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선거이야기』서중석 | 역사비평사 | 2008 |
두 말 없이 쓰겠노라 했지만 대선까지는 여유가 없었고, 대선은 그렇게 끝나고… 아~ 이렇게 책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할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2월 19일 자정 무렵부터는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평상필름이 만든 영화 <긴급한 조치 1호>나, 이 책처럼 훌륭한 교재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 같고, 다 떠나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감들이, 그 일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짜증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리 두껍지도 어렵지도 않은 이 책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한 줄 평을 하자면, ‘하필 나는 왜 이런 나라에 태어났을까? 무슨 미련으로 못 떠나고 이러고 사는가?’를 거듭 되뇌게 만들어 주는 내용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책의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선거라는 대의민주제가 가진 역사 발전의 도약성이 이 나라를 그나마 전진하게 하는 주동력이니까, ‘삶이 그대를 구라치더라도 힘겨워하거나 성내지 말라.’고 반복해서 조언하고 위로한다. 그런 취지에서 선거의 역동성을 실증하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선거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권력자 자신이 스스로의 이해 때문에 만든 제도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자신이 권력을 잃게 만드는 과정을 열거해서,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사의 발전과정과 선거의 과정이 맥이 같다는 거다.
국회에서 첫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국회에서의 간선제로는 재선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그 유명한 발췌개헌을 통해서 전 국민이 투표하는 직선제를 강행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직선제에서 대통령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도 알게 되었고, 선거부정을 불사하다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난다.
내용적 민주주의에서 또 중요하게 거론되는 지방자치제도도 비슷한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대통령도 국회가 뽑으니, 유일하게 국민에 의해 직접 권력을 이양 받은 사람들은 국회의원들뿐이었던 시절. 감히 국회의원 것들이 대통령을 업수이 여기고 기어오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이승만은 본인을 추종하면서 국민들이 직접 뽑은 정치세력이 필요했다. 그게 지방의회 의원들이었고, 지방자치제도 도입을 통해서 직선제로 뽑힌 이들은 국회를 압박하면서 “나도 국민이 뽑았다.”며, 이승만이 부여한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 다음 선거에서 자치단체장이 야당 쪽 인사들이 당선되자, 시, 읍, 면장은 다시 임명제로 바꿔버린다.
정당 공천제나 비례대표제들처럼 정치적으로 발전적인 제도들도 다 이런 식으로 권력 유지의 도구로 등장했다가 그 취지에 근접해가는 꼴로 정착되어가는 중이다.
공격용으로 개발된 무기가 도리어 상대방에게 활용되는 방식?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국을 만들기 위해서 명분상 우위에 있는 제도들을 스스로 도입하지만, 최초에는 더러운 의도에 악용된 그 제도가 차츰 원래의 취지를 발휘하고 정착되고 그렇게 웃긴 방식으로 민주적 제도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치의 발전이 이렇게라도 된 것이 다행이라는 것인데, 참, 이것도 위로라고 하시나 싶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거대한 시대흐름에 부합하는, 명분상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제도들의 탄생과 정착과정, 그 출생의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지만, 넓게 보면 출생의 배경은 시대의 큰 흐름 속에 있었다는… 뭐 그런 식이다.
근데 놀랍다. 이 책 의외로 힐링에 직방이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흐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지?
권력자들은 참 이기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때 특정 경향의 선배들에게 들었던, 인간 본성이 자주성, 창의성, 의식성이라는 말의 실존 사례는 참 희귀했다. 그게 특수 상황에서 나온 사상이기 때문에 적용범위가 한정되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인간의 본성은 아담스미스가 말한 바가 훨씬 단순명쾌하고, 적용 사례도 널렸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방 이후 그렇게 많은 선거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밀고 나간 정치 진보라는 것은 사실 ‘이기심’에 의한 선택 같다는 소리다. 심지어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권력을 전횡하는 것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나 데모로 표출하는 순간도, “민도”라는 것이 상승했다기보다는 독점적 부의 편향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권력이 고이면서 썩은 기운이 내 삶에도 영향을 주게 되자 참을 수 없는 이기심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
저번 대선과 이번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친 것은 과반수 유권자들의 선택 자체 보다는 그렇게 투표한 이유에 있다고 본다. 일부는 사회화 과정에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주입당해서 그런 선택을 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알면서 투표했을 거라고 보는 의견이 높다. 즉, 민중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대의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이 바뀐 거라고들 한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선택.
빨갱이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촌부의 선택은 차라리 슬플 뿐, 내 아파트값이 폭락할 거라는 두려움, 내 펀드가 망실할 거라는 염려 때문에 선택한 사람들의 투표 행위는 분노를 낫는다. 그게 가능하다면 때리고 싶기도…
비도덕적인 선택에 망설임이 없는, 비도덕적인 선택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당당한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어야 한다는 불쾌감이 매일매일 불현듯 찾아와서는 멘붕 극복을 방해한다.
이 나라의 타락한 국민들이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과의 암거래를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로 예언한 책이 독일인한테서 나온 걸 보면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닌 게 확실하다.
이에 실망한 우리는 인수위가 꾸려진 이 와중에도 또 멍한 심정으로 힐링을 갈구한다.
