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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1호 이슈와 현장] ‘선의’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진흥정책 점검 및 대안: 영화진흥위원회를 중심으로" 토론회에 다녀와서

지난 7월, 24일과 26일 사이 3일에 걸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자유 게시판에는 눈에 띄는 글 3개가 연달아 올라왔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영화진흥위원회 다큐멘터리 진흥정책에 대한 의견 및 질의서'(7월 24일), 다큐멘터리작가네트워크의 '독립다큐 지원정책 제고를 위한 공개질의서'(7월 25일), 신진다큐모임의 '영화진흥위원회 독립다큐멘터리 진흥정책에 대한 질의서'(7월 26일)가 그것이다. 글들은 모두 인디다큐페스티발이 2년 연속 단체지원사업 공모심사에서 탈락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영진위의 독립다큐멘터리 진흥정책 전략과 장기적 전망에 대해 질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들의 공개 질의서는 8월 3일과 9월 5일 두 차례에 걸친 영진위와의 간담회로 이어졌고, 같은 달 9월 21일 민주통합당 노웅래 의원실과 (사)한국독립영화협회의 주최로 국회에서 다큐멘터리 진흥정책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기에 이르렀다.

"저도 다큐멘터리를 잘 몰랐는데 <두 개의 문>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진흥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입법을 통해 정책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노웅래 의원(민주통합당)의 인사말로 시작한 이날 토론회는 독립다큐멘터리 진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다큐멘터리 진영과 영진위 간의 입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자리였다.

기본적으로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는 현실 인식은 양측 모두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 첫 번째 발제자였던 오정훈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장은 "2012년 영진위 진흥사업의 독립영화제작지원이 전체예산의 1.6% 밖에 안 된다. 다큐멘터리는 그 안에서 0.25%로 1억5천 정도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진위의 다큐멘터리 지원이 높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상태다…2000년대에 1억5천이 생겨난 것인데 10년 정도 그 규모에 머물러있다." 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두 번째 발제자였던 문봉환 영진위 국내진흥부 부장 역시 오정훈 집행위원장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영상산업과 영화문화 발전을 진흥하는 것이 영진위의 목표다. 산업적 측면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고 영화문화는 직접지원이 목표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 최소 5억 이상은 확보해야 한다. 편수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작에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영진위의 입장을 설명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규모와 관련하여 "예산 10억 증액을 신청한 상태”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12. 9. 21 국회 의원회관 / 다큐멘터리 진흥정책 토론회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이들 간의 접근 방식은 이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산업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공공적 접근 또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접근, 예술성에 대한 접근이 기본적”이라는 말로 오정훈 집행위원장은 독립다큐멘터리 지원 정책이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려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피력했으나, 문봉환 부장은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영진위가 고려하고 있는 다른 요소들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위원회에 기수가 있다. 2~3년 단위로 위원이 바뀌거나 위원장이 바뀌는 때에 전략이나 중장기적으로의 운영방향을 발표하는데 거기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위원장님은 산업과 다양성에 포커스를 두고 계시다." (문봉환)

발제가 끝난 후 토론이 이어진 자리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참석한 토론자들은 독립다큐멘터리 진흥을 위한 영진위의 장기적인 전략과 이를 위한 의지를 반복해서 확인하고자 했다. <춤추는 숲>의 강석필 감독은 "(그 동안) 만드는 사람도 본인 인건비나 기타 등등 정당하게 지출될 것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예산을 짰고, 그에 기반을 두고 공적 영역의 지원비도 결정이 됐는데 자신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을 정도로 확보가 되지 않을 때는 재생산이 어렵다.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영향들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다큐멘터리 쿼터를 늘리는 것보다) 전체적 파이를 키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며 독립다큐멘터리의 영향력과 가치에 대한 인식 하에 단발적인 쿼터 확보가 아닌 실질적인 지원 규모 확대를 주문했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또한 "(독립다큐멘터리를) 산업화시키려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지원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영진위가 현재 기획 중인 장기적 지원전략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기획개발융복합프로그램”, “상설상영관과 비상설상영관의 조화”, “배급지원센터”, “파이의 선순환 구조 확보를 통한 자본 유입”이라는 알쏭달쏭한, 혹은 원론적인 단어들의 조합뿐이었다.

