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집 청소를 하고 지낸다는 근황 소개로 시작한 이혁상 감독과의 인터뷰는 망원역 근처 S 카페(스타벅스는 아닙니다)에서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이가 직접 커피를 사주며 응해주었던 ACT 사상 초유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스이: 안녕하세요, 이혁상 감독님. 오늘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혁상 감독(이하 이): 감사합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웃음)
▲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혁상 감독님 |
이: 저 뿐만 아니라 (2010년 올해의 독립영화인으로 선정된) 미디액트 운영진들도 축하를 받으셔야죠. 함께 뽑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웃음) 저희도 미디액트에 장비 대여, 카운셀링 등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이: 선정의 이유로, 한국독립영화협회 측은 "소수문화운동, 소수정치운동, 반차별운동과 독립영화운동이 만난 행복한 영화"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간단한 소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저희가 "종로의 기적"을 기획한 당시의 의도와 목적을 잘 이해해 주신 것 같아요.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독립영화계에서 성소수자를 드디어 끌어안아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연분홍치마가 성소수자 관련 다큐를 제작해오면서 독립영화계와 교류는 있어왔지만 같이 간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선정으로 독립영화와 성소수자 영화를 이제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는 의미가 깊은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신 것 같아서 저희로서는 영광입니다.
사실 그 동안 독립영화계 분들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어요. 연분홍 치마의 위치 자체가 애매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미디어운동보다 주로 인권 운동에 집중하는 단체가 많았기 때문에 문화운동을 표방하는 연분홍치마가 왠지 다른 활동을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반면 독립영화계에서는 연분홍치마가 애초에 영화를 표방했다기보다 성소수자 관련 활동을 하던 중에 잘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다큐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거든요. 이렇게 독립영화계와는 다른 과정으로 시작하다보니 애초부터 연결 지점이 없었죠. 이렇게 두 커뮤니티 사이의 경계지대에 놓여 있다보니 어느 한 쪽으로도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문제의식이 단체 내부에서 있어왔기 때문에 요즘에는 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스이: 현 정부 들어 성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화적으로는 성소수자를 다루는 드라마, 영화 등이 예전보다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감독님이 2008년 "종로의 기적"의 촬영을 시작하신 것도 이런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것인가요.
이: "종로의 기적"은 사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공동기획한 작품입니다. 2008년 당시 '친구사이'는 커밍아웃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커밍아웃 인터뷰 프로젝트('친구사이'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다)였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활자화된 커밍아웃 뿐 아니라 영상을 통해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친구사이 내부 논의가 있었고, 전담할 활동가를 찾던 차에 연분홍치마에 넌지시 제안해주신 것이죠.
그 때 연분홍치마 내부에서도 커밍아웃 3부작 다큐 중 (트랜스젠더를 다룬) "3*FTM"과 (레즈비언을 다룬)"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를 제작한 이후였기 때문에 다음 프로젝트는 "게이"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활동가들은 순차적으로 연출 데뷔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제 차례가 되었어요. 사실 그 때 저는 종로, 이태원 등 게이 커뮤니티의 역사에 대한 다큐를 추진하던 중이었는데,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면 많은 사전 조사가 필요하더라구요. 데뷔작으로 역사 다큐를 찍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구요. 그 때 친구사이의 그런 제안을 받고 동시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8년 초부터 이야기가 되었고 본격적인 촬영은 2008년 퀴어문화축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친구사이의 커밍아웃 프로젝트와 연분홍치마가 기획하고 있던 커밍아웃 3부작의 상황이 잘 맞았던 것이죠.
당시 케이블 채널이었던 tvN에서 "커밍아웃"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홍석천 씨가 진행을 맡았고 많은 게이들이 나와서 커밍아웃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렇지만 공공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등장시킬 때 주류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시선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죠. "커밍아웃" 역시 진행자가 홍석천 씨였고 많은 스탭들이 성소수자에 우호적이었지만 저희가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성소수자가 만드는 성소수자 이야기, 게이가 만드는 게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는 합의가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 사이에서 이루어졌죠.
▲ 종로의 기적 |
이: (웃음) "종로의 기적"은 커밍아웃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당연히 연출자인 나도 커밍아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많이 해왔지만 연출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대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느낌이 있잖아요. 이런 고민은 작품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서 연출의 객관적 거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해야할 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지, 나를 드러낸다면 내 정체성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등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거든요. 결국 형식에 대한 고민은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죠.
