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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2호 인터뷰] 한국 영화 환경은 얼마나 ‘공정’한가요?

‘모두를 위한 극장’과의 인터뷰

지난 10월 서울 모퉁이 어느 작은 카페에서는 노트북으로 상영하는 영화제 일명 ‘랩톱영화제’(2012년 10월 13~14일)가 열렸다. 영화제는 여섯 명의 감독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직접 자신의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과 나눠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공간에 여러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다 보니 옆 스크린의 소리가 흘러들어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노트북의 작은 스크린은 멀티플렉스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보다 감독과 관객이 훨씬 가깝고 친밀하게 교감하는 영화 관람 경험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최한 단체의 이름이 다소 난해(?)했다.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극장(이하 모극장)”이 이들의 정식 명칭이다. 이들의 이름은 마치 이름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아직 정리가 덜 됐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인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극장”이란 표제는 미디어운동을 연구해온 ACT!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결국 우리가 하자는 게 그런 거 아니었나?
모두를 위한 극장은 2012년 5월 공식 출범했고 랩톱 영화제는 그들이 기획한 첫 번째 행사이다. 한 달 후 모두를 위한 극장 2기 기획단 모집 설명회(11월 24일)가 열린다고 해서 다시 한 번 그들을 찾았다. 이날 자리에는 온라인 공지나 길거리 포스터 그리고 아는 사람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찾아와 모극장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 인터뷰는 기획단 모집 설명회를 마치고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기획단 모집 설명회에서 나온 얘기를 포함하여 재구성했다.)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
ACT! : 먼저 모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남훈(모극장)(*주1) : ‘모두를 위한 극장’은 남녀노소,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영화인과 관객 모두가 함께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공정영화’라는 가치를 제안하면서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운영형태로 협동조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부천문화재단이 위탁하고 있는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ACT! : 처음에 모임을 결성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언제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김남훈 : 2010년쯤 아는 영화인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처음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 화제는 CGV무비꼴라쥬였는데, 그곳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술자리에 있었습니다. 서로 회사 얘기를 나누다가 현재 운영되고 있는 독립영화 프로그램들이나 영화 관련한 사회공헌사업들에 대한 비판적이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그 와중에 이런 것 저런 것은 어때? 하는 아이디어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기업 형태의 영화산업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이 계기가 되어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고 사회적기업보다는 협동조합 또는 공제조합 형태를 먼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협동조합에 관련 된 법적 근거가 미흡한 상태였고 여러 지원 사업에서도 탈락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가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주2) 올 3월에 다시 새롭게 사람들을 모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되어서 6월에 첫 기획단 모집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ACT! : 그럼 올해 출범하고 나서는 어떤 사람들이 모극장에 참여하고 있나요?

김남훈 : 6월 첫 기획단 모집 설명회에 총 18명이 찾아왔어요. 하지만 그리고 나서 8월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모델도 생소했고 각자 일들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기에 시간도 동기도 부족했습니다. 워크숍 가서 내부 토론하다가 서로 다투기도 하고 또 각자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나 의지도 달라서 중간에 나간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8월과 9월에 2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참여한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재정비를 했어요. 현재 6명 정도가 기획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획단원은 영화인 스태프나 독립영화 감독, 대학생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CT! :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극장’에는 여러 가지 개념들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된 이유나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요?

김남훈 : ‘모두를 위한 극장’이 공식명입니다. 짧게는 ‘모극장’이라고 부릅니다. 앞에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은 모극장을 설명해주는 부분이에요. 청년영화인이란 말은 꼭 청년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새로운 기획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입니다.

ACT! :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영화’란 개념인 것 같은데 공정영화라는 문제의식은 기존의 독립영화나 다른 문화운동들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남훈 : 공정영화라는 개념은 영화의 양식이나 장르와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산업적이고 경제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개념입니다. 그 안에는 상업영화도 있을 수 있고 독립영화도 있을 수 있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과 같은 유통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도 포함됩니다. 공정영화란 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어떤 지향 내지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영화에 대한 개념은 두 가지의 대상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화 생산자들입니다. 영화 생산자의 이해와 기회가 공정하게 발생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른 하나는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영화에게 공정한 기회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 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독립영화, 공동체상영, 공유투자, 미디어교육 등등 여러 방식에서 공정성을 목표로 하고 공정함을 지키려하는 모든 형식들의 지향들을 저희는 공정영화라는 운동으로 정의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ACT! : 다른 독립영화단체나 사회문화단체들과 교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남훈 : 모극장은 협동조합 모델을 꿈꾸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의 체제 안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조직입니다. 공정영화는 운동으로서의 개념도 있지만, 경제활동의 개념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에서 기존에 독립영화단체나 사회문화단체와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구요. 이러한 활동에 힘을 더할 수 있는 경제모델을 구상하여 좋은 제의를 하고 싶습니다.

  제1회 랩톱영화제 상영회 진행 중 박가희 감독 데스크 [출처: 모두를 위한 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ACT! : 제1회 랩톱영화제 “컴퓨터는 극장이다”는 매우 신선한 형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랩톱영화제라 해서 그냥 온라인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영화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직접 자신의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과 나눠본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이 행사의 형식은 어떤 고민에서 기획되었나요?

