 골칫거리로 여겨왔고 —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가자가 “바다에 가라앉았으면” 하고 바란 바 있다 — 10월 7일 이후에는 이를 영구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보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전략은 ‘잔디를 깎는’ 접근에서 ‘염분을 뿌려 땅을 망치는’ 접근으로, 가자 문제를 영구히 미루는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종결짓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국방장관 갈란트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50년간 가자 지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전면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존재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p.161)
추방으로부터, 파괴에 이르기까지
2008년 이래, 가자에서의 거의 모든 무력 충돌은 이스라엘이 먼저 촉발했다. 이에 반해, 2023년의 적대 행위는 2021년 5월의 이른바 ‘통합 인티파다(Unity Intifada)’처럼 하마스가 먼저 시작했고, 전반적인 평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의 대응은 이례적인 수준의 의견 불일치와 즉흥성으로 특징지어졌다. 하지만 곧 엘리트 여론의 광범위한 분포는 두 가지 기본 선택지에 수렴했다. 더 극단적인 쪽에는 ‘전멸’ 요구가 있었다. 이후 이스라엘을 대변한 한 영국 법률가는 이스라엘 당국자들의 피에 굶주린 발언들을 몇 개의 “우연히 나온 인용”에 불과한 “수사적 표현”이라며 평가절하하려 했다. 그러나 야니브 코간(Yaniv Cogan) 같은 연구자들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가자를 파괴하라는 요구는 이스라엘 정치 스펙트럼 전반과 시민사회 전반에 울려 퍼졌다. 집권 연정 소속 의원들은 “가자 전체 주민들과 함께 가자를 짓뭉개야 한다”, “자비 없이 가자를 평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들은 “가자의 민간인”이 “세상을 떠나야 하며”, IDF가 “그곳 모두에게 동일한 형벌 — 사형 — 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위 정치인들은 “가자에는 죄 없는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고, “저기는 하나의 전체 국가이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의회 부의장은 “가자를 태워라. 지금. 그것보다 적은 것은 안 된다”고 단언했고, 집권 리쿠드당(Likud)의 전 공공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한 가지에 쏟으라. 가자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해외로 도망치지 않은 ‘가자의 괴물’들은 반드시 ‘복수심에 불타고 잔혹한 IDF’의 손에 ‘끔찍하게 죽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보다 적은 것은 비도덕적이다.” 야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가자에는 죄 없는 자가 없다”, “가자 아이들은 이 일을 자초했다”고 말했다.(p.167)
한편 이스라엘 언론은 가자를 “지워버려야 한다”, “도살장으로 바꿔야 한다”, “주민 전원을 예외 없이 박멸해야 한다”는 요구로 가득 찼다. 유명 TV 진행자는 “가자 지구에는 이미 1948년 원 나크바(Nakba)보다 더 많은 난민과 사망자가 생겼다”며 “이 중요한 과정은 절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중 한 곳의 기자는 “가자의 모든 아기는 자라서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지워라, 죽여라, 파괴하라, 전멸시켜라”고 썼다. 한 TV 토론자는 가자에서의 ‘승리’를 “전멸 + 추방 + 점령 + 지역 유대화 + 병합”이라고 정의했다. 수상 경력 있는 뉴스 앵커는 시청자에게 “가자는 지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 리쿠드당 의원 모셰 페이글린(Moshe Feiglin)은 전국 방송 인터뷰에서 격분해 “가자의 돌 위에 돌도 남기지 마라. 완전 소각이다. 더는 희망도 없다. 지금 가자를 전멸시켜라!”라고 외쳤다. 물론, 가자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도 있었다. 예루살렘 부시장은 정치 지도자들이 정말로 신경 썼다면, “가자에선 이미 15만 명이 죽었어야 하며, 단 한 채의 건물도 남아 있지 않아야 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지자체장은 가자가 “결국 아우슈비츠처럼 되어야 한다”고까지 망상했다.(p.171)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에서 발표된 대중가요 가사에는 “좋은 아침, 가자.