물론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답은 알고 있었지만 커밍아웃 다큐를 제작한다는 상황에 밀려 커밍아웃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체성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 그 영화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지만, 정체성과 무관한 영화를 몇 편 만들고 좋은 평가를 받아서 임권택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정도의 반열에 오른 후에 존경을 받으면서 커밍아웃을 해야겠다, 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이었던 거죠. (웃음) 그런데 갑자기 시기가 앞당겨져서 데뷔작부터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온 겁니다. 그렇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고, 다만 이런 기회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사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작품 활동에 스스로 제한을 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작품을 통한 커밍아웃은) 원해왔던 일이었고, 작품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단순화하면... 주인공 네 명이 (커밍아웃을) 다 하는데 연출자가 안 할 수 없잖아요. (웃음) 제가 소위 '커밍아웃 시킨' 주인공들에 대한 연출자로서의 책임감이 컸기 때문에 사실 최종 편집하기 전까지도 고민이 많았어요. 결국 작품을 통해 나 역시 커밍아웃을 하고 주인공들과 함께 커뮤니티 안에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 전체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죠.
스이: "종로의 기적"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갈등이 없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큐에 등장한 성소수자들을 결과적으로 커밍아웃 '시킨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러한 갈등 지점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이: 사실 그래서 제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웃음) 주인공을 섭외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고 동의를 받았어요. 주인공들의 대부분이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이었고 커밍아웃에 대한 의지가 있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저도 그 친구들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웃음) 아직까지 큰 사건은 없었지만, 주인공들은 이 다큐가 가질 사회적 효과에 대한 궁금증, 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면 안 되겠지만, 보수 집단의 혐오 범죄 등에 대한 우려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다큐를 찍는 과정에서도 계속 고민했던 것은, 다큐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 지점에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평생 동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인공들에게 '만일 이 다큐 때문에 네 삶에 큰 사건이 생기면 그 이야기를 또 영화로 찍겠다'는 말을 종종 했구요. 사실 이 다큐는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고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 다큐가 마무리 되었다고 해서 끝은 아닌 것이죠. 이 다큐 이후에도 주인공과 교류하고 그들의 삶의 변화를 목격하고 미디어와 관련된 고민을 하는 것은 계속될 거에요.
사실 "종로의 기적"은 주인공들의 과거라기 보다는 앞으로 남은 인생의 시작 부분이라고 봐요. 그래서 이들을 이렇게 그려도 되는 것인지 윤리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예를 들어, 준문(소준문 감독)의 경우 남성 중심적 영화 제작 시스템에 대한 그의 고민을 군대에서의 트라우마와 연결시켰는데, 이런 스토리텔링은 저의 해석에 기반한 것이죠. 병권(동성애자인권연대 장병권 활동가)이나 욜(정욜)의 경우에도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선정적이지 않게, 이들이 활동해온 배경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담아내야 할 책임이 있었구요. 특히 영수 씨의 경우 '죽음'까지 다루게 되니까 지나친 선정주의에 대한 고민을 더욱 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편집과정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두 시간 동안 네 명의 삶을 다루면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했는데 이 과정에서 누락되는 삶의 부분에 대한 미안함 혹은 윤리적인 갈등을 갖게 되었거든요. 다큐멘터리의 완결성 있는 서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삶의 모습이나 그들이 치열하게 활동해왔던 성소수자 이슈가 어느 정도 연성화되는 부분이 필시 생겼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큐로 더 이상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주인공들의 삶을 최대한 온전하게 노력했고, 현재로서는 이 버전이 최선이에요. 남은 문제에 대해서는 몸으로 뛰어야죠! (웃음) 사실 이 다큐가 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들과의 관계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평생 지속될 거구요. 성소수자들의 경우 가족이 아닌 다른 공동체가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에 다큐가 아니었더라도 주변 친구들은 계속 접하게 되겠지만, 주인공들과의 각별한 관계는 평생 유지될 것이라고 봐요. 평생 같이 활동하면서 "종로의 기적"으로 빚진 부분을 계속 갚아나가게 되겠죠. 이렇게 하는 것이 다큐를 만들면서 제가 지녔던 윤리적 고민을 풀어나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스이: 활동하고 계시는 연분홍치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세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이 곳에서의 활동을 통해 기대하는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가 만들어진 것은 2004년도였지만, 2003년도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초기 형태는 제가 당시 영화이론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원 내부에서 섹슈얼리티, 페미니즘 등의 주제를 함께 공부했던 세미나 팀이었습니다. 학내 소모임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형식이었는데, 점차 이론 공부에 그치지 말고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죠. 이렇게 실천에 대한 고민을 1-2년 정도 거친 후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첫 프로젝트는 성매매여성 실태조사에 공동으로 참여한 것이었는데, 실태조사를 하던 중에 단순한 보고서 작성을 넘어 다큐를 제작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분홍 치마 활동가의 반 정도가 영화를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실천적인 활동과 영화가 가장 잘 만나는 지점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이기도 했구요. 이렇게 성매매여성들의 현실을 단지 설문조사나 보고서가 아닌 영상으로 담아내려는 기획으로 제작된 작품이 "마마상"(2005)이었어요. 송탄 미군기지촌 성매매여성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이 때 연분홍 치마가 처음으로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이후 2008년 제작한 "3xFTM" 역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가 결합해서 추진했던 성전환자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제도화하고 그들의 생존권 및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한 실태조사였는데, 이 과정에 연분홍치마가 결합하게 되었어요. 여기서도 성전환자들에 대한 보고서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다양한 공간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났던 세 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마상"은 정말 별다른 준비도 없이 밑바닥부터 시작한 영화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연분홍 치마 내부에서도 미디어를 다루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었기 때문에 활동 방향과 조직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구요. "3xFTM"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논의들이어느 정도 정리되었기 때문에, 영상에 대한 고민들을 실질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기반으로 2009년에 "레즈비언정치도전기", 작년에 "종로의 기적"이 나오게 되었죠.