  발언 중인 영화진흥위원회 문봉환 국내진흥부 부장


토론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던 점은 영진위가 사업의 종류와 확보 예산의 규모라는 지극히 성과중심적인 관점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지원정책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사회적 가치에 비해 빈약한, 비현실적인 지원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영진위는 ‘진행 중인 사업의 종류와 예산을 나열하고, 예산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상황 논리로 일관했을 뿐이다. 현재의 사업과 예산이 독립다큐멘터리의 실제 제작과 제작자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많은 토론이 오가고 상호 대화와 소통의 의지를 수차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회에서 그다지 낙관적인 전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영진위의 이러한 자세 때문이었다.

사실 이날 토론자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신진다큐모임의 손경화 감독은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을 만들 제작비는 없다 하더라고 10년 후의 전망이 세워진다면 신진으로서의 어려움을 한두 편은 감수하며 할 수 있다”며 제작 기반을 튼튼히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연분홍치마의 홍지유 감독 역시 “이 일에 자신의 삶을 걸고 해 나가고 있는 이 진영의 사람들이 이런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정책의 첫 번째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속가능한 작업 기반 확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영진위 측의 입장도 역시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들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판단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앞서 확인된 바와 같이 영진위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지가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고, 예산을 책정하는 기관의 논리와 관행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독립다큐멘터리는 ‘다양성 영화’라는 두루뭉실한 행정편의적 개념 안에 포함된 채 예산상의 ‘쿼터’로서만 유효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다양성 영화가 어디에도 없는 편의적 개념인 만큼, 이를 재검토하고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개념 안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김일권)는 지적에 대해 영진위 측은 ‘다큐멘터리를 너무 다양성 영화로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별개의 독립다큐멘터리 정책수립 요구에 대해서는 ‘다양성이라는 큰 범위 안에서 진흥정책을 짜는 관점인 만큼, 다양성 부분에서 다큐멘터리가 분리되는 게 좋은지는 의견이 더 필요할 것 같다’(문봉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 영진위는 ‘다양성 영화’라는 개념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왜 다양성 영화 내의 쿼터 확보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일까. 다양성 영화 내의 독립다큐멘터리 ‘쿼터’가 확대되면 지속가능한 작업기반 마련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것일까. 독립다큐멘터리 지원확대와 지속적인 토론의 자리에 대해서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다양성 영화 안에서만 독립다큐멘터리에 접근하는 그간의 논리와 관행은 정작 버리지 않는 영진위의 모습은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사업 의지가 얼마나 분명한 것인지 우려스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1, 2차 간담회를 통해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은 영진위로부터 독립영화 제작지원 예산 10억 증액, 간담회 지속, 위원회 출자 투자조합을 통한 적극적 투자 진행 약속, 세분화 및 부문별 특화를 위한 종합적 검토 등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를 실현시킬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일 텐데, 과거 영진위의 전력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2009년 다양성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 폐지에 따른 비판이 일자, 영진위는 '개봉여건 개선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제작여건 개선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중형투자조합 출자사업을 통해 독립영화 제작 지원 및 독립 다큐멘터리 개봉에 안정적인 자본을 형성할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2012년의 영진위는 그 때와 비슷한 입장과 예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지원규모는 기존 관행을 깨고 지원액을 현실화 하는 것이 영진위 내부와 정부 차원에서 얼마나 “획기적인” 의지를 필요로 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영진위는 “획기적인”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립다큐멘터리 진영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이에 대한 선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독립다큐멘터리 지원정책에 대한 영진위의 “획기적인” 의지 없이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론자로 나섰던 홍지유 감독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요즘 같이 인권이 바닥으로 떨어진 때에 그 가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지원정책을 획기적으로 내어놓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조금 더 획기적이고 정책다운 정책을 낼 수 있는 의지를 영진위가 갖고 있지 않으면 오늘 같은 자리가 여러 번 지속되어도 저희는 계속 힘들다, 가난하다, 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거다." ⏿


[필자소개] 스이(ACT! 편집위원회)
ACT!에 발을 들여놓은 후 미디어운동의 의미를 ABC부터 배우고 있다. 조금 더 배웠으면 좋겠다. LGBT 이야기가 미디어운동 판에서 활발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