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죽은 나치… 생존자는 없다”, “우리는 가자에 들어갔고, 다 없애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는다… 빵도 없고 물도 없고, 아, 집도 없다”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다. “가자를 주차장으로 만들자”는 노래는 학교 어린이들 앞에서 공연되었고, “1년 안에 모두 전멸시키겠다”는 노래는 어린이들이 부르는 모습이 이스라엘 국영방송 SNS 영상으로 유포되었다.(p.172) IDF 작전국은 “72명의 처녀들 – 무삭제판”이라는 제목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운영했으며, 여기에는 히브리어로 된 수백 개의 게시물이 포함되었다. 여기엔 팔레스타인 포로와 시신 사진에 “바퀴벌레 박멸 중”이라는 캡션이 붙었고, 기관총 탄환을 돼지기름에 담그는 이스라엘 군인의 영상에는 “네 처녀는 못 얻을 거다”라는 자막이 달렸으며, 이스라엘 차량이 팔레스타인 전투원의 시신을 반복적으로 밟는 영상에는 “깔아뭉개라”는 문구가 붙었다. (p.173) 리쿠드당 의원 모셰 사아다는 이스라엘 대중 여론의 변화에 주목하며, “이제 좌파 키부츠 주민조차도 저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가자의 초토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p.174) 이스라엘은 소규모 국가이고, 병역 의무제 사회이며, 군이 시민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 군인들이 약탈 장면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SNS에 생중계했기 때문이다.(p.175) 그럼에도 이스라엘 유대인 응답자의 90%는 이스라엘의 작전이 “적절했다”거나 “더 나아갔어야 했다”고 답했다.(p.176) 이러한 “집단학살 열광” 속에서,(p.177) 네타냐후 총리는 반복적으로 성경의 구절 “아말렉을 기억하라”는 명령을 인용했다.(p.178) 이는 이스라엘의 적을 “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며, 아끼지 말고, 남자와 여자, 아기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까지 모두 죽이라”는 신의 명령을 가리킨다. (p.179)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은 이것이 “이스라엘 교육 과정을 거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이며, 그 의미는 곧 “가자를 지워버리라”는 명령이라고 설명했다. (p.180) 네타냐후의 동료들도 그의 선례를 따랐고, 가자 민간인에 대한 “어떠한 인도적 제스처”에도 반대하며,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전면적 전멸”을 요구했고, 가자에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p.181) 2024년 7월,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이 ICJ로부터 비인간화 발언에 대해 제재를 받은 이후에도, 국방장관 갈란트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것을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룬 성과로 자찬했다. (p.182) IDF 병사들은 분명 그 메시지를 분명히 받았다. 한 부대는 “우리는 우리의 좌우명을 안다. 비관련 민간인은 없다”, “아말렉의 씨를 말리자”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촬영했고, 또 다른 병사는 “수만 명의 아말렉인들을 죽인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는 영상을 남겼다.(p.183)
이러한 전멸의 합창과 함께, 많은 당국자들은 가자 주민 전체의 추방을 요구했다. 가자 인구를 줄이려는 시도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바였다. 1967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점령한 직후, 에쉬콜 정부는 대규모 난민들을 요르단, 이집트, 걸프 지역, 라틴아메리카로 이전시키려 했다. 당국자들은 실업과 빈곤을 유지한 뒤, 주민들에게 떠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경제적 유인책에 의존했다. 왜냐하면 직접적 강제 추방은 미국의 지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요르단의 반대와 가자 내부에서 일어난 대중 저항으로 좌절되었다.(p.184) 보다 일반적으로, 이 장의 앞부분에서 설명했듯이, 시온주의 기관들은 유대인 정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구 이동을 사용해왔다. 이 과정은 대개 점진적이며 단속적으로 진행되었고,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경제적 회유와 군사적 억압의 조합으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저항이 허용 가능한 한계를 넘을 때마다 — 예컨대 제2차 인티파다처럼 — 팔레스타인인 집단 추방에 대한 논의는 이스라엘의 공적 담론과 정치 담론 속에서 다시 부상했다. 이러한 패턴은 10월 7일 이후 다시 분명해졌다. 1938년 벤구리온이 전쟁의 혼란을 틈타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인구를 제거하겠다는 전망을 가졌듯이, 2023년 네타냐후 정부도 하마스 공격에 대한 전 세계적 분노를 가자 주민 추방에 활용하려 했다.
