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3. 10 경향신문사 대회의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발족식 |
‘현카’의 시작
이날 행사는 두 시간 남짓의 토론회와 6편의 현장 영상 상영회로 채워졌다(발족식에서 흔히 기대하는 대표의 연설이나 발족을 축하하는 거창한 순서를 '현카' 조직에 대한 고민과 추진 방안을 공유하는 토론회로 대체한 셈이다).
‘현장과 카메라의 분리를 넘어’라는 제목의 발제로 토론회를 시작한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현장에서 영상을 만드는 이들과 그들이 기록하는 현장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당사자 저널리즘으로서의 현장 카메라가 지니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물신성의 흔적은 현장에서도 ‘현장 카메라’의 존재와 현장을 분리시켜 사고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우리 안의 물신성을 반성하고,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현장에서 큰 힘이 됨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마무리된 그의 발제는 청중 대부분의 공감을 얻어내었다.
두 번째 발제는 태준식 감독이 ‘현장 영상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하였다. “‘현장 카메라’의 시선으로 ‘현장 카메라’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운을 뗀 태준식 감독은 “‘현장 카메라’의 시초인 “상계동 올림픽”은 현장과 영상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냈고, 이는 ‘노동자뉴스제작단’으로 이어졌다. 90년대 말 IMF 사태 이후 개인 단위로 활동하게 된 ‘현장 카메라’들은 2009년 1월 용산 참사, 2009년 여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2010년 <江,원래>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현장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지만, 그 동안 포용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지는 못했다.”고 반성하였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의 나비 활동가는 세 명의 미디어 활동가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현장카메라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현장영상 활동가들이 영상보다는 현장에 방점을 두고 현장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현장에서 부차적인 활동으로 취급되어왔다. 이 같은 풍토 속에서 ‘현장 카메라’들은 고립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들 간의 일상적인 부조를 위한 시스템과 물리적 기반이 없었다.”고 진단하면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현카’가 단순한 제작지원을 넘어 현장영상 활동가들 간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일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 체계로 발전되길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 왼쪽부터 김동원 연구팀장, 나비, 태준식 감독 |
이들의 발제에서도 언뜻 내비치듯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은 두 현장영상 활동가의 죽음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기륭전자 노조의 투쟁 현장을 기록했던 고(故) 김천석 활동가와 ‘숲속 홍길동’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고(故) 이상현 활동가가 생계의 압박 속에서 차례로 죽음을 선택했던 사건은 투쟁현장 안팎의 모두에게 큰 충격과 회한을 남겼고, 이를 계기로 현장영상 활동가 지원조직 및 네트워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2011년 8월, 13인의 제안자들로 시작되었던 ‘현카’는 2012년 3월 현재 약 30여 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4월부터 제작 지원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카'의 사업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될 예정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현장 영상의 제작, 배급 및 상영 지원'으로, 지역미디어센터와 함께 연 2회에 걸쳐 현장 영상 활동가에 대한 현금/현물 지원을 추진하고 각종 영화제와 오프라인 상영회, 온라인 채널 개설 등을 통해 배급 및 상영을 지원하게 된다. 그 외에도 현장영상의 사회적 위상 제고를 위한 연구 사업과 각 회원 단체 내부의 상영 확대 사업 등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 사업을 위해 소속 단체 분납, 회원 후원금, 소셜 펀딩 등을 통해 연 3,000여 만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장 카메라’는 누구인가
▲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포스터 |
이러한 논쟁은 ‘현장 카메라’의 개념에 대한 공유가 아직 충분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번 발족식 뿐 아니라 작년 8월 이후 진행된 다수의 준비모임에서 ‘현장 카메라’에 대한 개념 정의가 여러 번 시도된 바 있다. 작년 8월 19일 초동 모임에서는 ‘1년 이상 지역, 노동, 소수자 등의 투쟁 현장을 지켜온 영상 활동가’를 지원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올해 2월 16일 열린 정책 간담회에서는 나비 활동가에 의해 ‘현장 카메라’의 개념을 다음의 6가지로 정리되기도 하였다.
1) 투쟁의 현장에서 장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일부 활동가 (GM대우, 강정)
2)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현장에 개입하고 있는 이들 (용산, 강정)
3) 부산의 ‘미디토리’처럼 사회적 기업의 외연을 띠지만 현장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이들
4) 다양한 현장과의 연계를 지속적으로 가져가며 기록 하고 있는 이들 (칼라TV, <江, 원래> 프로젝트)
5) 현장 생중계 중심의 활동가(주로 당, 정파 중심의 활동)
6) 현장에서 비정기적, 혹은 자발적으로 촬영하고 기록 하고 공유하는 시민들
‘현카’의 발족 취지를 고려할 때, ‘현장 카메라’에 대한 개념 정의의 유동성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원 체계로서의 ‘현카’가 현장영상 활동가의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이상, 명확한 정의를 통한 ‘경계 짓기’는 불필요해 보인다. 오히려 현장에서 영상으로 연대하는 모든 제작자들이 자신을 ‘현장영상 활동가’로 정체화하고 보다 적극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현장 풍토를 만드는 것이 보다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특히 이번 사업이 노동운동 진영과 영상미디어운동 진영 간의 연대로 가능했던 만큼, 노동운동 현장에서 현장 영상 활동가에 대한 인식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영회 이후
이후 5시간 넘게 진행된 현장영상 상영회에서는 6편의 대표적인 현장영상이 상영되었다. <노동자뉴스 6호> (노동자뉴스제작단),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너희는 고립되었다> (김천석), <2008 비정규 투쟁>(최은정/참세상), <죽지 않았다>(김성만/강,원래 프로젝트), <연영석 뮤직 비디오>(숲속홍길동(이상현)),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을 차례로 감상하면서 참석자들은 현장 영상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다.
특히 <두 개의 문> 상영 이후 가진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서 김일란 감독은 “이 자리에서 상영의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면서 “칼라TV, 사자후TV 등 현장에서 고생했던 카메라들에게 빚진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들 1인 미디어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투쟁 현장에서 현장 카메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일례를 잘 보여주었다.
현장영상 활동가들 간의 교류와 연대가 현장에 가져올 시너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는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현장영상 활동의 특성상 그들 간의 조직화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두 번의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 현장카메라들의 안정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 '현카'의 뜻에 함께하고 싶다면!
-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홈페이지 www.fieldcam.kr
- 후원: 국민은행 816901-04-178596 김소연(현장카메라)
[필자소개] 스이 (ACT! 편집위원회)
ACT!에 발을 들여놓은 후 미디어운동의 의미를 ABC부터 배우고 있다. 조금 더 배웠으면 좋겠다. LGBT 이야기가 미디어운동 판에서 활발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