스이: 연분홍치마와 같은 영상 집단에 참여하지 않으셨더라도 이런 영상 활동을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나요?
이: 사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제작자를 꿈꾸었지만, 집안과 학교의 반대로 영화 전공을 하지 못했어요. 쉬리 이전의 세대라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웃음)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게 1993년이었는데 그 때 최대 흥행작이 서편제 정도였거든요. 졸업 후 다른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하다가 2002년도부터 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막연하게 극영화를 만들고 싶긴 했지만 다큐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당시가 제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는데 (웃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운동에 대한 생각과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었거든요. 그러는 동안 연분홍치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었죠. 이후에도 다큐 제작을 계속하겠지만 "종로의 기적"을 만들고 나서는 다큐 활동가로서의 책임감, 부담감이 커져서 작품 활동을 언제 재개할 지는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일단 개봉 준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스이: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드리고 싶은데요, 우선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이 어떻게 이루어져왔고, 연분홍치마는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음..제가 이런 흐름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웃음)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이라는 용어는 굉장히 낯선 개념이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통용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사실 연분홍치마 이전에도 그런 활동들은 있어왔죠.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제작한 '움'이라든지, 개인 활동가들도 적지 않았고, 이송희일 감독님, 소준문 감독 같은 경우에는 극영화 안에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오셨구요. 그런 활동이 연분홍치마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2007년 차별금지법 관련 활동이었습니다. 2007년도에 차별금지법 초안에서 성적지향, 가족 형태, 병력, 국적 등 7가지 차별사유가 삭제되면서 성소수자 진영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이 발족했어요. '긴급행동'이 펼친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미디어 기록팀이었는데,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 영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이죠. 연분홍치마 역시 이 때 결합했어요. 기자회견, 1인 시위, 문화제, 항의방문 등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영상물을 공유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당시 UCC 붐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렇게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디어 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죠. 그 결과 마치 옛날 '대한뉴스'처럼 하루하루의 활동을 정리하는 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인터뷰나 다양한 활동을 담은 영상물을 다음 tv팟에 업로드해서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했었죠. 이런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물을 우리 스스로 웹상에 올리는 것' 정도로요.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에서 가장 딜레마라고 할 수 있는 게 얼굴을 드러낸다는 문제인데요, 처음에는 촬영과정은 물론 편집과정에서도 얼굴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허가를 계속 받아야했어요. 그러다가 영상물을 업로드하면서 사람들이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던 것 같아요.사람들이 성소수자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상으로 커밍아웃하게 된 거죠. 오히려 촬영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었구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직접 만드는 미디어에 대한 내부의 갈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지점들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긴급행동의 미디어기록팀의 활동이 성소수자미디어운동의 두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 역시 다양한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이 보다 명확해졌고, 다른 단체들도 연분홍치마의 활동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성소수자 미디어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 이후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작품 활동에 대한 지지나 응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제작하면서 커뮤니티 내부의 지지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요, 최현숙 후보(2008년 총선에 출마한 진보신당의 종로구 후보로, 커밍아웃한 최초의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를 표방하였음)의 선본은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가 결합해있었기 때문에 다큐 촬영에 대한 동의 자체가 연분홍치마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그 신뢰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연분홍치마가 성소수자 정치세력화에 함께하는 일원으로 즐겁게 활동을 했던 사례가 되었다고 봅니다.
스이: 관련된 질문을 계속 드리자면, 이번에 "종로의 기적"이라는 커밍아웃 다큐를 만드신 것은 성소수자미디어운동의 맥락에서 어떤 전략적 고려에 의한 것이었나요.