이스라엘 정치 및 군사 최고위층에서 민족 청소 요구가 쏟아졌다. 각료들은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떠나도록 권유하자”(예루살렘 유산부 장관 아미하이 엘리야후), “가자 아랍인들이 세계 각국으로 자발적으로 이주하도록 하자”(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가자 주민들을 가자 지구 외부로 자발적으로 재정착시키자”(정보장관 길라 감리엘), “가자 주민을 이주시켜야 한다”(내무장관 이타마르 벤 그비르)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 자신도 “가자 주민들이여, 지금 떠나라”고 명령했고, 측근에게 가자 인구를 “가능한 최소치”로 줄이는 계획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으며, 가자 난민을 수용할 국가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집권 연정 소속 의원들은 가자 주민을 전 세계로 흩어버리거나 시나이 사막에 “난민 도시”를 세워 그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또 다른 나크바”를 요구했다. 한 리쿠드당 고위 인사는 “이주는 떠나고자 하는 가자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교묘히 단서를 붙였고, 그의 의원 동료는 “남는 자는 그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반대하는 “감성주의자들”을 향해, 또 다른 연정 의원은 추방이 “유서 깊은 시온주의 전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도망쳤는가? 돌아오지 마라. 텔아비브에서도 그랬고, 이스라엘의 많은 다른 곳에서도 그랬다.” 이쯤 되면 1948년의 강제 추방을 부인하던 시절이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다. 2023년 10월 13일, 이스라엘 정보부는 미국의 지지를 받아 가자 민간인을 이집트로 대피시키자는 내용의 공식 문서를 작성했다. 한 EU 외교관은 “대규모 민족 청소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이 북부 가자 전역의 주민들을 이집트 국경 쪽으로 몰아넣는 가운데,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이집트가 가자 난민을 수용하는 대가로 세계은행 채무 탕감을 받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아랍 국가들에게 시나이로의 “인도주의 통로” 설치를 요청하려 했다. 그러나 이집트 당국은 협력하지 않았고, 2024년 7월 현재까지도 팔레스타인인의 탈출을 막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주된 명분 중 하나는, 특히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포함한 역내 적들에 맞서 이스라엘의 “억지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자는 종종 이스라엘이 시범적으로 때리는 샌드백 역할을 해왔다. 1955년 8월, 모셰 다얀 IDF 참모총장은 가자 및 접경지에서의 “소규모” 보복 작전조차도 “이스라엘의 힘에 대한 아랍의 평가 — 그리고 이스라엘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 — 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보다 최근인 2008–2009년 가자 공격에서 당시 외무장관 치피 리브니는 이스라엘이 “난폭하게 나갔다”고 자랑했다. 당시 이스라엘 안보 고위 관리는 이로써 이스라엘이 “하마스, 이란, 그리고 중동 전체에, 우리도 그들만큼 미친 짓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10월 7일의 참사가 벌어진 뒤, 이스라엘 당국은 IDF의 군사력 그 자체보다는 민간인에 대한 광기 어린 잔혹성으로 지역에 다시 공포를 주려 했다. 한 유력 전략가는 “헤즈볼라는 가자 시의 파괴뿐 아니라 인도적 재앙과 완전한 행정 혼란을 봐야만 억제된다”고 주장했다. 한 IDF 장교는 “우리는 민간 인프라를 제거할 것”이라 다짐했고, “헤즈볼라는 우리가 결정적 타격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야만 위축된다”고 말했다. 한 중대장은 가자 전체가 “이스라엘이 초토화시킨 베이트 하눈처럼 보여야 한다”며 “그래야 주변 모든 나라가 두려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p.193)
보다 노골적인 동기는 복수였다. 10월 7일,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이 어두운 날을 강력하게 복수할 것”이라 선언했고, 키시니에프 대학살에 대해 하임 비알릭이 쓴 시를 인용했다. “어린아이의 피에 대한 복수는 아직 사탄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의 바로 앞 구절을 생략했다. “복수하라 말하는 자는 저주받으리라.” 네타냐후의 아내 사라는 “매우 큰 복수”에 대한 “희망”을 표명했고, IDF 제162기갑사단의 한 장교는 복수를 “중요한 가치”라며 칭송했다. 또 다른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주지. 우리 모두 복수하러 나선 거다.” 이미 10월 10일, 베첼렘은 “복수의 범죄 정책이 진행 중”이라고 경고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Shin Bet)의 전 수장이었던 카르미 길론은 이스라엘이 “복수의 전쟁을 시작했으며”, 그것이 전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자에서 작전 중인 병사들은 재산 파괴, 약탈, 무차별 살해 등 모든 행위를 이러한 복수의 논리로 정당화했다. 제3의 명분은 처음엔 주류가 아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부각되었다. 그것은 2005년 단독 철수로 철거된 가자 내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하겠다는 열망이었다. 네타냐후 자신은 그 가능성을 일축했으나, 내각의 3분의 1은 이를 지지했고, IDF 내부의 소수 강경파 병사들도 이 비전에 영감을 받은 듯했다.(p.197)