<긴급한 조치 1호> 광주 시사회에서 어떤 분이 질문했다. “박정희 시기 경제 성장률이 평균 9%였고, 그것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만 그 그늘이 있는데…” 하는 인터뷰이의 대목이 맘에 들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경제성장률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미국의 기획력과 조력을 비롯한 국외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그러했고, 그 시기라면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그런 성장률은 가능했는데, 마치 박정희가 경제는 잘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 정확하게 질문한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취지는 이러했다.
나도 이 영화를 제작할 초기에는 박정희의 경제 신화를 깨고 싶었으니,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다가 나중에는 ‘만약 다른 사람이 지도자였다면…’이나 ‘국제 정세상…’과 같은 조건들이 무의미해졌다. 그냥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것이 칭찬의 대상이거나 더 나아가서 절대적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시기를 보낸 대통령이 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지? 그건 그냥 지표일 뿐인데…
인수위 간사를 맡은 박효종 교수는 박정희 시기의 공칠과삼으로 평가하던데,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적 가치가 증발했지만, 경제 지표가 주는 공이 그것을 두 배 이상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는 것이잖아. 곰곰 생각해보면 굳이 그 당시의 성장률에 대한 논쟁을 벌이거나, 다른 지표들, 무역수지 등등의 지표들을 빗대어서, 프레이저 보고서를 들어서 그것을 깨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참 명제’.
경제 성장률이라는 숫자와 내 삶의 구체나 그것들이 모인 국민들 삶의 일반이 무슨 상관관계가 깊단 말인가?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이라면, 투표행위라는 검증에서 통과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이기심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전 세계의 모든 권력자들은 그들 이기심에 만족을 약속해야 했겠지. 우리 정치사에서 권력을 마구 부렸던 개인과 집단들이 때론 투표행위 자체를 없애거나 왜곡하기도 했지만, 일순간이었고 응징을 당했으니,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내가 권력에 도전하는 또는 권력을 지키려는 자라도 국민의 일반의지=이기심의 결집체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근데 우리는 이기적이지만, 또한 도덕적일 수 있는 수많은 가치들보다는 “돈”이라는 이기적 목표로 수렴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흐름을 꾸준히 밟아왔고, 한때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도 움직임의 동기가 들키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이제 당당하게 동기를 드러내도 되는, 모두가 그러한 몰가치의 시대에 와 버린 게 아닐까?
시사회에서의 그 질문에는 바로 몰가치 시대의 집단 무의식에서 우리들도 자유롭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두의 마음 속에 이명박이, 아직 박정희가 살고 있다.
이 책에 의하자면, 우리나라 정치발전에서 선거는 계단식 발전 추세를 보여주는 훌륭한 기제다. 맞는 말이다. 근데 이 나라 아직 왜 이래?
우리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경제가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전혀 같지 않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로 대체 당해버렸다. 이기적 욕구의 투영 대상을 교묘하게 교체해 버리고 원래 추구하던 이기심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아주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나를 잘 살게 해 줄 사람을 뽑는다’는 것보다는 ‘경제를 살리는 사람을 뽑는다’고 하는 것이 덜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애국적인 뉘앙스도 준다.
이게 먹구름처럼 대한민국을 꽉 누르고 있다. 여기서 그 어떤 선명성으로 당이 갈라진 들, 깨끗하고 비전을 가진 후보가 나선들…
이번 대선에서 내가 지지한 캠프는 부산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그 공약 내용이 적힌 현수막에는 박정희가 도사리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이 참 힘들지만,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그 짓을 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사는 활동가는 매일을 그렇게 보내면서 지역민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고작 1,400만의 철학적 지형 속에서 활동가랍시고 돌아다니고, 그들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시장이 되어서 나의 생산물을 향유해 줄 거라는 만족 속에서 살아오던 삶을 반성해야 한다. 아니면 이따위 선거 할 필요 없다는 정말 잘 나신 선거무용론 예찬 운동가들과, 핏대 세워 논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자족적인 운동과 결별해야 한다. 다 알고 있다. 결국은 지역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내 삶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가 있는, 당선되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나는 아나키스트인데, 왜 하필 자신의 이기적 욕구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사는 나라에서 내 아까운 청춘을 보내야 하는 거지? 하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로 사회화 시켜주는 나라에 태어난 거지. 왜 이렇게 아픈 세월을 보내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나라에서, 그들의 향기에 취해 2차 성징을 맞아 가지고는… 발목이 잡힌 걸까…
에잇. 나갈 용기도 없고, 힐링은 되지도 않고, 한글은 더럽게 아름답고, 주위에 보석 같은 인간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곧 의료보험 민영화 될 텐데 자꾸 술만 마시다간 큰일 날 텐데, 밤마다 술은 땡기고…
선거무용론자나 이번 선거 관심 없다는 이들 빼고 이 글 받아 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지 않을까? 어떻게 멘붕 탈출은 했을까? 못한 사람 이 책 한 번 읽어봐. 약 장수 같지만, 몸을 해치진 않으니까 믿어봐.
딱 뭐라고 설명하긴 힘든데, 힐링이 될 꺼야. □
[필자소개 - 권용협]
권용협님은 부산독립영상패 평상필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긴급한 조치 1호>를 연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