김남훈 : 일종의 영화프리마켓 개념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대형화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감독과 관객이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형식을 택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다른 관람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관람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은 결국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인데, (랩톱 영화제와 같은 기획을 통해서) 사람들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비의 차이는 곧 새로운 시장과 유통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랩톱영화제는 영화를 만든 생산자가 직접 자신의 영화가 담긴 노트북을 들고 와 상영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입니다. 지금은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지만, 조금 더 규모를 키워서 많은 감독과 관객들에게 기존에는 관람할 수 없었던 영화와 경험의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ACT! : 극장 공간 외부의 대안적 상영 유통망을 개발하는 것이 그동안 독립영화 쪽에서는 공동체상영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모극장은 노트북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가지고 한다는 점에서 뭔가 특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1회 랩톱영화제 감독과의 대화 진행 중 김민지 감독 데스크 [출처: 모두를 위한 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김남훈 : 기존 멀티플렉스를 생각해본다면 영화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자본이 필요합니다. 영화는 점점 하이테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관람해야만 영화가 재밌는 것인가라고 했을 때 개인이 자기 영화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작은 미디어, 개인 미디어를 가지고 와서 상영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는데 사람들이 기술보다는 경험에서 가져가는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보완해달라는 의견이 많았고, 그러한 부분들이 반영되어 점차 보완해가고 있습니다. 또 한편 랩톱영화제 자체가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 상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공동체 상영은 이미 결성된 커뮤니티가 한 데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랩톱영화제에서는 그 자리에서 이뤄지는 감독과의 대화, 그리고 네트워크 잡담회 등의 프로그램 속에서 서로 알게 되고 다가가며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앞으로의 과제 역시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시키고 지속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ACT! : 최종적으로 영화가 공정하게 제작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김남훈 : 결국에는 합리적인 노동방식과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제작비와 공정한 분배구조가 필요할텐데, 현재의 한정된 스크린과 유통구조 안에서는 합리적인 제작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익의 대부분을 극장유통에 의존하기 때문에 독립영화가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극장 안에서만 경쟁하기가 힘이 듭니다. 다양한 대안적 시장이 모색되고 존재하면서 이익 규모의 산정과 예측의 변동성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서상 유통과 대안적 상영방식이 증가하고 영화의 투자하는 방식의 다양성이 제고되고 마지막에는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이 구축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적은 돈으로도 손해를 최소화하는 영화의 제작방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다양한 영화 관람의 방식이 많아져야 합니다. 공정영화라는 가치의 유통이 선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모여서 같이 영화를 보면 그곳이 곧 극장이 될 수 있고, 영화를 목격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이야기하고 영화를 다르게 생각해보고 하는 여러 형태의 관람의 경험이 새로운 영화 유통의 시장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CT! : 혹시 활동을 기획하면서 참조하신 외국 사례나 국내 사례가 있나요? 가령 신진다큐멘터리모임에서도 제작자들이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해서 직접 발로 뛰고 있는데 모극장과 상당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남훈 : 최근에 재미난 여러 영화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텐트 영화제라는 기획도 보았습니다. 협동조합은 이러한 가치를 가진 연대를 의미합니다.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활동을 펼쳐야할 것 같습니다. 한편 참고한 해외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일본에 Sigro라는 영화사가 있는데 이 영화사에서 배리어프리라던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영화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보유한 사회적 의미를 확장하고자 하는 점에서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1회 랩톱영화제
ACT! : 앞으로 모극장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남훈 : 일단 제2회 랩톱 영화제가 12월 16일 문래동 정다방프로젝트에서 열리고 앞으로 랩톱 영화제는 두세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한편, 미디어교육 사업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미디어교육 단체들도 많고 전국 각 지역에 미디어센터들도 지어졌고 또 내년부터는 방과 후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활동이 늘어날 전망인데 관련 주체들이 모여서 미디어교육을 붐업 시킬 수 있는 판을 기획해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내년 2월 정도에 ‘미디어교육콜렉션’이라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랩톱영화제와 미디어교육콜렉션 모두 오픈소스 형태로 매뉴얼을 개방해서 누구나 개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춘 (가칭)공정영화페스티발(Fair Film Festival, FFF)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3년 3월에 협동조합으로 정식 출범할 예정입니다. 영화라는 것이 워낙 자본 집중적이고 그 자본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쉽지 않은 매체여서 사회적기업으로 만들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거창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활동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

그 동안의 우여곡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를 위한 극장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멤버들 간에 만나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참여자들의 구성이 워낙 개방적이고 자발성에 의존하다 보니 의사결정구조를 조율하는 것부터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정영화라는 개념이 어떤 정해져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참여자들이 앞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개념이자 가치라고 할 때, 부디 이들이 쉽게 지치지 말고 더디더라도 한 발 한 발 잘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이다.


* 주
1. 김남훈님은 ‘모두를 위한 극장’ 초기부터 모임에 관해 고민하고 참여하고 계신 분으로 영화 스태프로 일한 경험이 있고 국내 제1호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인 ‘노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 2011년 12월 통과된 협동조합기본법은 새로운 경제사회 발전의 대안모델로서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고 관련 기반을 마련하고자 제정되었다. 이를 위해 기본법은 이전까지 8개 개별법(농협법, 수협법, 신협법 등)에 근거하여 제한적인 분야에서만 설립할 수 있었던 협동조합의 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금융 및 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5인 이상의 조합원이 모이기만 하면 시ㆍ도지사에 신고 및 설립등기를 거쳐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법은 2012년 1월 26일 공포되어 2012년 12월 1일부터 시행된다.


* 참고 자료

‘모두를 위한 극장’ 페이스북 홈페이지
www.facebook.com/cine4all

‘모두를 위한 극장’ 소개 영상
http://www.facebook.com/photo.php?v=153451178129646&set=vb.100003942944183&type=2&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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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 , 모두를 위한 극장 , 랩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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