이스라엘의 결정권자들이 전멸이든 추방이든 선택했는지, 억지든 복수든 정착이든 그 명분이 무엇이든, 정책의 요지와 실질적 결론은 동일했다. 가자를 영구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IDF 대변인은 이를 “가자 지구 전체를 주민 위에 무너뜨리는 학살”이라 표현했고, 한 이스라엘 국방 관계자는 가자를 “천막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농업부 장관 아비 딕터는 “우리는 지금 가자 나크바를 실행 중이다. 가자 나크바 2023. 그게 결말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방장관 갈란트는 하마스의 지도자가 “실수했다”고 말하며 가자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선언했다. 다수의 이스라엘 총리들에게 안보 조언을 해온 전직 민행청장 겸 대테러 자문은 “하마스가 인질을 돌려준다 해도, 가자는 잔해 더미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행청의 현직 부국장은 “남는 건 없다”고 요약했다. “누군가 나중에 여기에 돌아온다 해도, 이곳엔 불에 탄 땅뿐이다. 집도 없고, 농업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겐 미래가 없다.” 예비역 소장 기오라 아일란드 —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 전 의장, 전 IDF 작전국장, 갈란트 국방장관의 고문 — 은 실질적 정책을 가장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일련의 글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 인구”를 망명하게 만들면서 가자를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극적이고 지속적이며 엄격한 봉쇄”를 가하고, 핵심 보건·수자원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가자를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인구는 단 두 가지 선택만 갖게 될 것이다. “머물러 굶주리거나, 떠나거나.”(p.199)
가자의 종말
이스라엘 인권 단체 베첼렘은 기오라 아일란드(Giora Eiland)의 제안이 “가자에서 추진된 전략”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인구 200만 명 — 그 절반이 어린이인 — 을 좁고 밀집된 가자 지구에 가둬놓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격 작전 중 하나”를 감행했다. 첫 주에만, 이스라엘은 가자에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연평균 투하한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다.(p.201) 2024년 6월까지, 이스라엘은 7만 톤이 넘는 폭발물을 가자에 쏟아부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런던, 드레스덴, 함부르크에 투하된 폭탄의 총량을 뛰어넘는 수치였다.(p.202) 모든 인구 밀집 지역이 산산이 부서졌다. 북부 가자는 광대한 영토가 사라지며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달 표면”처럼 되었다. <르 몽드> 특파원은 11월에 이렇게 보도했다. (p.203) “베이트 하눈은 단지 죽은 것이 아니다. 베이트 하눈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당국에 따르면, 자발리야 난민캠프의 약 70%가 파괴되었다. 가장 인구가 밀집된 가자 시는 주요 인프라가 “유린”되고 “전체 구역”이 “완전히 평탄화”되면서 “기아와 혼돈이 배회하는 황무지”로 변했다.(p.205) 고급 주거지역 리말 지구는 거의 “잔해 더미로 변했고”,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슈자이야는 “거의 모든 건물이” “블록마다” “무너졌다”. 공격이 시작된 지 9개월이 지나서도 이스라엘은 이미 “건물의 85%가 파괴된 재난 구역”으로 변한 가자 시의 이웃 지역들을 계속 폭격했다.(p.206)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칸 유니스는 “평탄화되었고”,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폐허가 되었다”. 가자 주재 유엔 관계자는 “인프라 피해가 미쳤다”며, “칸 유니스에는 손상되지 않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p.207) 2024년 5월, “가자의 마지막 피난처”는 이스라엘의 다음 목표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적 분노를 무릅쓰고 라파를 공격했다. 남부 접경 도시 라파는 “산산조각 났고”,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빈 껍데기”요, “짓밟힌 황무지”로 변했다.(p.208)
