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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2호 이슈와 현장] 밀양은 지금

다큐멘터리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오지필름에서 활동한 것도 2년이 다됐다. 내가 밀양을 처음 찾은 건 대학교 2학년, 동아리 MT를 갔을 때였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산에서 선배, 동기들과 비슷한 미래를 이야기하고, 추억을 만들었던 그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밖으로 그저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고 일상을 즐겼던 곳인 밀양에서, 지금 나는 카메라를 들고 운동을 하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109호 송전탑 건설 현장. 여기 까지 오르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밀양에는 지금 신고리 5,6호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북경남지역과, 전국전력수송체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밀양시의 4개면(산외면, 부북면, 상동면, 단장면)에 걸쳐 765KV의 전력을 옮기는 총 69개의 송전탑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공사가 진행 된 것은 2011년 6월이었다. 제대로 된 합의 없이 밀어붙이기식의 공사는 어르신들을 논, 밭이 아닌 공사장으로 이끌었고, 찌는 듯한, 여름 내내 공사장 인부들과 젊은 용역들과, 지팡이에 의지해 산을 오르고 내리며 싸움을 해야 했다. 쉽게 끝나지 않은 여름의 투쟁은 추운 겨울까지 이어졌고 그 추운 겨울에도 7,80대 어르신들은 산을 오르며 공사를 막아 냈지만, 2012년 1월 16일 결국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바로 한 할아버지의 분신이었다. 7.80대 어르신들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던 밀양의 싸움이 세상 밖으로 알려진 건 이 사건이 일어나고 서였다. 언론에 몇 차례 보도가 되었고, 탈핵희망버스부터 시작해 여기저기서 연대의 손길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난 3월, 나는 다시 밀양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도 잠시뿐이었다. 대구, 부산, 경남지역의 미디어활동가들은 쉽게 끝나지 않는 밀양의 사태를 보면서 이것을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그때부터 미디어 활동가들은 돌아가면서 밀양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별로 한 달 정도를 밀양에서 지내면서 사건이 일어나거나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카메라에 담고 짤막한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보도했고, 그 과정에서 오지필름은 지난 9월 한 달간 밀양에 결합하게 되었다.

처음 밀양에서 송전탑건설이 거론 된 2008년 말, 당시에는 송전탑 건설문제에 온 밀양 시민이 궐기할 정도로 밀양시민과, 시민단체, 국회의원, 밀양시장, 종교단체가 함께 이 문제를 반대했었다. 하지만 결국 국회의원과 시장이 이 싸움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한전이 밀양시를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반대를 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결국 어르신들과 건설부지 주민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밀양댐 천막농성 현장


2년 가깝게 힘든 싸움이 이어져 온 밀양. 지금은 지나온 시간만큼 밀양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여기저기에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밖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아직도 어르신들만의 싸움처럼 보인다. 평생을 일구어 온 땅을 하루아침에 뺏기게 된 어르신들. 밀양에서 나고 자라, 80평생을 지내온 곳에서 이제는 맘 놓고 살 수 없게 된 어르신들의 고통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송전탑건설반대 영남루금요미사현장 피켓시위


  국회 여야당의원, 한전사장과의 청문회를 다녀오신 한옥순 어머님이 다녀오신 소감을 말씀 중


부북면 평밭마을 같은 경우에는 열 댓 가구가 모여 사는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건강에 문제가 있어 요양 차 밀양에 터를 잡고 인생의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분들이다. 그만큼 밀양은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곳 이다. 밀양에서 지내는 동안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보상? 돈?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나는 내 땅도 있고, 집도 있고, 자식들 다 잘 키워 놨다. 나는 이제 죽으면 그만이지만 내가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이 땅에서 살 우리 후손들은 탑 들어서면 여기서 제대로 못사니까 하는 거다’ 였다. 그 순수한 자연에 대한 경외와 후손에 대한 염려가 7년이라는 긴 시간도 무색할 만큼 굳건하게 싸움을 이어올 수 있는 유일한 어르신들의 힘이었다.

그런데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이 이것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실제로 밀양의 어르신들이 하루에 쓰는 전기는 그리 많지 않다. 반나절을 논과 밭에서 보내고 장작에 불을 떼어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에게 이 공사는 한마디로 일방적인 희생인 것이다. 한 달 동안 어르신들의 말없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봤다. 농사만 짓고,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살 던 시골마을 주민들과 어르신들이 이제는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 변에 천막을 쳐놓고 밤을 보내신다. 나는 하루만 자도 허리가 뻐근하고 눈이 퉁퉁 부었는데 어르신들은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3일을 그렇게 밖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말이 국책사업이지 나는 도무지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국정감사를 앞두고 미디어활동가들과 함께 밀양을 다시 찾았다. 짧은 영상을 만들어 밀양의 지금을 알리자는 목적이었다. 현재는 공사가 전면적으로 중단이 된 상황이다. 해결되지 않는 공사 측과 주민들의 문제를 풀기위해 여러 차례 합의점을 찾는 회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결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공사를 이어가겠다는 뜻인 것 같다.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어르신들은 산 속에 농성장을 아침, 저녁으로 오르면서 지키고 있다. ‘공사는 중단 됐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사 측 사람들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고, 밤이고 낮이고, 추석이고, 설이고 한 순간도 농성장 안 비운다.’고 하는 어르신들. 공사가 시작되고 늘어난 건 술과 욕밖에 없다고 하시는 한 어르신의 말에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무엇이 어르신들의 삶을 이렇게도 변화시켰을까?

  국회 여야당의원, 한전사장과의 청문회를 다녀오신 한옥순 어머님이 다녀오신 소감을 말씀 중


  4공구 맞은편 천막농성장, 도로에 덤프트럭이 쌩쌩 달린다.


밀양을 다시 찾았을 때 문득 든 생각이다. 내가 처음 찾았던 물 맑고 공기 좋은 그때의 밀양과 지금의 밀양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든 생각은 이렇게 고요한 시골에 왜 765kV라는 어마한 전력이 지나가는 송전탑이 들어서야 하는지, 왜 7.80대 어르신들이 밤 낮 없이 산을 오르며 고생을 하셔야 하는 건지.. 현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생각만 하면 가슴 저 끝에서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목구멍까지 밀려오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밀양의 문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따뜻한 집이 아닌 산 속에서, 길 위에서 천막을 지키고 계신다. 이 문제의 해결을 얻기 위해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고 있을 밀양의 이야기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 2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밀양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어르신들은 이 공사를 반대하는지, 누구를 위해서 이 공사를 해야 하는지 한번 쯤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 글을 빌어 어르신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하루 빨리 제대로 된 합의가 이루어 져 주민들과 어르신들의 간곡한 부탁이 실현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 문창현]
부산에 있는 다큐멘터리창작공동체 ‘오지필름’에서 활동 중이다. 미디어운동과 다큐멘터리 창작 활동을 함께 하고 있으며, 현재 영주댐 건설과 관련된 <사라지는 것들>을 제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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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송전탑 , 오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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