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업이 짧은 기간에 이렇게 부침을 겪은 사례가 보기 드물다. 어쩌면 독립영화인들의 염원이 담긴 상징성이 큰 사업이기에 영진위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 없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사업 자체가 없어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침 속에서 결정적으로 함께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해 내고, 꺼내놓고 고민함으로써,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에 전용관을 위탁했고, 중간에 감사원 감사 이후 공모제로 돌아서 씨네 마루, 그리고 직영 인디플러스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독립영화인들의 염원이었고 독립영화 배급에 일선이었던 독립영화전용관이 한 개의 극장 운영 정도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상징성과 정체성 그리고 배급전략의 거점으로서 전용관이 더 이상이 아니게 되었다.
사실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할 때 당시는 한독협이 중요한 활동으로 삼았던 독립영화의 공공적인 배급모델(사업)을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로 확대하고, 전용관 사업과 배급 사업 이렇게 양 날개로 - 인디스페이스는 거점 극장, 배급 사업은 네트워크 사업으로 - 설계했다. 몇 년의 실험과 고민, 실천을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과 실천들은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닫게 됨으로써 사업의 연속성을 이어가지 못했고, 이런 활동들은 그냥 독립영화전용관 사업만으로 한정됨으로써, 독립영화 정책에 퇴보를 가져왔다.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직영에서 위탁으로 넘어가는 이런 과정에서 영진위 실무자들에게 몇 가지 고민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국가 지원이 정권에 입맛대로 좌지우지 되는 것, 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당분간 개선되기 힘들다면 ‘직영이건, 위탁이건’ 사업 자체의 안정성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는 점이다. 즉, 불신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민-관이 공동으로 정책 목표를 세우고, 집행하면서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활동의 기본적인 전제가 신뢰라는 공적 자산일 텐데, 이것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인디플러스와 함께 잃어버린 두 번째이다.
인디플러스는 애초 공청회 때 제기한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점. 프로그램의 자율성과 고용의 안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던 점도 문제다. ‘애초 프로그램 자율성은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냈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누구도 예상 가능한 문제였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인디플러스 운영위원회가 나름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문제, 인디플러스에 고용된 인력들은 상대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높은 임금 수준을 보장받으면서 좀 더 전문화된 인력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도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은 결국 정규직화 되지 못했고 고용이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그런 점, 프로그램에 대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와 인력의 불안정성은 직영 인디플러스에 큰 문제점으로 남았고, 결국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하기 보다는 피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고, 지금은 직영에서 다시 다른 형태로 전용관 운영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디플러스를 통해 얻어진 경험들이 이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인디플러스라는 직영 극장과 운영인력들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잃어버린 세 번째다.
영진위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린다. 즉, 문제가 있다면 당사자들이 푸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을 그대로 간다면, 현재로는 묻힐 수 있지만, 나중에 이것이 비수가 되어 다시 우리의 목을 조여 올 지 누가 아는가. 영진위는 허경 프로그래머와 인디플러스 스텝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고용 승계할 방안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은 또 다른 형태의 확장, 가능성으로서 새로운 정책으로 입안되고 있다. 가칭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로 재편되고 있는 과정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 독립영화전용관 정책에 대한 평가 반성 그리고 독립영화 유통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독립영화 관객 수는 정체되어 가고, 대기업 멀티 극장체인의 힘은 강하다. 그렇지만 극장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징검다리(교차상영)로만 관객들을 만날 수 없는 형국이다. 이런 시장 환경은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 제작하는 개인 혹은 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고, 그동안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시장에서의 독립영화의 블록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시장의 다양성을 해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시장 밖에 존재하는 무수한 공공영역에서의 활동도 위축될 것이다. 따라서 영진위 독립영화 유통정책이 여기에 맞춰서 변화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전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를 그대로 놓아두었다면 몇 년이나 먼저 이런 활동을 하고 있고, 이것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고, 이전에 했던 배급지원센터의 역할과 기능, 사업 내용들을 긴밀히 검토하여 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단, 이 모든 것이 신뢰에 기반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책 추진에 있어 안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디플러스와 같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디플러스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되새김해야 할 것이다. 사람, 신뢰, 자발성에 기초한 활동이 없다면 어떤 일도 사상누각이다. □
*주1
- “부산 이전 전에 영진위의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 인디플러스는 8월 말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독립영화인들로 구성된 추진단과 함께 센터를 6월 말까지 설립해야 한다. 센터의 사업 계획안과 내용을 작성한 뒤 독립영화계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 것이다. 7월에 공모를 낸 다음 9월 전까지 사업자를 선정하는 게 목표다.” (씨네21, 김성훈)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3511
[필자소개] 김화범(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에서 근무하고 있고, 주로 영화 기획, 제작 관련 전반의 일을 하고 있다. 간혹 독립영화 정책 활동을 본업인 제작, 기획 일보다 많이 할 때도 있지만, 어제 보다는 오늘, 그리고 내일에 더 좋은 영화를 기획 제작하고픈 열망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