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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0호 인터뷰] 미디액트 10년, 이주훈 미디액트 사무국장

[편집자 주] 미디액트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미디액트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 매스미디어로부터 소외된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매체 공유의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관련된 정책활동 및 여러 가지 교육활동을 추진하고 실행해왔습니다. 2010년 공모 사태를 겪고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이전해 온 뒤에도 여전히 공공영상미디어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미디액트의 지난 10년을 이주훈 미디액트 사무국장님과 함께 돌아봅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출처: blog.naver.com/mediedu]


오재환: 올해가 미디액트 개관 10주년이다. 10주년을 맞는 기분이 어떠신지?

이주훈 사무국장: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감흥은 없다. 굳이 공식적으로 표현하자면 놀라운 10년이라고 하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10년이 지나갔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10년이다.

오재환: 미디액트가 10년이 된 지금은 미디액트가 있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10년 전에는 개념도 생소한 미디어센터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디액트가 처음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이주훈 사무국장: 98,99년 무렵은 구충무로 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한 신충무로 세력들의 움직임이 조직화 되어가던 시기다. 구영화인들의 철옹성을 깨고, 새로운 영화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그것을 정책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흐름들이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독립영화는 정책적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당시 독립영화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지원이 없었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독립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정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독립영화협회의 5대 과제 중 하나가 미디어센터였다. 김명준 소장(미디액트 소장)이 센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명제로 드러나지는 안았던 상태였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처음에는 독립영화지원센터와 전용관 개념을 가지고 출발해서 미디어센터라는 개념으로 수용되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연구활동 및 공식화시키는 작업을 벌이면서, 독립영화가 영화지원정책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었고, 그것이 단순한 작품지원을 넘어서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수준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겠다는 논의를 펼쳤다. 2년을 두드리고 기다린 끝에 2002년 5월에 개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화미디어센터, 영화지원센터 같은 개념도 있었다. 그런데 김명준 소장이 앞으로의 매체환경은 영화로만 환원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미디어라는 포괄적인 이름을 쓰게 되었고, 퍼블릭 액세스도 중요한 사업 분야로 넣게 되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새로운 개념이었기 때문에 영상미디어센터의 개관은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오재환: 만들어진 이후에 다양한 교육, 정책 등의 활동을 진행해 왔다. 그때그때 느껴지는 의미와 보람도 있었겠지만, 10년이란 시간 동안 쌓인 활동의 의미는 또 다를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의 미디어센터 운영을 돌아봤을 때, 어떤 것을 남겼다고 생각하시는지?

이주훈 사무국장: 미디액트가 가지고 있는 함의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 중 첫 번째로 꼽을만한 것이 공적자금을 활용해서 진일보한 정책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실행하고, 집행하고,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독립영화나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의 의제들을 공식화하고 그것의 성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향후의 정책집행의 근거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지점들이 결국은 지난 10년 동안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미디액트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도 꼽고 싶다.

오재환: 10년 동안의 미디액트 운영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고, '아 미디어운동이고 뭐고 관뒀으면 딱 좋겠다' 싶은 순간도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지치고 힘든 일들은 어떤 게 있었나?

이주훈 사무국장: 센터 개관이 가장 힘들었던 일이다. 미디어센터라는 개념을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관광부에 이해시키고 동의를 얻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완고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스텝들의 급여문제가 있다. 미디액트는 상위 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구조였기 때문에 스텝들의 급여를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월단위로는 굴곡이 많았지만 다행히 연단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세 번째로 사소하게는 기존의 시청자 단체의 질시,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들의 불만, 시민사회단체의 편견 등도 들 수 있다.

오재환: 위에서 말한 지치고 힘든 일들로 2010년의 공모 탈락 사태도 언급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 짚고 갔으면 좋겠다.

이주훈 사무국장: 심사위원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미디액트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심사위원회를 통해 절차적인 과정을 거쳤다는 핑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심사에 적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이 일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면에 심사위원 명단을 실었으면 좋겠다. (*주1)

오재환: 그 이후 상암동으로 이전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광화문에 자리잡고 있을 때와, 지원 없이 상암동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은 많이 다른 상황이다.

이주훈 사무국장: 상암동으로 옮겨오는 동안 우리에 대해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회원들의 참여가 원동력이 되었다. 심사과정에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 회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오재환: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이전해온 뒤 어떤 게 달라졌고, 어떤 걸 유지하려고 하는지?

이주훈 사무국장: 상암동으로 이전해오긴 했지만 운영자들은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처한 변화된 상황과 괴리가 생기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상황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시행착오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상암동에서는 우리의 자체적인 힘만으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암동 미디액트의 존재 이유를 무엇으로 둘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

오재환: 미디액트는 서울의 미디어센터이기도 했지만, 이후에 전국에 생긴 미디어센터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고, 미디어센터에 한정하지 않아도 한국 미디어운동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상암동에 온 이후로는 예전에 비해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데 예전보다 더 집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방향을 택한 이유와, 이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이주훈 사무국장: 광화문에 있을 때는 메타센터로서 전국으로 미디어센터를 확장시켜 나가고, 퍼블릭 액세스, 독립영화정책, 공동체 라디오 등등을 의제화 시키고, 그것을 국가적 어젠다로 만드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상암동 미디액트는 그 역할을 하지도 못하면서 쉽게 포기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광화문 미디액트는 지역미디어센터들 선두에서 공공미디어센터의 모델로 일정한 역할을 해왔지만, 상암동 미디액트는 그것을 제시해주기 힘든 여건에 처해있다. 그래서 과거의 중앙센터의 역할을 탈피해서 지역 센터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역 센터로서의 실험을 직접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미디액트에 맞는 것인지는 아직 의문스럽다.

오재환: 미디액트는 '영상'미디어센터이고, 예전부터 하던 교육들도 주로 영상제작과 관련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하는 생활 창작 워크숍 등을 보면 교육의 주제가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이주훈 사무국장: 광화문에 있을 때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연계되어있었기 때문에 영화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점이 있고, 센터 운영을 위해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필요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보자는 점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론적 베이스는 무엇인지 아직 명확해지지 않았다.

  이주훈 미디액트 사무국장
오재환: 최근 들어서 미디액트 스텝 중에 못 보던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 사람들이 앞으로 미디액트의 10년을 일궈나갈 사람들이 될 텐데, 새로 온 사람들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주훈 사무국장: 상암동으로 오면서 아팠던 게 기존의 사람 몇몇이 나가게 됐다. 센터는 늘 사람이 바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존의 성과나 축적된 경험들이 온전히 전수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아쉽고,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유능한 인력들이 유실되어서 안타깝다.
상암동으로 오면서 새로 들어 온 사람은 윤도연, 이한나, 송수림 세 사람이다. 다 젊은 친구들이다. 이전의 멤버들도 보통 7,8년, 적어도 5,6년 정도 있어야 성과를 얻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버티면서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나가느냐에 따라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오재환: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각오 한 마디.

이주훈 사무국장: 올해 대선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그에 따라서 여러 변화들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당장에는 서울시와 진행하고 있는 계획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미디액트가 내년에 집중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현재 어디에서도 정책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미디액트도 상암동에 와있는 동안 그걸 느끼고 있지만 자기과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과 관련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위한 조직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이 이후의 10년을 위한 어느 정도의 기초 단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빚이 억단위로 늘어나고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공적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고민, 그와 관련된 변화가 내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는 미디액트의 본질적인 역할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들을 모색하고 그것들을 결정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


* 주1
- 이주훈 사무국장의 요청에 따라 2010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운영자 공모 심사위원 명단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