▲ [종로의 기적] - 두 번째 에피소드 중 |
그 좋은 모델은 성소수자 미디어운동 이전에 있었던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성이 독점해왔던 시선과 가치로부터 탈피하고, 여성의 시선과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는 움직임이었죠.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를 표방했던 씨네페미니즘이나 남성 중심적 영화제작시스템을 평등한 구조로 개선하려는 여성 영화인들의 움직임 역시 그 일환으로 벌어진 운동이었어요. 이렇게 여성을 대상화해왔던 기존의 역사에 저항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과정이 바로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이었다면, 성소수자 미디어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동안 주류미디어에서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중심주의에 의해 왜곡되거나 희화화된 존재 혹은 사회 암적인 존재로 재현되었는데요, 이런 주류 미디어의 시각을 감시하고 비평하는 활동을 기반으로 하면서 이제 성소수자 스스로 미디어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성애중심주의에서 탈피한 성소수자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내서 공적인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지속적인 미디어를 생산하는 것일 텐데, 당사자성에 매몰될 위험도 있지만 그나마도 없었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로 보여집니다.
사실 "종로의 기적"은 '같이 손잡고 나가자'는 단순한 전략이었어요.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라는 점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나가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굳이 왜 커밍아웃을 (해서 화를 자초)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피해를 받게 되지 않을까요? 현재 종로의 밤거리를 게이들이 마음 편하게 활보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안의 수많은 커밍아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점에서 커밍아웃 전략은 가시화 전략 중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에요.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카메라를 드는 것은 비슷한 맥락의 커밍아웃 전략인 거죠.
숨기면서 편하게 산다, 는 말을 하는 성소수자들도 있는데 그 말 자체가 차별임을 모르는 상황인 거죠.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언제든 들킬 수 있다는 것을 신경 쓰면서 사는 상황 자체가 차별임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도 해요. 차별 감수성이 조금 다른 거겠죠. 그렇지만 나중에 소위 '뽀록'나면 어쩌려고... (웃음) 그런 상황에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사람일 텐데 말이죠.
스이: 현재 커밍아웃 전략이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에서 유효하고 매우 필요한 전략이더라도 다음 단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커밍아웃 전략은 '우리도 같은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커밍아웃 전략 이후의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까요.
이: 저는 일단 양적으로 공격해야한다고 봅니다.(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미디어 운동을 하는 것은 커밍아웃 이후의 상황에 대한 각오를 하고 카메라를 드는 것일 텐데, 이런 미디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낭만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는데 일단 많이 보일수록 편견도 더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양질전화의 법칙'이라는 말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했던 당시와 지금의 인식이 매우 달라진 건 사실이니까요. 다만 주류 미디어에서 점점 다양한 모습들의 게이가 등장하고 있더라도, 소위 '꽃게이'들만 등장하거나 레즈비언이나 양성애자는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지니고 있죠. 그래서 성소수자 자신들이 다양한 성소수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주류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스테레오타입을 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미디어에 등장하는 (잘 생긴 혹은 여성성이 과잉된) 게이들은 편견에 기반해서 재현된 것인데, 그건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는 분들이 많은 게이들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홍석천 씨가 예전에 '남자 셋 여자 셋'에서 맡았던 쁘아종 역할은 '과잉된 여성성'의 대표적인 사례였죠. 이처럼 편견에 기반한 이미지가 재생산되면 왜곡된 이미지를 지적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성소수자에 대한 재현이 충분하지 않았고,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사실 종로의 기적에 등장하는 수많은 게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머 못생긴 게이도 있네', '안 예뻐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에요', '다를 바가 없네' 등의 반응을 보이시더라구요.(웃음) 더 많은 성소수자 미디어들이 등장하고,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삶을 드러낸다면 왜곡된 스테레오 타입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사실 성소수자 사회 내부에도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상황이 있는 것인데 미디어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을 극복하는 것이 어쩌면 다음 전략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요.
연분홍치마가 성소수자 다큐를 제작하다보니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의 거창한 계획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연분홍치마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성소수자 미디어인력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성소수자미디어운동 교육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연분홍치마는 장기적으로 여성주의와 성소수자에 기반한 미디어센터를 건립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미디액트도 매우 좋은 활동을 보여주고 계시지만 성소수자 문화라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연분홍치마 나름의 미디어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스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과 관련해서, 계획하고 계시는 미디어 운동이 있으신가요.
