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IPTV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친한 친구 집을 찾아가 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 녀석이 [개그콘서트]를 보자며 TV를 켰다. 뭔가 싶어 봤더니 얼마 전에 하나TV를 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게서 리모콘을 뺏더니 복잡한 메뉴 안에서 KBS의 개그콘서트를 찾아 유유히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렇게 하나TV의 수신환경이 양호한 녹색을 깜빡이는 동안 우리는 깔깔거리며 [개그콘서트]를 다 보았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TV는 물었다. ‘다음 회를 계속해서 시청하시겠습니까.’
이미 하나TV와 메가TV와 myLGtv 등 거대통신사들은 IPTV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도 IPTV 사업에 합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012년 12월 31일 자정이 지나면 이 땅의 모든 아날로그 수신 TV는 사라지거나, 디지털 수신 전환 장치를 새로 갖춰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IPTV 특별법은 제정되었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로 나누어져 있던 방송과 통신 관련 부처는 통합되어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그렇게 미디어의 세계는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면서 계속해서 재편되고 있고 융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아직 나는 살갗에 닿지 않는 이 현실을 상상하기 힘들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방송과 통신뿐만 아니라, 영화와 융합서비스 등 다양한 미디어의 총체적 변화를 감지하며 미디어의 미래를 구상하기에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혹은 우리의 감각이 너무 무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미디어 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인터내셔널]에서 말하는 최근 미국 주파수 경매 사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09년 2월 17일, 모든 대출력(full power) 텔레비전 방송 신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미국의 모습은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가 감각하는 여부와는 관계없이 미디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ACT!는 미디어융합에 대한 [특집]을 기획했다. 미디어융합 상황에 따른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재편과정의 의미(김지희, 민중언론 참세상)/ 그런 상황에서 미디어융합 기구가 방송과 통신의 기계적 결합이 아닌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미래 설계로 기능하기 위한 제언(김명준, 미디액트)/ 그리고 융합시대를 맞는 미디어운동의 역할(허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서 ACT!는 융합상황을 바라봤다. 우리로서도 현실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이 이상으로 지체되기보다는 끊임없는 고민으로 연결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집을 내놓는다.
‘관악 인터블루’를 비롯한 지역의 퍼블릭액세스 제작 네트워크에 관한 액션V의 이야기, 그리고 RTV 정규지원액세스 토론회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개관 소식 등 [현장]의 소식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현장’에서는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공공의 접근들이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고.
융합에 대한 우리의 접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공공의 접근을 통해 현실을 상상하고 그 상상에 다가가기. 물론 쉽지 않고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다가섬이 IPTV의 수신환경이 양호한 녹색을 깜빡이는 동안에도 계속될 우리의 움직임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