2024년 중반까지, 가자에 있는 모든 구조물의 40~60%가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여기에는 주택의 60% 이상, 학교 건물의 85%, 보건 시설의 80%, 상업 시설의 80%, 문화유산의 60%, 농지의 60%, 모든 대학교가 포함된다. 가자의 도로, 전기 배전망, 수도 인프라의 약 60%가 파괴 또는 손상되었으며, 폐수 처리 및 관리 시설의 3분의 2도 포함되었다.(p.210) 가자 시에서는 전체 건물의 75%, 우물의 90%, 염수·해수 담수화 시설 전부가 파괴 또는 손상되었다. 가자 지구에 동행한 한 우파 이스라엘 평론가는 “가자는 없다.(p.211) 모든 것이 잿더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보도했다. 가자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 군인들도 파괴된 풍경에 만족을 표했다. “가자는 완전히 폐허야. 기막힌 광경이지”, “슈자이야는 영원히 폐허로 남아야 해”, “슈자이야, 편히 쉬어라… 집 30채 날아갔다… 얼마나 아름다워.” 자발리야에 배치된 한 지휘관은 “불타는 가자를 보며 무슨 느낌이 드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마침내 하마스를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답했다. “여기 있는 사람 전부가 적이다!”(p.212) IDF 작전국에서 복무한 한 장교는 “발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경우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며, “학교처럼 민감한 대상일 경우에도 승인 절차는 형식적인 느낌일 뿐이었다”고 증언했다.(p.213) 10월 7일 이후 가자에서 복무한 집권 여당 소속 인사는 “우리는 집에 불을 질렀다.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우리는 자랑스럽다”고 인정했다.(p.214)
현대전 역사상 최초일 수도 있는 일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의 보건 인프라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며 병원을 체계적으로 공격했다.(p.215) CNN은 2023년 말 북부 가자에서 22개 병원 중 최소 20곳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고 보도했고, 그 중 14곳은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다. (p.216) 가자에서 자원 활동 중 돌아온 외국인 의사들은 이스라엘이 의료진, 의료 차량, 의료 시설을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았다”고 전했다.(p.216) 가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격은 끊임없는 “대규모 사상 사건”을 초래했고,(p.217) 이들 중 일부는 부상자와 사망자 수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무기에 의해 발생했다.(p.218) 동시에 이스라엘은 연료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차단했고,(P.219) 그 결과 의사들은 마취제, 진통제, 장갑, 소독제, 심지어 깨끗한 물도 없이 뇌수술, 절단수술, 제왕절개를 수행해야 했다.(p.220) 베이트 라히야의 한 의사는 “우리는 파리 덮인 상처를 안고 수술을 진행한다. 병원 전체가 피와 벌레로 가득 차 있다”고 증언했다.(p.221) 2024년 1월까지, 1,000명 이상의 아동이 다리 한쪽 또는 양쪽을 절단당했고, 다수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다. (p.222) 이미 10월에, 기오라 아일란드는 이스라엘의 연료 차단으로 가자의 병원에서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 경고했고, 이스라엘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예고는 현실이 되었고, 알시파 병원에서는 미숙아들이 실제로 사망했다. (p.223) 그러나 이는 한 리쿠드당 의원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병원의 정형외과 병동에서 병사들이 “150명의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고 있는 동안, “산부인과 병동에서는 300명의 테러리스트가 태어났다”고 탄식했다.(p.224) “유엔 인권 책임자, 가자 병원 내 집단 매장 보고에 ‘충격’”(BBC), “가자 최대 병원, ‘죽음의 구역’… 출입문 앞에 집단 매장지”(Sky News), “가자의 최고위 의사, 이스라엘 억류 중 사망… 관계자들은 설명 거부”(하아레츠) 같은 기사 제목이 일상이 되었고, 2024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의 대형 병원 36곳 중 단 10곳만이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p.225) 7월, 국경없는의사회(MSF)는 “IDF가 병원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해체한 뒤에는, 의료 시스템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보고했다. (p.226) 총탄, 불도저,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치명적인 봉쇄 조치가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작전 시작 당시 국방장관 갈란트는 “가자에 대한 완전한 봉쇄”를 선언하며 말했다. “전기 없다. 음식 없다. 물 없다. 연료 없다. 