이: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이하 제정연대) 내에서 대중홍보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유명인사들의 지지 인터뷰를 받아 업로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첫 인터뷰는 김여진 씨였고, 오늘 권해효 씨의 영상을 제작해서 올렸어요. (http://www.ad-act.net/48) 지난 주에는 차별금지법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구요. 유투브에서 '차별금지법'으로 검색하면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연분홍치마의 활동 자체가 기본적으로 제정연대의 활동 방향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종로의 기적"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구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어떤 연결 지점이 있을 지 계속 고민하면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니 지켜봐 주세요. (웃음)
스이: 개봉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당시만 해도 2011년 2월 혹은 3월에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6월로 미뤄진 이유가 있었나요.
▲ 커피 후원의 아름다운 모습 |
사실 저희는 개봉을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어요. 관객과 만나는, 재미의 요소가 중요해지는 영화의 최종적인 유통 과정이라기보다는 더 큰 의미의 커밍아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마케팅 과정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정보를 전달해서 구매를 최대화하는 것이라면 저희는 개봉까지의 과정을 캠페인으로 보면서 기획하고 있어요. 주류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언론에 홍보를 하면서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 되는 거니까요.
종로에 나오는 게이들은 사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종로의 기적"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런 다큐를 접하고 스스로에 대한 커밍아웃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스스로를 긍정했기 때문에 연애도 할 수 있었고(웃음) 종로에 나왔으니까요. 벽장 속에서 자신에 대해 고민하던 성소수자들에게 이 다큐가 스스로를 긍정하고 종로와 같은 LGBT 커뮤니티에 자신을 드러내는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개봉 과정에서-흥행성적과는 무관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있어요. 이 다큐가 이슈화 되면 저 시골에서 김매던 농부 K씨도 읍내의 영화관에서 "종로의 기적"을 보고 난 후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을 찾게 될 지 모를 일이죠. 시네마 달도 "종로의 기적"이 갖고 있는 이와 같은 운동성과 활동의 일환으로서의 의미를 존중해주셨고, 그래서 배급 활동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스이: 개봉 과정 이외에, 국내외 LGBT 영화제 출품 계획은 어떻습니까.
이: 해외의 LGBT 영화제 중에서 토리노 LGBT 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 LGBT 영화제가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영화제에 일단 출품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구요. 그리고 일본에서 5월에 열리는 '아시안 퀴어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해서 상영이 확정되었어요. 가깝게는 이번 3월에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될 계획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도 출품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인데, 주인공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영화제에요.
스이: 마무리 질문인데요, 계획하고 계시는 차기작이 있으신지요.
이: 연분홍치마에서 다섯 번 째 프로젝트로 용산 참사를 다루는 [두 개의 문]을 기획하고 있구요, 여섯 번 째 프로젝트인 [노라 노] 역시 동시에 진행 중이에요. [노라 노]는 한국 최초의 서양 복식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두 프로젝트에 스탭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연분홍치마는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시스템이라서 연출은 책임자 정도의 역할이에요.
연출의 경우는... 일단 "종로의 기적"의 개봉에 집중해야죠. (웃음) 지금은 너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서 자신을 다지는 것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나중에 연출을 하게 된다면 게이 커뮤니티의 역사를 다룬 다큐를 꼭 해보고 싶어요. 소수자의 역사는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할아버지가 되신 선배 게이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 동시에 자신을 단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죠.
스이: 저 역시 성소수자미디어운동집단을 꿈꾸고 있는데, 저와 같이 성소수자미디어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
이: 제가 조언을 할 위치인지 모르겠지만(웃음), 저의 경우 커밍아웃을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고, 커밍아웃 이후의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성소수자 미디어 활동 자체에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죠. 저는 "종로의 기적"을 촬영한 이후 제 삶이 어느 정도 편해졌어요. 촬영하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치유된 것 같았고, 편집하면서도 카메라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기도 하고 많은 감동을 받았거든요. 사실 다큐 속 주인공들은 카메라가 아닌 저를 보고 있었고 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편집 과정에서 알게 되면서 저는 그들의 모습에서 좋은 기운을 받았고 이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당사자성이 더 강하죠. 그래서 제작과정 자체가 치유나 확신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이익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대로 밀고 나가도 될 것 같아요. 요즘은 이런 활동을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적지 않거든요. 만일 불이익을 당하면 또 다큐로 찍으면 되죠. (웃음)
[인터뷰어 소개] 스이 - 제시된 정답을 따라 살다가 늦게나마 자신과 성소수자 미디어운동에 눈을 떴다. 현재 미디액트 굴지의 강좌 '독립다큐제작과정'(15기)을 들으면서 차별금지법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료작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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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첫 발을 뗀 [ACT!]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로 국내외 미디어운동 관련 이슈를 기획, 발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