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본질을 넘어 본질을 살자

[책을 열며 _ 6.15 방북 소감]

 사물에는 본질적 속성과 우유적(偶有的) 속성이 있다. 전자는 사물의 근본적인 성질이요, 후자는 주변적 부분적인 성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둘을 편의상 본질과 비본질로 바꾸어 부르기로 하자.
 이 명제는 민족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 민족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본질과 비본질을 혼동하며 살기도 하고, 본질보다 비본질에 치우쳐 살기도 하고, 애써 본질을 외면한 채 비본질을 본질인 양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살기도 한다. 반대로 본질을 추구하거나 실천적인 삶의 결과로 얻은 인식에 바탕하여 본질에 충실히 복무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그러한 삶이 민족성원에 끼칠 영향이 어떠하냐에 있다. 그러한 삶이 적극적일수록 민족공동체에 끼칠 영향력도 커지게 되며, 문화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권력을 가지면 그 영향력은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아울러 여론 주도층이 어느 쪽이 지배적 세력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민족공동체의 운명이 판가름 날 수도 있다.

 이제 민족공동체에 있어서 본질과 비본질이 무엇인지 따질 차례이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배타적 대결적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상대를 부정하는 태도가 가장 비본질적인 삶의 방식이다. 네가 살면 내가 살고 네가 죽으면 내가 죽는다는, 말하자면 상생과 공멸의 상호 의존적 관계로 인식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가 본질적 삶의 기초이다. 또한, 남․북․해외의 성원들이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통합을 이루려는 것이 본질이며, 외부의 힘을 빌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고 열강의 대결적인 구도에 편입되어 민족적 역량을 소진시키는 것은 비본질이다. 연방제든 연합제든 민족이 통합하여 삶의 터전인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얻는 것 이상으로 본질적인 것이 없다. 그러므로 비본질 쪽은 민족사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본질 쪽은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
 민족적인 삶의 본질을 살기 위해서는 허위의식의 껍데기를 벗어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 날 민주주의의 반의어를 공산주의라고 배우고 가르쳐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용어요, 공산주의는 경제 용어인데도 말이다. 코페르쿠스적인 인식 전환으로 허위의식에서 탈출하고 허위구조에서 해방해야 한다. 남북의 성원들 모두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북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이념 체계나 남의 비인간적이고 이기적 파쇼적인 의식구조가 함께 극복되어야 하지만 각기 60년이 넘게 학습되어 이미 체질화된 인식 체계를 바꾸기란 지난한 일이다. 따라서, 공통점이나 동일성을 애써 찾기보다 상호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의 사상이나 제도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오히려 쉬운 길이 될 것이다. 일례로, 2003년도에 평양에서 남북교원상봉모임이 있었는데 양측 교원들이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면서 정중하게 사양하는 뜻으로 남측에서는 ‘일없습네다’로, 북측에서는 ‘괜찮습니다’로 바꾸어 말하면서 지낸 일이 있었다.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 말 한 마디가 대번에 서먹한 분위기를 화기 넘치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남측의 구성원들은 대개 북측에 대해 우월감이나 자만심을 가진다. 물질이 풍부한 데다 자유와 개방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근래 관심을 모은 영화 <우리 학교>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 영화는 3년에 걸쳐 홋카이도 조선인학교의 모습을 제작자가 카메라에 잡히는 대로 연출 없이 만든 기록영화이다. 풍족한 경제력과 다양한 문화로 선진국의 선두를 달리는 일본에서, 정말 힘들게 민족적인 삶의 본질을 배우는 조선인학교의 한 여고생이 나온다. 고3의 그 여학생은 북조선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다음 “사람이 잠을 편히 자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자주적인 삶을 지향하는 북조선과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우나 군권을 외국군에 맡긴 남한을 견주어 하는 말이었다.
 북한은 일제 강점기의 항일 무력투쟁과 해방 후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 등을 들어 정통성을 내세운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긴 세계적인 전원도시인 평양 시가지도 그 당시 모습 그대로이니 그럴 법하다. 그 후 북한은 동구권이 서방에 편입되면서 그 때까지 코민테른 내에서 물물거래 방식으로 구상무역을 해온 체계가 무너져 경제적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거기다 미국 일본 등 서방의 경제 봉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 왔다. 어쨌든 현재는 남한이 민주주의의 역량이 확보되고 경제적으로도 북한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남한에 정통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통합이 쉬워질 것이라는 단순 논리로 말하건대, 북한이 허약한 경제적 조건에서도 유일 강대국인 미국에 맞서 자주성을 당당히 지켜 나가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 인민들의 삶이 도덕적이고,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우리 것을 지켜 내려온 독특한 문화는 평가할 만하다. 북측의 예술 공연을 보면 저절로 감탄하게 되고 감동할 만큼 완성도나 작품성이 완벽에 가깝다. 비인간적인 남한 사회보다 휴머니즘이 존중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 노래 두 곡을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은 더할 수 없이 감동 깊은 표현이다.

생이란 무엇인가?

1.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하리라.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보며 웃으며 추억할 지난날이라고.
2. 시내물 모여서 강을 이루고 날들이 모여 생을 이루네.
그 생이 짧은들 누가 탓하랴 영생은 시간과 인연 없어라.

 

심장에 남는 사람

1. 인생에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2.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이번에 6․15공동선언발표 7돌 기념 민족단합대회의 대회장 밖에 내걸린 <민족도, 피줄도, 언어도, 이 땅도, 문화도, 력사도 하나>라는 구호를 떠올리며 민족적 본질을 되짚어 본다. 한 국회의원을 주석단에 앉히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민족대축전이 이틀 지연된 것은 옥의 티였지만, 백낙청 남측위원장이 전 국민적 환호를 받는 축제로 치르기 위해 애쓴 점이나 내외의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교류를 하면서 사려 깊게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끝으로, 민족적인 삶의 본질을 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특히 식자층과 여론 주도층이 우선 허위의식이나 고정관념, 선입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상대끼리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서로가 사용하는 호칭도 북을 조선, 남을 한국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남에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지금 북조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식량과 에너지이다. 고난의 내핍생활을 하는 북측 형제들에게 남측에서 이래저래 까탈 부리지 말고 제대로 ‘퍼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 뒷줄 가운데가 김창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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