우리는 인간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p.227)가자 점령지 조정국(COGAT)은 이를 반복하며 “전기 없음, 물 없음, 오직 파괴뿐”이라 말했고, “하마스는 ISIS가 되었고 가자 시민들은 축제를 벌이고 있다… 인간 야수는 그에 맞는 방식으로 다뤄진다”고 했다.(p.228) 이스라엘은 10월 21일까지 모든 구호물자 및 상업 교역을 가자에 차단했고, 이후에도 “대폭 줄였다.” 들어온 물자의 분배는, 그것을 기다리던 민간인들에 대한 반복적 폭격과, 이스라엘이 만든 지옥 같은 환경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다.(p.229) 이 같은 제한 조치는 수십 년간 이스라엘의 경제적 질식 통제로 인해 수입과 외부 지원에 의존하던 인구에게 “파괴적”이었다.(p.230) 1인당 하루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은 94% 감소해, 국제 기준상 긴급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p.231) 2024년 4월까지, 국제 기관들은 북부 가자에서 기근이 “임박했으며”, 전체 인구가 “심각한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으며, 이는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보고했다. (p.232) 다음 달,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른 제한 완화로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으나,(p.233) “기근 고위험” 상태는 계속되었다. (p.234) 이와 동시에, 인도적 지원을 차단하고, 하수도·수자원·의료 인프라를 해체하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과밀 지역”에 몰아넣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질병 확산에 “완벽한 환경”을 조성했다.(p.235) 기오라 아일란드는 이미 11월에 이 시나리오를 예상하며 “남부 가자에서의 심각한 전염병이 우리의 승리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고, 재무장관 스모트리치는 이 발언을 유포하며 “한 마디 한 마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p.236) 2024년 6월 말까지, 급성 호흡기 감염 약 100만 건, 설사병 약 50만 건이 보고되었다. 다음 달에는 사망률 높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다수 하수 샘플에서 검출되었다.(p.237) 유엔 전문가들은 반복적으로, 질병 확산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배수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p.238)
범죄 중의 범죄
이스라엘의 공세가 시작된 첫 몇 주 동안, 유엔 인권 관계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은 집단학살(genocide)이 진행 중임을 경고했다.(p.239) 이 우려는 2023년 12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고발하는 역사적 소송을 제기하면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p.240) 이듬달, 정치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국제적 정당성에 치명적인 결정이 내려졌고, 재판소는 15대 2의 판결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집단학살 혐의가 “개연성(plausibility)이 있다”고 판시했다.(p.241)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48년 집단학살협약(Genocide Convention)에 근거해 소를 제기했다. 이 협약은 집단학살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민족적, 인종적, 인종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저질러진 다음의 행위들 중 하나 이상: (a) 그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b)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중대한 해를 가하는 것, (c) 해당 집단에 전부 또는 일부의 물리적 파괴를 초래하도록 계산된 생활 조건을 고의적으로 부과하는 것, (d) 집단 내 출산을 방해할 의도의 조치를 부과하는 것, (e) 해당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 이 협약의 정의는 여러 면에서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희생 집단의 범주가 자의적으로 협소하며, 문화적·사회적 파괴는 빠진 채 “물리적” 파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협약 제정자들이 인구 이동 행위를 단순히 기회주의적 이유로 제외시켰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p.242) 더욱이, ICJ 판례는 “특정 행위 패턴으로부터 집단학살 의도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해당 행위들로부터 합리적으로 도출 가능한 유일한 결론이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p.243) 전쟁 중 집단학살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군사적 목표라는 대체 설명이 언제든지 제시될 수 있으므로, 이는 극히 높은 입증 기준이다.
법률적 맥락을 넘어,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 개념을 보다 직관적으로 정의한다. 이 사전에 따르면, 집단학살은 “특정 민족, 국적 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식별된 사람들에 대해 그 집단을 일부 또는 전부 파괴할 의도를 갖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해하거나 박해하는 것”이다.(p.244) 이스라엘은 75년 이상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고향 안에 점진적으로 가둬두거나, 가능할 경우 그곳에서 이주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잔혹 행위가 만들어낸 정치적 기회를 활용해 가자 주민들을 추방하려 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가자를 영구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목표 아래, 전례 없는 화력을 퍼부었다. 이스라엘은 가자 내 인류 문명의 전제 조건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절망한 주민들을 남부 국경 인근의 거주 불능 캠프로 몰아넣음으로써 대규모 탈출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집트가 국경을 열지 않자, 이스라엘은 노선을 바꾸지 않았고 공세를 계속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주민 대다수가 도망칠 수 없는 땅을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기 위해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를 무차별적이고 압도적인 화력으로 계속해서 공격했다. 이 정책을 “특정 집단을 일부 또는 전부 파괴할 의도를 가진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살해 혹은 박해”로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정의를 고려했을 때, 이스라엘의 가자 내 행위를 조사한 국제독립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주의 깊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위원회는 이스라엘이 가자의 “민간인 인구, 어린이, 지정된 안전 구역 내 피난자들”을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으며, 인구 밀집 지역 전역에서 “민간 대상물의 거의 전면적인 파괴를 고의로 야기”했고, 북부 가자 주민을 남부로 “영구 추방 목적의 강제 이주”시켰으며, “민간 생존에 필수적인 수도 및 전력 인프라와 기타 핵심 기반 시설 대부분을 파괴”했으며, “식량, 물, 쉼터, 의료 접근을 차단하고 구호 물자 수송을 고의적으로 방해함으로써 민간인 굶주림을 전쟁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희생자들은 거의 모두 민간인이었고”, 이 공격은 “민간인 전체를 겨냥한 것이었으며”, 가자 민간 인구 일부에 대해 “인도에 반하는 범죄인 집단살해”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p.245) 2024년 7월까지 10만 명 이상, 어쩌면 그 세 배에 달하는 가자 주민이 이집트로 탈출했다.(p.246) 질병은 확산 중이었다.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실린 서신은 지금까지의 직접적·간접적 사망자가 최대 18만 6천 명, 즉 가자 전체 인구의 8%에 이를 수 있다고 보수적으로 추정했다.(p.247) “광범위한 파괴”로 인해, 북부 가자 및 칸 유니스에서 추방된 주민 대다수는 “예측 가능한 미래 안에 귀환할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되었다.(p.248) 유엔 기관들은 단지 잔해를 치우는 데만도 15년이 걸릴 것이라 추정했다.(p.249) 한 유엔 고위 구호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가자는 이제 단순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p.250)
“집단학살의 문제는 식민 정착주의 논의에서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역사학자 패트릭 울프(Patrick Wolfe)는 말했다.(p.251)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땅에 외부인이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그 토착 인구의 축출을 전제한다. 추방이 실패하면, 제거(elimination)는 같은 목적지에 이르는 또 다른 경로가 된다. 법학자 윌리엄 샤버스(William Schabas)는 “집단학살은 좌절한 민족 청소자의 최후 수단”이라고 썼다.(p.252) 이 장의 앞부분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존재 자체에 대해 헌법적으로 적대적이며, 이 존재를 줄이고, 가두고, 압도하려고 지속적으로 인구 공학을 활용해왔고, 그런 조치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반사적으로 치명적 폭력을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전례를 고려할 때, 이 장의 뒷부분이 입증했듯이, 이스라엘이 10월 7일 학살에 대한 대응으로 가자의 민간인을 국외로 추방하려는 의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 대응은 수십 년간 일관된 국가 정책과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에 부합했다. 이는 가자 집단학살이 불가피했다는 뜻은 아니다. 가자 주민들이 절망 속에서 ‘노천 감옥’ 같은 삶을 체념 속에 받아들였다면, 또는 이 운명에 저항할 자원과 지혜를 모으는 데 실패했다면, 이스라엘은 아마도 그들이 그곳에서 영구히 썩어가도록 방치했을 것이다. 한편, 안정적인 유대인 다수를 향한 시온주의적 열망은 때때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대중 여론으로 하여금 영토 확장을 반대하거나 분할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지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p.253)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의 부관이자 예비역 준장인 슐로모 브롬(Shlomo Brom)은 10월 7일 사건을,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강경 전략이 실패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스라엘이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 자결권과 자유롭고 정상적인 삶을 요구하는 사람들 — 을 군사력으로 무한정 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그는 하마스 공격 직후에 썼다. “결국, 억압받는 자는 억압자에 맞서 일어선다.” 하지만 브롬은 외로운 목소리였다. 일반적으로, 영토 확장과 인종적 우월주의가 결합된 정책은 비판받기는커녕 더욱 강화되었다. IDF가 가자를 초토화하는 동안, 크네세트 의원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고, 정부는 서안 지구 내 토지 몰수, 유대인 정착,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강제 이전을 가속화했다.(p.254) 10월 7일 이후, 그리고 그 이전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고자 하는 듯했다. 장기적으로 이는 결국, 팔레스타인인 또는 이스라엘인 중 한 집단의 수를 이 땅에서 0으로 줄이는 방식 외에는 끝날 수 없는 길이다.
[출처] Chartbook 375 Swords of Iron - Avi Shlaim & Jamie Stern-Weiner on Israel's war on Gaza.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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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